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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Aug 25. 2024

남겨진 시간



四半世紀


 결혼전 인사차 처음으로 장모님을 뵌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후 세월은 거침없이 흘렀고 결국 당시 55세이셨던 장모님은 이제 팔순이 되셨다. 55세 당시의 당신은 너무도 젊었다. 그래서 내 기억속에는 젊고 단아했던 장모님의 모습이 여전히 선명하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지금은 슬프지만 어쩔 없이 많이 노쇠하신 모습이 되고 말았다. 꼿꼿하던 허리는 굽었다. 키는 센치는 줄었다. 팽팽했던 피부는 중력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되었다. 25년 전에는 1g의 중력을 굳건히 버텼건만 이젠 동일한 중력에도 노인의 육체는 쉽게 변형되고 만다. 걸음 걸이는 너무 느려져서 곁에서 보조를 맞춰서 걷기가 답답하고 힘들 정도다. 기력이 쇠하시면서 눈빛도 서서히 탁해지고 있다. 발음이 부정확해서 한번 들으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육체가 노쇠하면 근력이 몸 전체에서 줄어든다.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입과 혀 그리고 성대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관련된 근육이 작동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으니 발음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시고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경우도 하루하루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외모는 변했고 체력은 한없이 떨어졌다. 시간은 이런 식으로 인간을 적어도 외적으로 무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렇게 가차없는 시간의 횡포도 당신의 자식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손자 손녀에 대한 사랑은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당신의 육체는 스러져가지만 핏줄에 대한 당신의 깊은 가슴속 애정과 사랑은 하루 하루 더 강해져가고 있는 것만 같다. 

 

 신(神)은 시간이라는 냉혹한 수단을 통해서 인간에게서 젊음과 힘 그리고 외형적 아름다움을 앗아갈 수는 있지만 결코 내면 만큼은 어쩌지 못하시는 모양이다. 광속으로 흘러간 시간에 많은 것을 빼앗겼지만 결코 자신의 분신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은 한톨도 내놓지 않으신 것 같으니 말이다. 그때 31세였던 나도 이제 56세가 되었다. 내게도 시간은 똑같이 25년이 흘렀기 때문이다. 만약 계속 살아있다면 25년 후엔 내가 팔순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원칙에 따라서 나도 내가 내면에 간직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박탈당할 것이다. 그러나 딱히 아쉬울 것은 없다. 원래 단체 기합은 덜 억울하다. 나만 맞으면 억울하지만 말이다. 시간의 흐름에 종속되어야만하는 인간 육체의 유한성은 인류에 대한 신(神)의 평등한 단체 기합이다. 인간이라면 삶 속에서 통과해 가야만 할 정규 수업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쉬울 것이 없다. 물론 전혀 반갑지도 않다. 


 팔십이라니! 적어도 이시점의 내게는 아직 한참 남은 것 같은 그 나이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이런식으로 흐른다. 술술 흘러가는 것을 잘 알면서도 동시에 어떻게 가는지는 도대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시간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는다. 쉬거나 멈추는 것은 인간일 뿐이다. 시간은 내가 눈을 뜨고 있거나 아니면 감고 있거나 상관하지 않고 끊김도 쉼도 없이 전진한다. 아마 세상 그 어느 것도 시간보다 부지런하지는 못할 것이다. 단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박동하는 것은 시간 밖에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장모님의 그리고 나의 四半世紀가 그렇게 주머니에서 손빼는 순간보다도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八旬 


 어제 장모님을 모시고 처제네 가족과 우리 부부만 참석해서 장모님의 팔순 잔치를 조촐하게 진행했다. 장모님의 하나뿐인 아들인 처남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일터인 부산에 나가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아쉽지만 빠질 수 없는 일정이라서 장남이 참석하지 못한 미완성의 팔순 잔치가 되어 버렸다. 다행히 쿨한 성격이신 장모님은 전혀 개의치 않으시는 모습이었다. 팔순도 그냥 생일의 하나일 뿐 무슨 대수냐는 듯이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정말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모습이 좋다. 사실 생일에 대한 나의 관점도 그렇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나는 내 생일도 거의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내게 있어서 생일은 그냥 365일 중에 하루일 뿐이다. 내게는 365일의 하루 하루 모두가 새로운 날이다. 전부 중요하고 어쩌면 전체가 평범한 하루일 뿐이다. 장모님도 나와 생각이 비슷할 것 같다. 아마 그래서 쿨하게 장남의 부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셨을 것이다. 그리고 장모님이 가장 사랑하는 손녀인 내 딸은 요즘 지진 뉴스로 시끌벅적한 일본에서 열심히 경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참석할 수 없었다. 이 둘이 가세해 봐야 총 8명인데 그 둘 마저 참석치 못하여 총원이 6명뿐인 '팔순 잔치'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더 조촐한 모임이 되었다. 당신의 건강도 그리 편치 못한 상황이고 게다가 부를만한 친지들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이미 많이 노쇠하신 탓에 누구도 따로 부르지 않았다. 정갈한 한정식 식사, 팔순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적힌 케익 커팅과 축하의 노래, 꽃다발 선물과 기념 촬영 그리고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현금 선물 증정' 순서로 장모님의 팔순 잔치는 끝이 났다.    


 예전에는 팔순 잔치 정도면 많은 자손들은 물론 친척들까지 초대하여 시끌벅적하게 상을 차리고 한바탕 크게 즐기는 자리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이젠 적어도 도시에서는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시대가 변하면서 칠순 혹은 팔순 잔치의 형식과 규모도 과거와 비교하여 많이 변한 것이다. 부모를 잘 챙기지 않아서 그렇다기 보다는 지극히 당연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여러가지 이유로 조상에 대한 제사가 간소화 되거나 없어지듯이 부모님들에 대한 '잔치'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젠 자녀도 많아야 한 두 명이고 없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미래에는 칠순이나 팔순같은 다수가 모이는 '잔치'는 완전히 없어질 것이다. 나만 해도 딸아이 한 명이 전부이기 때문에 칠순이나 팔순은 고사하고 제사밥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제사를 지내지도 않겠지만 지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지금도 내 생일 상에 거의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데 죽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사실 자녀의 수가 많았던 과거에는 집안의 어떤 행사든 행사가 있게 되면 온 집안을 시끌 벅적하게 만들곤 했다. 제사, 부모님 생신 그리고 명절 할 것 없이 말이다. 우리집만 해도 7형제였기 때문에 과거에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당시 명절을 보낼 때면 우리 가족만 모여도 20명 이상이 한 집에 모이곤 했다. 우리 식구만 9명이고 배우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20명이 훌쩍 넘는 대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칠십도 되기 전에 세상을 뜨셨기 때문에 잔치다운 잔치를 할 기회가 없었지만 만약 더 사셔서 칠순 그리고 팔순 잔치를 했다면 아마도 적지 않은 규모의 행사를 해야 했을 것이다. 지금 아내와 둘이 살고 있는 40평형 아파트에 20명이 들어찼다고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인데, 당시는 더 좁은 주택에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득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때는 한 방에 대여섯명씩 옹기종기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고스톱을 치고 술을 먹었다. 부엌에서는 하루 종일 음식을 해 대느라 두 세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아이들은 휴대폰에 빠져있는 요즘과 달리 마당에 나가서 뛰어다니면서 신나게 놀았다. 그런 식으로 좁은 주택에서 20명이 넘는 가족을 먹이고 재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때는 그때의 맛이 있고 지금은 지금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때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때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어떤 아련한 추억의 향기를 희미하게 피우고 있을 뿐이다. 지나간 그때를 돌아볼 필요는 없고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에 현실과 형편에 맞는 대응을 하면 될 뿐이다. 그리고 어제 우리 가족은 그걸 한 것이다. 




宇宙中唯一不變的是變化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 뿐이다.' 라는 말이 있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라서 다시 말하기가 불필요할 정도의 진리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다. 불변의 진리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고, 올해 뜨겁게 겪고 있는 불타는 여름의 열기도 똑같은 수준으로 다시 겪을 수는 없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내년의 여름은 더 뜨겁게 찾아 올지도 모른다. 이 말을 구구절절 굳이 여기에서 하는 이유는 사실 장모님의 팔순 잔치가 시끌벅적하지 못하여 내심 불편하고 죄송한 마음이 있어서이다. 혹시라도 섭섭해 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한 기류에는 크게 어긋나지는 않게 팔순 잔치를 해드렸다고 자위하기 위해서 고대의 철학자까지 끌어 들인 것이다. 


 그래도 맞사위인데 좀 더 시끌시끌하고 풍성한 자리를 만들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그러나 뻔뻔스럽게도 이미 지난 것이니 어쩔 수 없지 않냐는 식으로 스스로 면죄부를 주고 있는 중이다. 사실 어떤 자리든 두 자리수 이상의 사람이 모이는 모임 자체를 싫어하는 내 입장에서는 거의 미니멀리즘 수준의 팔순 잔치가 나쁘지 않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수준에는 약간은 미치지 못하는 팔순을 맞이하게 해 드린 것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지난 것을!


 대략 75세가 넘어가시면서부터 장모님이 부쩍 자식들의 방문을 더 기대하시는 것을 느껴왔다. 그래서 가능하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가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시간을 잠시 보내고 오곤 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빈도이긴 한데 월 1회 정도면 그래도 평균은 될 것 같다. 장모님댁 근처인 수리산 도립 공원 근처에 있는 맛집을 찾아 다니면서 식사를 하는 식인데 장모님은 큰딸과 맞사위가 와서 좋고 우리 부부는 모처럼 콧바람을 쏘여서 좋은 누이좋고 매부 좋은 일정이다. 오가는 시간 동안 교통 체증 때문에 불편이 없지 않지만 그와 비교할 수 없는 큰 즐거움과 만족감 그리고 좋은 기억을 남겨 주는 일이기도 하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담담하게 설파했듯이 모든 것은 변한다. 나도 변하고 나의 아내도 변하고 그리고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변해버리신 장모님도 변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같은 공간에서 정을 나눌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시간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매우 명백한 사실이다. 불투명한 물병 속은 겉만 보면 도대체 얼마나 물이 남았는지 알 수 없다. 손에 들고 그 무게를 느껴보면 대충 알 수 있고 그 무게가 잘 느껴지지 않으면 가볍게 물병을 흔들어 보면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인에게 남은 시간의 무게는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저 외적인 모습을 보면서 걱정하고 불안해할 따름이다. 시간은 신(神)의 강력한 도구이다. 신의 도구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그 존재가 느껴지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 오로지 지나고 난 후에만 시간이 그렇게 흘렀음을 알게 될 뿐이다. 이게 신의 뜻이라면 그 본질을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다만 겸허하게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인정하고 매 순간 순간을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팔순을 맞이하신 장모님과 새로운 가족이 된 후 눈깜빡할 사이에 사반세기(四半世紀)가 지나버렸다. 시간이 신의 도구이기 때문에 비루한 인간에 불과한 나는 오로지 긴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갔음을 알게 되었다. 시간은 앞으로도 이런식으로 흘러갈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시간을 다스리는 신(神)의 힘을 이길 수 없고 시간을 강력한 도구로 사용하는 신(神)의 뜻을 거스를 수는 더욱 없기 때문에 그저 담담하게 앞으로 남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소중히 쓰는 것만이 마땅한 선택일 듯하다. 얼마인지는 몰라도 남겨진 시간 동안 더 많은 추억과 기억을 쌓고 싶다. 대부분 나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아내도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정확히 같은 생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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