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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삐삐 Jun 11. 2024

뻐꾸기 아저씨

“이제 곧 오실 시간이다!” 물리치료실 보조 선생님이 씩 웃으며 말한다.

“누가요?” “매일 5시 40분이면 오시는 분이 있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꼭 오시거든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아 그렇구나’ 하며 별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러나 나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게 고문당하는 심정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치료 시간이 시작되면, 나는 힐끔힐끔 시계를 보느라 바쁘다.

‘지금 몇 시지? 3시밖에 안 됐구나. 휴 다행이다.’

시간이 얼마 안 지나서 안심하다가도, 5시 40분이 곧 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안해진다.

그러다 일이 바쁘면 정신이 없어서 시계 보는 것도 까먹는다.

문득 아차 싶어서 시계를 보니 벌써 5시가 넘었다.

‘헉, 지금 누구 차례지? 다음은 내가 매뉴얼 할 차례인데…’

째깍 째깍 째깍…

5시 40분이 되면 어김없이 문을 열고 등장하시는 뻐꾸기 아저씨.

뻐꾸기시계의 매시 정각을 알려주는 뻐꾸기처럼 아저씨는 오늘도 5시 40분이 됐음을 알려주신다.

“안녕하십니까~” 접수처에 인사하는 아저씨의 당찬 목소리가 들린다.

아저씨는 고개를 돌려 내가 있는 물리치료실을 바라본다.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누군가를 찾는 듯하다. 아저씨가 찾는 사람이 나는 아니다.

아저씨는 두 남자 선생님이 매뉴얼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를 힐끗 쳐다본다.

그다음은 내 차례라는 걸 알아챈 표정이다.

아저씨는 물리치료실로 걸어오다 말고 갑자기 몸을 틀어 텔레비전이 있는 대기석으로 간다.

아저씨는 삑-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 들더니 커피를 호로록 마신다.

그러는 사이에 내가 다른 환자에게 매뉴얼을 시작하면, 아저씨는 마시고 있던 커피를 휙 버리고 다시 물리치료실로 걸어온다. 아저씨는 내 차례가 지나가기를 기다린 것이다.

 

아저씨는 나한테 매뉴얼을 받기 싫다는 무언의 압박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겉으로 나에게 매뉴얼 받기 싫다는 티를 내지 않으셔서 다행이었다.

내가 매뉴얼 할 차례면 매번 하시는 그 행동이 두어 번 반복됐을 때, 나는 그 행동의 이유를 알아챘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도 그 행동의 이유를 알아챌까 싶어 눈치가 보였다.

남자 선생님께 매뉴얼을 받는 날, 아저씨는 손으로 충성 표시를 내며 선생님께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충성~ 잘 지내셨습니까~” 어제도 봤으면서 마치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그러다 매뉴얼이 끝나면 “수고하셨습니다~”하며 개운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반대로 나에게 매뉴얼을 받는 날에는 “안녕하세요~”하는 내 인사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이것으로 아저씨와의 대화는 끝이다.

매일 5시 40분이 나에게는 고문이었다. 이마에 물을 한 방울씩 톡톡 떨어트리는 중국식 물고문을 떠올랐다. 매우 작은 물방울들이지만 오랜 시간 계속 맞다 보면 나중에는 이마를 큰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고문이라고 한다.

아저씨가 병원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에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느낀 작은 불안들은 매일 눈덩이처럼 조금씩 불어나 내 속을 썩이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내 심장은 두근거렸고, 누군가 내 목을 조르듯이 숨 쉬는 게 답답했다.

그렇게 불안 속에 살면서 나는 환자의 반응 하나하나에 예민해졌다.

원래 말이 없는 분이어도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말을 안 하시는 건가? 생각하고, 무표정인 분을 보면 나 때문에 표정이 안 좋으신가? 하는 피해의식이 생겼다. 그러다가도 환자가 ‘감사해요.’ ‘시원했어요.’라는 말을 하고 가시면 내 마음이 놓였다.

환자의 표정 하나, 말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나는 위태로웠다.

매일 외줄 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지만 내가 도망칠 곳은 없었다.

‘오늘만 버티면 돼. 이 시간만 버티면 돼.’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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