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키스패너 May 17. 2024

붉은 지붕 부수기_평균의 삶

백수린,『여름의 빌라』,「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문학동네,2022



‘그녀’가 아이를 등원시킬 때마다 눈여겨보는 집이 하나 있다. 아파트 인근 고급 주택가의 붉은 지붕 집이다. 그 집에 대해 얘기하고 공상하는 일은 그녀에게 커다란 낙이다. 사실 그녀의 맘속에도 붉은 지붕을 가진 집이 하나 있다. 그곳에는 욕망이 산다.

어느 날, 붉은 지붕 집이 부서졌다. 처음에 큰 충격을 받았던 그녀는 소설의 결말에 다다라 초연해진다. 그녀 맘속의 붉은 지붕 집도 부서졌기 때문이다. 




   

그녀와 한나


그녀는 아이가 있는 기혼여성들의 보편적인 특징을 지닌 인물이다. 두 아이를 둔 전업주부인 그녀는 첫 째 아이를 낳은 뒤 복직 했었지만, 둘째 아이가 생기면서 결국 퇴사했다. 일도 그만두고 아이만 돌보고 있으니 제대로 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사로잡혀있다. 또한 집안일과 육아를 하느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친구를 만난 지도 까마득하고, 딱 하루인데도 취미생활을 하러 갈 수도 없고, 모유수유를 해야 하기에 음주를 즐길 수도 없다. 그녀는 그런 상황들을 그냥 견뎌낸다. ‘어차피 울고불고해봤자 바뀌지 않는 일에 에너지를 쏟기에 그녀는 매일 너무 피곤했으므로’.(p.154.)



그녀는 성숙함을 인생의 지표로 삼는 인물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성숙함이란, ‘지금 누릴 수 없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기보다는 인생의 단계 단계에 걸맞은 역할을 수용하는 것’(p.152.)이다. 그녀가 정말로 원해서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그녀를 둘러싼 상황과 사람들, 사회구조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녀의 엄마는 다정했지만, ‘오빠만 학원에 보내주었고, 그녀의 재수를 반대했으며,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는 언제 직장을 그만둘 거냐고 물었다.’(p.162.) 결혼 후에는 집안일과 육아가 그녀를 옭아맸다. 그렇게 욕망을 거세당한 그녀는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이런 태도는 소설 전반에 걸쳐 여러 번 드러난다. 그녀는 친구와 만날 때에도, 친구가 제시하는 선택지 안에서 순서만 정한다. 그녀는 욕망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욕심을 내지도 않는다. 욕망이 좌절 되는 순간이 슬프고 아프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므로.



그런 그녀와 대조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그녀의 친구 ‘한나’다. 한나는 거침없이 욕망을 드러내고, 욕심내며,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기꺼이 뛰어드는 인물이다. 한나는 가고 싶고 보고 싶은 것들을 얘기하고, 파인 다이닝 요리를 배우기 위해,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이탈리아로 떠나기도 했다. 자신은 요리와 결혼했으니 축의금 내고 가라는 말을 거리낌없이 하기도 한다. 또 과거에 발레를 했던 한나는 다리를 다쳐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데, 그에게 발레는 상처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다시 발레 공연을 볼 수 있느냐고 그녀가 물었을 때 한나는 대답한다. “아쉽지. 그치만 후회는 없으니까.”(p.153.) 발레를 하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했기에 한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시작조차 하지 않아 온갖 미련과 상처로 얼룩진 그녀와 달리.



   

파인다이닝과 발레


그녀는 오랜만에 한나와 만난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한나가 연 ‘카페 뮐러’에 초대 받았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이들 없이, 홀로 파인다이닝을 방문한 그녀는 그 자리가 낯설다. 낯선 사람들, 낯선 음식, 낯선 주제와 대화. 한나의 공간인 파인다이닝은 거리낌 없는 욕망들로 가득찬 공간이다.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나 돈, 와인 같은 것들. 적응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 때, 한나의 지인 발레리노가 안으로 들어온다. 



“어쩐지……무용하셨죠?”

“안타깝네요.” 

“아, 무용하셨어도 정말 좋았을 골격을 가지셨거든요.”(p.147-148.)



그가 그녀의 내밀한 욕망을 푹 찔렀다. 발레. 어린 시절부터 발레리나를 동경했고, 그래서 무용을 배우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시작조차 못 해본 욕망. 최선을 다했기에 더 이상 미련이 없는 한나와 달리 그녀는 시작조차 하지 못 했다. 배우고 싶다고 말했는데 거절당했다. 그녀는 그의 말에 ‘내밀한 곳을 함부로 침범당’했다고 느끼고 ‘날카로운 말투로’ 되묻는다. 



‘어떤 상처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잠복해 있다가 작은 자극에도 고무공처럼 튀어올랐다.’ (p.148.)



그녀에게 발레는 상처다. 성숙함을 인생의 지표로 삼는 현재의 태도는 오랜 세월 축적된 좌절들의 총합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과 독백으로 미루어볼 때, 발레는 성숙함을 지향하는 시작점이 아니었을까.



‘최초의, 최연소, 국내 초연’ 등의 화려한 수식을 단 발레리노인 그는 그녀가 욕망하던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그녀에게 성적인 관심을 보낸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화자에게 부러 말을 걸고, 한나를 통해 초대권을 보내기도 한다. 파인다이닝에서, 그녀는 자신의 기분이 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가 따라주는 와인을 마신다. 다들 마시는 와중에도 모유수유를 위해 유혹을 참아냈던 그녀였다. 발레리노인 그는 거세되었던 그녀의 욕망을 일깨우는 존재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의 관심이 나쁘지 않다. 그의 발레 공연을 보러 가려 하지만, 또 상황이 그녀를 옭아맨다.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다. 갑작스럽게 수술 일정이 잡혔다는 남편에게 그녀는 화를 내지 않는다. 여태껏 그래왔듯이 수긍할 뿐이다. 그러나 그 사건은 화자가 자신을 옭아매는 상황을 인지하는 계기가 된다.



   

붉은 지붕


붉은 지붕 집은 소설의 중심 모티프로서 작용한다. 붉은 지붕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텅 비고, 부서지고, 끝내는 집의 골격만 남게 된다. 그 과정은 화자가 다시 욕망을 느끼고 명확하게 깨닫는 과정과 평행을 이룬다. 즉 붉은 지붕 집의 변화는 화자의 심리 변화를 상징한다.



⑴ 온전한 붉은 지붕 집

소설 도입, 붉은 지붕 집은 온전했다.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 사는 상상은 화자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때 화자는 대화가 줄어든 남편과 다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현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집안일과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퇴직하고 혼자만의 시간은 전혀 가질 수 없는, 욕망이 거세된 현재를 지키려한다. 온전한 붉은 지붕 집은 그녀의 욕망을 가두는 외부적 요소들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녀의 도피처 역할을 한다.



⑵ 빈 붉은 지붕 집

그녀가 한나의 파인다이닝을 다녀온 이후다. 붉은 지붕 집의 사람들이 이사를 나갔다. 온전해보이던 풍경에 틈이 생겼다. 그래서 그녀는 기분이 좋다. 자신이 그곳으로 이사를 가고, 한나를 초대하는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은근하게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가격을 알아보지는 않는다. 비쌀 것이 분명하고 이사 들어갈 수 있는데도 돈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슬플테니까. 

즉 빈 붉은 지붕집은 파인다이닝에서 잊혀졌던 내밀한 욕망을 자극 받았지만, 아직은 현재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큰 그녀의 심리를 상징한다.



⑶ 공사가 시작된 붉은 지붕 집

얼마 안 있어 붉은 지붕 집의 공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초대권을 받았다. 먼저 남편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그녀는 혼자라도 가겠다고 말하지만, 남편은 선뜻 대답하지 않고 되묻는다. “또?”(p.160.) 악의는 없지만 그녀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되물음. 그녀는 화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붉은 지붕 집을 부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견딜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을 느낀다. 욕망을 입 밖으로 드러냈기에, 그와 동시에 자신의 욕망이 또 시작조차 해보지 못하고 거세되고 있었기에. 화자에겐 두려운 일이 남편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녀는 화를 낸다. 남편의 대수롭지 않은 태도에서 자신의 희생이 당연시 되고 있음을 읽어냈기 때문이다. 지키고자 했던 현재, 어떻게든 미화하고자 했던 현재가, 공사가 시작된 집처럼 부서지는 순간이다. 그녀는 어렴풋이나마 자신을 옭아맨 상황과 거세된 욕망을 인지한다.



⑷ 골격만 남은 붉은 지붕 집

결국 그녀는 그의 발레공연에 가지 못 했다. 또다시 외부적 요소들 때문에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었다. 외면하고 수용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약간이나마 한계를 인지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래서 그 경험은 결국 화자가 지키고자 했던 현재가 부서지는 결과를 낳는다. 

그녀는 처음으로 집 안에 발을 들여놓는다. 변화의 시작. 시작조차 하지 않던 과거에는 느끼지 못한 두려움을 느낀다. 안에서, 발레리노를 연상 시키는 건강한 육체의 남성과 마주친 화자는 성적 충동을 느낀다. 낯설고 당혹스러운 적나라한 욕망을 직시하며 그녀는 명확하게 깨닫는다. 


‘일찍 철이 든 척 했지만 그녀의 삶은 그저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음을.’(p.165.)


어느새 ‘창문도 외뼈도 없이 뼈대만 드러나 있’는 붉은 지붕 집은 모든 것이 엉망이다. ‘하지만 황폐해진 집은 5월의 빛 속에서 군더더기가 생략된 무대처럼 아름’(p.162.)답다. 자신을 옭아매는 외부적 요소들을 모두 버리는 순간 되찾게 될 그녀의 욕망처럼.



붉은 지붕 부수기


백수린 작가의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는 ‘그녀’가 가부장제와 결혼제도 속에서 거세된 자신의 욕망을 깨닫고 되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이전의 그녀가 지향했던 ‘성숙함’의 사전적 정의는 ‘몸과 마음이 자라서 어른 같은 데가 있다’는 뜻이다. 어른 같다는 것. 화자는 그를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하지 않는 것으로. 슬프고 두렵지 않기 위해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성숙한 일일까? 또한, 특히 여성들에게 있어 그게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삶의 태도일까? 보편적 인물인 그녀의 이야기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작가는 이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그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에서 그녀는 바로 외부적 요소들을 버리고 떠나지 않는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 역시 집이 곧 새로 지어지리라는 것은 알았다.

“응.”

하지만 그 집은 그녀가 알던 집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날 오후에 그녀가 보았던 집과도.

“이젠 상관없어.”(p.167.)



하지만 결말, 이제는 그녀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붉은 지붕 집이 있던 터에는 곧 다른 집이 지어질 것이다. 그녀의 맘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매거진의 이전글 크로셰 펀칭 니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