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했는데 통하지 않고, 설명을 해도 더 멀어지는, 관계가 그렇게 힘들게 느껴질 때마다 "왜 사람은 이렇게까지 복잡한 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로고스를 가진 동물(zōon logikon)", 즉 이성의 존재라고 정의했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윤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존재라고요.
반면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심리학에 무의식의 개념을 도입, 인간의 행동은 의식보다 무의식의 영향 아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사실관계로 이해했던 저는, 과거 심리학을 공부했지만 무의식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부분이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시켜나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관계가 힘들어지고 복잡해질 때는 논리와 이성이 개입할 때였습니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이성적으로 설명할수록 서로의 의견이 어긋날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의견이 어긋나면 말은 쉽게 감정적으로 변해간다는걸요.
"그게 아니잖아. 나도 내 사정이 있었던 건데."
"네 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갈등은 그렇게 지속되었습니다.
또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논리적으로 말하고 이성적으로 설명해도 대화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잘 아는 것 같았던 우리가 남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 상황을 해결해 준 건 논리적인 말이 아니라 감정적인 말이었습니다.
"아, 그래. 그게 서운했을 수도 있겠다. 내가 내 상황만 말하느라 네가 속상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어."
"나도 네 사정 모르는 건 아닌데, 내 마음 몰라준 게 많이 서운해서 그랬어. 미안해"
관계를 이어주고 풀어주는 건 감정이었습니다.
상처를 주고 낫게 하는 것도요.
그래서 저는 사람은 생각하는 감정의 존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해야 할 이유가 수십 가지여도 마음이 움직이면 할 수 없거나 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많은 부분 우리는 마음의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마음을 살필 줄 아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만족스러운 관계, 조금 더 따뜻한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