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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숨 Nov 10. 2019

아크로폴리스 뷰와 함께 아테네 첫 식사

아크로폴리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인생 샐러드를 먹다


 에어비엔비 덕분에 발견한 아테네 뒷골목은 관광책자에도 다루지 않을 정도로 골목 여기저기가 미지의 탐험과도 같았기에 그곳을 한참을 누볐다. 시간을 보니 벌써 그리스에 도착한 지 4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비로소 허기짐을 느꼈다. 나는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리스에서의 첫 식사인만큼 그리스 대표 음식이라는 기로스와 그리고 유명한 그릭 샐러드 등 그리스의 대표 음식들을 모두 맛보고 싶었기에 고심에 고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테네의 기로스 맛집이자 뷰 맛집으로 들어가다

 어느 곳을 갈까 고민하다 기로스가 유명하다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4층짜리로 매우 큰 건물을 통째로 다 쓰고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층마다 인테리어 분위기가 상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특히 1-2층은 큰 창문 없어 식사 중심의 분위기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면 3층은 큰 창이 옆으로 탁 트인 반 실내형 공간이었다. 4층은 아예 옥상이 없는 야외석이었다. 10월의 그리스는 추운 편은 아니었지만 바람을 막기 위해 옥상석은 얇은 천막이 쳐져 있었기 때문에 바깥 뷰가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창문이 열려 있어 밖을 내다볼 수 있는 3층에서 자리를 안내받았다. 운이 좋게 창가석의 4인 가족이 마침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떴기에 그 자리에 배석받았다. 혼자인데도 큰 테이블을 쓰는 것이 미안해서 자리를 안내해준 직원에게 괜찮은지 눈짓을 보냈는데 막상 그는 별 문제 안된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스에선 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진행됐다. 모든 일은 대체로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이 느긋함 속에서 안절부절못하거나 걱정하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나는 점점 그리스인들의 이런 느긋한 삶의 방식에 동화되기 시작했다. 


오픈형 창가석이 있는 3층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


 좌석에 앉아 열린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그리스의 가을바람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시월의 그리스의 바람은 조금 차가웠지만 하늘에서 직선으로 내리쬐는 햇살 덕분에 춥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기분 좋은 시원함이었다. 창 밖으로 저 멀리 아크로폴리스가 보였다. 아크로폴리스가 보일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예상외로 너무 좋은 자리에 앉아 버렸다. 




‘아크로폴리스 뷰’라면 아테네 핫플레이스

 일정이 촉박해 따로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할 시간을 내지 못한 나로선 아크로폴리스를 계속해서 마주하니 여행자의 행운이 계속되는 기분이었다. 물론 직접 가서 그 역사적 깊이를 체험한다면 더 좋겠지만 그리스인들의 지금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지금의 여행도 지금대로 좋다.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에 또 올 것이다. 

 그리스가 내 일생에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은 강렬한 기운을 지금도 느끼고 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이 아크로폴리스다. 사진은 식당 풍경.


 아테네는 큰 도시가 아니다 보니 중심지인 모나스티라키를 돌아다니다 보면 눈에 계속 밟히는 것이 아크로폴리스기 때문에 굳이 그곳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항상 나침반의 중심축처럼 어딜 가든 이곳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보였다. 아크로폴리스가 아테네의 심장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모든 곳에서 아크로폴리스가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 식당을 지나치다 보면 아크로폴리스가 보이는 것을 자랑처럼 간판에 내건 곳이 많다. 낮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잘 보이는 식당들이나 카페가 인기가 많고, 밤이 되면 아크로폴리스는 새벽까지 불빛이 켜져 있기 때문에 ‘아크로폴리스 뷰’를 자랑스럽게 내건 루프탑 바들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내가 찾아간 이 식당은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는 특별한 싸인이 있던 것도 아닌데 내 눈 앞에 그 아크로폴리스가 있는 것이다. 




재료 자체가 요리, 그릭 요거트 & 샐러드 그리고 기로스

 이 레스토랑은 기로스가 맛있다고 소개된 곳이었다. 그러나 메뉴판을 보니 기로스 외에도 애피타이저, 그리스 전통 요리 등등 종류별로 다양한 요리를 갖추고 있었다. 한국의 패밀리 레스토랑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도 체인점화된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메뉴판을 건네받고 나는 여러 음식들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기로스 외에도 그릭 요거트와 그릭 샐러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스는 제철 과일들과 신선한 재료들이 유명하다 보니 그릭 요거트나 샐러드 같이 기본적인 음식들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책자에서 수도 없이 읽었기 때문이다.

 혼자의 식사였지만, 첫 끼였으므로 나는 과감히 여러 메뉴를 시키기로 했다. 대표 메뉴인 기로스와 그리고 그릭 샐러드와 그릭 요거트를 시켰다.  

그릭요거트와 그릭샐러드 그리고 기로스. 기로스는 샌드위치 형식으로 나왔는데, 풀어서 먹기도 한다.

 기로스는 애초에 샌드위치처럼 묶어서 나오기도 하고 샌드위치 형식의 기로스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가 있되 풀어서 나오는 경우로 두 가지 타입이었다. 그리스 여행책자처럼 묶인 기로스를 시켰는데 먹다 보니 묶이지 않은 기로스가 훨씬 먹기 편리했다. 글을 쓰는 지금 사실 기로스의 맛을 설명하기 위해 떠올리려 해도 '맛있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이지 맛이 어떠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기로스보다 더 강렬했던 것은 사이드로 시켰던 그릭요거트와 그리스식 샐러드였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이 두 음식은 특별한 재료나 조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 재료 자체가 신선해야 그 맛이 더 잘 산다. 올리브 오일과 후추가 버무려 섞어 오이와 양파 토마토 그리고 그릭 치즈로 만든 그리스 샐러드는 이후 산토리니, 미코노스 등 어느 여행지를 통틀어서 이 곳만큼 맛있는 샐러드와 그릭요거트를 맛보지는 못했다. 


 그릭 요거트는 기본 재료에 여러 재료를 넣고 올리브 오일로 맛을 냈는데 너무 풍부한 맛이 나서 놀라웠다. 글을 쓰는 지금도 1년이나 지난 이 첫 경험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진정한 실력자는 도구나 연장 탓을 하지 않듯이, 진정한 요리는 그 재료 자체로 승부하기도 한다. 요리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이 제대로 된 것은 분야를 막론하고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그리스를 다녀온 뒤 나는 그리스식 샐러드의 그 강렬한 경험을 잊지 못해 주말 아침이 되면 샐러드를 그리스식으로 해 먹는다. 별다른 것은 없다. 시장에서 가장 신선한 토마토, 양파, 오이를 구한 뒤 소스(올리브 오일, 레몬즙, 후추)를 버무려 먹으면 된다. 



 이곳에서 먹은 그리스식 샐러드를 떠올릴 때면 늘 생각한다. 기본이 탄탄한 사람이 되자고. 요리 한 접시 갖고 너무 큰 비약을 하는 것일까? 어쨌든 내겐 그만큼의 충격을 안긴 음식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리스 음식 중 그릭 샐러드를 제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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