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들을 하는 걸까요. 엔딩크레딧이 오를 때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차분한 눈으로 검은 화면을 보는 그 사람들의 표정은 묘합니다. 머릿속에선 영화를 되감고 있을까요. 꼭 밤바다 앞에 앉아 출렁이는 파도를 보는 여행자의 표정 같기도 합니다.
스크린 너머 사유의 세계에서 현실로 빠져나오는 마지막 터널. 엔딩크레딧은 그런 게 아닐까요. 검은 화면 위로 현실의 이름들이 오르는 이 순간, 영화는 비로소 삶과 이어집니다. 영화의 정서에 물든 채 현실로 돌아온 사람은 달뜬 흥분을 느끼기도 어쩐지 조금 차분해지기도 합니다. 영화의 메시지를 가지고 나온 사람은 극장에 들어서기 전의 그와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가상과 현실이, 허구와 실제가, 상상과 생활이 만나는 접점입니다. 이 어두운 터널 속에서 우리는 증류수처럼 사유하고 탄산수처럼 전율합니다. 영화와 삶의 대화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저도 어느덧 아재인 건지 '최고의 엔딩크레딧을 보여준 영화는 뭐였을까' 돌아보니 성룡영화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룡영화. 성룡영화라니! 적어놓고 보니 정말 아재 같군요. 그렇습니다, 아재입니다. 포기하면 편합니다.
어릴 땐 명절이면 티비에서 늘 성룡영화를 틀어주곤 했습니다. 설날 저녁에 가족들이 모여 배를 깎아먹으면서 성룡영화를 보는 건 아재가 아재개그를 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특유의 타격음이 경쾌하게 울리던 <취권> <폴리스 스토리> <프로젝트 A> 같은 영화들을 기억하시겠죠. 이쯤에서 미소 짓고 계시다면 여러분도 포기하세요, 편합니다.
엔딩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성룡영화 특유의 NG모음은 영화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였죠. 구르고 떨어지는 성룡 형을 보며 '액션씬은 저렇게 고생해서 찍는 거구나' 불현듯 깨닫곤 했습니다.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해서 NG를 내는 배우들을 보고있으면 덩달아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죠.
거의 마지막 '정통 성룡영화'라 할 수 있는 <차이니즈 조디악12>의 엔딩크레딧엔 NG모음과 함께 성룡의 육성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나 재키 찬은 내가 자랑스럽다.” “위험한 액션신을 찍을 때마다 두렵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든다. 이게 마지막 액션씬이 되진 않을까, 내 생애 마지막 씬이 되진 않을까….” 허구를 만든 과정을 보여주며 자연스레 관객을 현실에 돌려보내는 성룡영화 특유의 NG모음. 이제 성룡영화를 볼 일이 거의 없는 시대가 되고나니 어쩐지 짠하고 그립습니다.
약 2년 전 연재를 시작했을 때 "영화와 스타트업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고 첫인사를 드렸습니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스타트업의 성장스토리가 한 편의 영화라면, 그 영화의 엔딩크레딧은 성룡영화 같은 'NG모음'이면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매일 작은 실패들와 작은 성공들을 반복하면서, 때론 참 바보 같은 실수도 많이 합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갑니다. 수많은 'NG'를 내며 울고 웃습니다. 그 과정에 액션이 있고, 코미디가 있고, 스릴러는 물론 때론 호러와 멜로(!)까지 있는 복합장르죠. 이 영화의 끝에 엄청난 반전이 있는데 겁나 환상적인 해피엔딩이라는 소문이 있으니 모두들 꼭 끝까지 보시길 바랍니다.
약 2년간 70편의 글을 썼습니다. 재밌었고, ...정말 재밌었습니다. 스타트업 교훈충으로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정리해보는 일은 주마다 나 자신을 다잡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바쁜 일상의 연속을 끊고 숨고르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컨텐츠와 컨텐츠 생산방식에 대해 이런저런 실험들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이렇게, 저떤 날은 저렇게 써봤습니다. 그냥 맨몸으로도 써보고, 더 찾기 힘들 만큼 조사한 후에 써보기도 했습니다. 잉여로운 글도 써보고 진지한 글도 써봤습니다. 그렇게 여러 구도와 방식과 취향들을 테스트해볼 수 있었습니다. 스타트업 마케터로서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브랜딩 저널리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좀더 개인적으론 한풀이를 했습니다. 이 칼럼의 원형은 학생 때 대학신문에 연재한 글들이었습니다. 참 풋풋하고 곧 후회할 글들을 많이도 썼습니다. 더 잘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컸는데 스타트업 관람가를 통해 꽤 해소가 되었네요. 물론 이것도 1년만 지나면 풋풋하고 후회할 글들이 되겠지만요.
저는 성공한 창업자가 아직 아닙니다. 그냥 동네에서 새콤달콤 까먹는 쪼렙 마케터입니다. 그래서 뭔가 조언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줌 경험과 생각의 공유, 그리고 공감뿐이었습니다. 때때로의 주제넘음은 역량부족이었습니다. 잘 알려졌건 아니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은 모두 저마다의 실력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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