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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스패너 Apr 30. 2024

내 노트북에는 빠큐를 날리는 자궁이 있다

국회를 향해 빠큐 날리기

어느 날 강의를 하러 갔는데, 출판사 디자이너님이 내 노트북을 보자마자 말했다.


덕지덕지 더러운 게 매력입니다.


"자궁이 왜 빠큐를 날리고 있어요?"

"그러게, 나도 궁금했어요!"



출판사 매니저님도 입을 보탰다. 나는 에? 같은 소리나 내며 노트북을 덮어 확인했다. 아, 그렇지. 맞다. 있었다, 그런 게. 익숙해져서 잊고 있었다. 나는 노트북 안만 들여다보니까 밖을 볼 일이 거의 없었다.



노트북으로 하는 일이라곤 고작 한컴, 워드, 인터넷 검색뿐인 내게 과분한 맥북 프로. 심지어 풀옵션이다. 당연히 산 건 아니고(살 돈은 그때도 지금도 없다), 삼촌에게 물려받은 것인데 벌써 8년째 쓰고 있다.



처음 받았을 땐 흠집 하나 없는 새것이었는데, 노트북을 벽에 딱 붙이고 쓰는 습관 때문에 모서리에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그게 꼴도 보기 싫고 흠집 하나 날 때마다 -50,000 씩 차감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뭐라도 붙일까 하고 집을 뒤졌는데 시위에서 기념품으로 받아온 스티커들 뿐이었다. 나는 아기자기한 취향은 못 되는 데다 부지런하지 못해서 '스티커? 그거 사봤자 뭐 해;' 하며 관자놀이나 박박 긁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지금도 거의 마찬가지인데, 빠큐 자궁을 붙인 이후에 노트북 꾸미기용으로 두 개 사보긴 했다. 원석 스티커, 고양이 스티커. 그 외에는 다 선물 받거나 사은품으로 딸려온 애들을 편견 없이 덕지덕지 붙였다.



어쨌든 초반엔 시위에서 받아온 기념품 스티커뿐이었다. 아엠 더라이프 스티커랑 애플 로고 바로 위에 붙어있는 빠큐를 날리는 자궁. 둘 다 임신중단전면합법화 시위에서 받아온 것이다.



19년도 초 겨울. 지난했던 삼수를 끝내고 드디어 문예창작과 신입생이 된 나는 학교 앞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재수하며 알바를 병행했는데, 몸은 괜찮았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개 같았다. 그래서 1학년 때는 차라리 가난하게 살더라도 알바를 하지 않겠다 선언했고 할아버지도 지금은 학교에 집중하라며 허락해 주셨다. 매달 50만 원 용돈을 받으며 그 안에서 모든 걸 해결했다. 의식주, 엠티, 신입생이니 술값도 들어가고. 난 항상 돈이 없었지만 개강 첫 주 토요일, 보신각으로 향했다. 삼수 시절 본가에 내려가 있었던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열리는 임신 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에 참석하는 것.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를 앞두고 열린, 비웨이브가 주최하는 19차 임신 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였다. 광화문은 가봤어도 보신각은 처음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시위가 시작된 이후였다.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보신각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이미 늦었지만... 사실 그때 난 너무 배가 고팠다. 늦은 이유가 아마 늦잠을 자서였을 것이다. 한 끼도 못 먹고 갔으니까. 근처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포장했다. (그날이 내 인생 첫 서브웨이였다. 너무 무서웠다. 앞에 서울 사람들은 척척 주문을 잘하고 있었는데 나는 자신이 없어서 그냥 이미 조합된 샌드위치를 골랐다. 그리고 돈이 없어서 콜라를 마시지 못했다.) 그리고 밖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시위를 바라봤다.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 검정 옷을 입은 몇 천명의 여성들이 구호를 외치며 '임신 중단 전면 합법화'가 쓰인 검은 종이를 번쩍 들고 있었다.

시위 현장 바로 밖에 세워둔 판넬을 열심히 읽었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8주까지의 수정란인 배아는 샤프심의 단면보다 작다는 것이었고 하나는 여성들이 옷걸이로 임신 중절을 시도하다 많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옛날에는 정말 많았고, 지금도 임신 중절이 불법인 나라에서는 종종 일어난다고. 그래서 검은 칼과 검은 옷걸이 키링을 나눠주고 있었구나. 충격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입에 욱여넣고 팸플릿과 기념품들을 받아 안으로 입장했다. 뒷자리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날 시위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2020년 12월 31일까지 국회에 보완입법을 할 것을 권고하면서.







나는 믿었다. 이제는 여성들이 자기 결정권을 가지게 되었으니, 보다 안전하게 임신 중절을 선택할 수 있게 되겠구나. 유산유도제 약물인 미프진을 불법 사이트에서 직구해 이게 정말 안전한 약물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정확한 용량도, 용법도 모르고 먹게 되지는 않게 되겠구나.



그래서 나는 그런 소설을 하나 썼다. 2020년 8월 15일 초고를 완성했다.








그 소설에는 홀로 임신을 확인하고, 병원에 가 미프진을 처방받아 중절을 하는 '양지'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양지를 통해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 20년도의 내가 5년 후에, 그러니까 24년도에 문제가 될 거라 생각했던 건, 여전한 사회적 시선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보완입법은 마련되지 못했다.

소설의 배경이었던, 낙태처벌법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지 5년이 지난 2024년에도.



임신중절 합법화 법률 개정안은 여러 번 발의되었고, 그때마다 국회에서 계류되다가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낙태처벌법은 위헌이기에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임신중절이 합법은 아닌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관련 의료제도는 당연히 마련되지 않았다. 병원마다 수술이 가능한 임신 주차수도 각기 다르고, 유산유도제는 아직도 불법으로 직구해야만 한다. 당연히 경제적 지원도 안 나온다. 가능한 병원이 어딘지도 일일이 전화를 걸어 모두 알아보아야 하고,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용해야 한다. 커뮤니티의 범람하는 정보들 속에서 믿을 만한 정보를 선별하는 것 역시,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이미 잔뜩 불안해하고 있을 여성이 직접 해야 한다. 모든 여성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정보에 취약한 계층, 경제력이 없는 계층은 특히나 더더욱 여전히 위험하다. 이 사태를 보며 보건복지부는 법 개정이 되지 않았으니 제도를 손 볼 수도 없단다. 국회의원 이 새끼들은... 입만 아프다.




그러니까 여전히.

여전히.




디자이너님과 매니저님이 빠큐 하는 자궁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말했다. 임신 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에 갔을 때 받은 스티커라고. 모두 여성이었던 우리는 그를 두고 더 이야기를 나누려 했지만 수업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수강생이 들어오며 결국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그 후 수업에서 노트북을 꺼낼 때마다 빠큐 자궁을 종종 상기한다. 나는 사실 별로 눈에 안 띈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 눈에 잘 보이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도 과외를 하려고 노트북을 꺼내는데 학생이 허억 하고 놀랐다.



아무래도 중앙 상단에 크게 붙어 있으니 어쩔 수 없나. 어쨌거나 나는 가르치는 사람인데 아무리 그래도 빠큐는 좀 그런가? 싶어서 아무래도 뜯어야 할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뗄 수가 있나. 여전히 이 모양 이 꼴인데.



이제는 그냥 기다린다.

누군가 이게 뭐냐고 또 물어봐주기를.


그럼 같이 빠큐라도 날리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이제 끝나가는 21대 국회는 과연 어떻게 할까.

그들의 임기가 한 달 남았다.

그리고 다가오는 22대 국회는 과연 어떻게 할까.



보완입법이 통과 되고 제도가 안정되고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 여성이 없어질 때까지 나는 빠큐를 날려야지. 쌍심지를 켜고 그들을 지켜보면서.






+

<세시의 토르소>는 언젠가 쓰고 싶은 장편의 배경을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 단편은 더 이상 공모전에 내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브런치에 공개. 그건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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