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절을 자신의 옳음이나 유능함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나와 같은 생각에 동의한 것뿐인데, 어느 순간 나를 만만하게 대하는 사람들이요.
처음에는 왜 그런지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친절하면 얕잡아 보는 구나'라는 잘못된 생각에 친절하지 않기 위해 시크한 척을 하거나 무심한 척 나를 가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주고받는 말 이외에 다른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저는 두 가지 이유가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서로가 상대를 보는 관점과 해석의 차이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부족한 이해입니다.
첫 번째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저처럼 타인의 요구, 욕구에 맞추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유지할 경우 경험하게 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초반에는 빠르게 친해지고, 쉽게 가까워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관계가 힘들어진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서로 호의적으로 대했지만 내가 계속 맞추다 보면, 상대는 점점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 양보에 상대가 익숙해지는 거죠.
이건 상대가 나빠서라기보다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그걸 학습하면서 적응해가는 인간의 습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관계가 익숙해지면 계속 양보하던 나 역시 그 관계에 적응해 숨겨진 자아가 나타나게 됩니다.
상대의 욕구만 수용하는데에 대한 불만이 생깁니다. '아니, 왜 나만 양보해?'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때부터 내 태도도 달라집니다.
이 변한 모습이 상대에게는 불쾌할 수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이 흔들리기 때문에요.
그러다 보면 서로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아지고,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멀어지게 됩니다.
서로 사회적 관계, 형식적 관계에로 상대를 보게 되는 거죠.
이런 경우는 서로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내가 양보하면 상대도 그런 나를 알아주고 양보해 줄 것'이라는 해석이,
상대는 '내가 하자는 것에 별 불편 없는, 편한 관계. 나를 편하게 드러내도 되는 관계'라는 해석이요.
두 번째 이유는 인간 본성에 대한 저의 이해가 부족해서였습니다.
어느 관계에서건 두 사람 사이에는 힘겨루기가 존재합니다.
인간은 우두머리 본능을 가지고 있기에 상대보다 우위에 서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 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친절을 만만함으로 해석할 여지가 큽니다.
자신의 의견을 수용하는 이유가 그 의견이 탁월해서, 즉 내가 잘 알고, 잘 하는 더 나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대가 나를 무시하는 표현이나 배려 없는 행동을 많이 할 가능성이 큽니다.
관계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갈등이 불가피하기도 하고요.
물론 내가 적절히 나를 표현함으로써 상대의 욕구를 좌절시키게 되면 그에게 나와의 관계는 흥미로운 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에너지가 적은 사람은 그저 거리를 두는 게 편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만으로도 관계에서 겪는 긴장감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어느 관계이건 매 순간의 선택이 그 관계를 형성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방적인 양보가 아닌 상대를 수용하면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중요한 건, 내 친절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은지를 볼 수 있는 분별력입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타인을 잘 볼 수 있을 때,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