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몬테의 7가지 와인을 추천함
귤의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고, 중국의 첨면장면이 한국으로 오면 짜장면이 되듯이, 원래 돼지기름에 계란과 치즈를 잔뜩 넣어 만들던 이탈리아의 카르보나라도 이제는 다른 요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크림과 우유를 넣고 끓인 소스에 햄이나 베이컨을 면과 함께 볶아주는 크림파스타가 카르보나라 아니냐 하면 이탈리아 셰프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불쾌해하더군요. 이제 그 이름의 요리는 세계 각국으로 퍼져 완전히 다른 다양한 음식으로 변해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말로 광부, 숯쟁이라는 뜻인데, 하얀 요리 위에 시커먼 흑후추가 많이 뿌려져 있는 이유로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썰이 유력해 보입니다.
이탈리아의 정치 역사에는 카르보나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카르보나리당이 등장합니다. 한국식으로는 이름이 마치 라면당 같은 느낌이라 우습기도 하지만, 18세기말의 프랑스혁명으로부터 자극받은 이탈리아 국민들의 민족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하여 19세기 리소르지멘토라고 부르는 이탈리아의 통일운동까지 연결되는 그 시초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는 지식인들의 비밀 결사 조직이었습니다. 그 이름은 어쩌면, 18세기초에 벌어진 스페인의 왕위 계승 전쟁 당시, 스페인 제국의 영토에 속한 이탈리아 여러 왕국중 사보이 공국의 수도 토리노를 프랑스군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전사했던 광부 출신 군인 “피에트로 미카”를 기리는 의미였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토리노로의 진격이 좌절된 프랑스군이 성내로 연결된 지하 통로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침투를 시도하려 했으나 이를 먼저 알아챈 피에트로 미카가 지하 통로를 폭파시키는데, 몸을 사리지 않고 큰 부상을 입으면서도 프랑스군의 진격을 가로막게 되고, 이후 그 여파로 전사하여 이탈리아의 영웅이 됩니다. 훗날 어떤 사람은 그가 도화선의 길이를 잘 못 계산해서 그런 거지 몸을 사린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지만, 그냥 멋진 영웅인 것으로 우리는 정리합시다.
최근 출장 중 우연히 피에몬테 와이너리들을 방문할 기회가 생겨서 둘러보게 되었는데, 위에 언급한 토리노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고급와인들을 생산하는 피에몬테주의 주도이고, 동계올림픽으로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곳입니다. 피에몬테 지역 와인하면 모두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만 떠올리는데, 사실은 역사가 꽤 오래되었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들이 많이 있습니다. 토리노 북동부 지역인 로마냐노에 있는 와이너리 IOPPA가 소개해 드리고 싶은 그중 한 곳입니다. 19세기 중반부터 이 지역에서 와인을 생산했던 이오파 가족들은 오랜 역사에도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로마냐노 지역의 와인을 더 열심히 알리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요즘 새롭게 알려지기 시작하는 Gehmme의 와인을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새로 지은 와이너리 건물이 정말 멋있었고, 고객 친화적으로 디자인되어 있는 편안한 와이너리입니다. 가성비가 매우 높은 다양한 와인들이 있지만 특히 IOPPA의 Nebbiolo Rusin을 추천드립니다 한국식이건, 미국식이건, 아니면 진짜 본토의 카르보나라이건 상관없이 함께하면 즐거움을 배가 시켜주는 와인입니다. 신선하면서도 그 느낌은 너무 가볍지 않고 화이트소스의 파스타 질감과 매우 잘 어울리는 로제와인입니다.
광대한 영토와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던 로마의 역사를 뒤로하고, 이탈리아도 우리 민족처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부침을 겪어왔습니다. 덕분에 아직도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사이가 별로 안 좋은데, 우리가 옆에 있는 어떤 나라와 계속 그런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은 떠났지만 다시 이탈리아는 나폴레옹의 프랑스를 거쳐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되고, 보르도의 소유권이 100년 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듯이, 또 와인은 새로운 전쟁의 원인으로 역사 속에 반복됩니다. 나폴레옹 전쟁 중 피에몬테 영토를 잠시 잃었던 사보이 공국은 프랑스의 패배와 빈회의를 거쳐 피에몬테를 되찾으면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으로 국호를 개정합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19세기 중반 피에몬테 지역의 와인에 대한 세금을 일방적으로 인상하자, 롬바르디아, 토스카나 지역등의 오스트리아에 대한 세금 납부 거부 및 소극적 반란 행동들과 함께 샤르데나-피에몬테 왕국은 반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던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발맞추게 되고, 이후 에밀리아로마냐 등 이탈리아 중부 연합주들을 합병시키면서 강력한 통일 세력으로 성장합니다. 이탈리아의 리소르지멘토에서의 최고 영웅은 주세페 가리발디 장군입니다. 피가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붉은 셔츠단을 조직하여 통일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했던 영웅인데, 붉은 옷을 떠올리면 홍의 곽재우장군이 생각나기도 하고, 또 훗날 정적들의 공격으로 남미로 피신하는 것을 보면 역모에 시달린 국민영웅 이순신 장군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가리발디 장군도 피에몬테 지역의 포도밭을 소유했다거나, 그가 소유했던 성이 지금은 와인박물관이 되었고, 피에몬테 지역에도 프록셀라가 돌기 시작했을 무렵 프랑스 니스 출신인 가리발디 장군이 보르도믹스를 가져다가 기술을 전수해 줬다는 등의 야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문헌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네요. 정작 가리발디 장군을 기념하는 와인은 프랑스도 이탈리아도 아닌 브라질의 Galibaldi winery(협동조합이며 가리발디 장군과 직접 관계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에서 만드는 저가의 스파클링이 검색이 되는데, 평가 점수가 그리 높지 않으니 꼭 추천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이탈리아 통일 역사의 한가운데 놓였던 피에몬테에는 현재 이탈리아 와인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네비올로 포도로 만든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가 있습니다. 바롤로는 와인의 왕으로 통하는 최고의 네비올로 와인인데, 바롤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들만 이 이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바롤로 지역에서는 최고의 와인들을 골라내서 상품성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바롤로 콘소르지오를 구성하고 긴 시간 동안 자체적인 연구를 통해서 지역 내 11개 마을의 181개 구역(MGA)을 선정하여 이 구역 안에서 재배된 포도로 생산된 와인의 경우에 한해 특정 비냐(Vigna:포도밭)의 표기가 가능하도록 체계를 정비했습니다. 그 외 구역에서 생산되는 네비올로로 만든 와인들은 그냥 바롤로, 그 구역 안에서 나온 포도로만 만든 와인들은 그 특정 비냐의 싱글빈야드 바롤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들 중 오늘 추천드릴 와인은 현재 바롤로 협회장을 맡고 있는 Ascheri의 Barolo Coste&Bricco입니다. 바롤로 지역의 Coste와 Bricco 두개밭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생산한 최고의 바롤로 와인입니다. 겉은 바짝, 속은 촉촉 익힌 두툼한 티본스테이크와 함께 최고의 조합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피에몬테(Piemonte)는 산(Monte)의 발(Pie)이라는 뜻으로 알프스의 골짜기에 있는 지역입니다. 프랑스와 산을 끼고 접해있어서 음식문화가 매우 발달해 있고, 이탈리아의 부르고뉴라고 비교할 만큼, 네비올로 와인은 부르고뉴의 피노누아와 많이 닮아있습니다. 피에몬테는 아스티, 알바,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라모라, 브라, 카날레, 겜메, 로에로 등 다양한 지역에서 네비올로를 비롯하여 바르베라, 돌체토 등의 레드와인과 아르네이스, 코르테제, 모스카토 등의 화이트와인을 주력 생산하고 있습니다. 바롤로가 와인의 왕이라면, 바르바레스코는 와인의 여왕으로 통합니다. 같은 네비올로로 만든 와인이고, 밭도 바로 옆에 붙어 있지만, 그 토양과 재배하는 사람들의 방식이 달라지면 결과물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는 모양입니다. 앞에 설명한 바롤로의 MGA와 마찬가지로 바르바레스코도 동일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지역 이름을 더 늦게 사용하게 된 바르바레스코가 MGA제도는 바롤로보다 수년 전에 도입하여 먼저 운영하고 있습니다. 바르바레스코 지역의 4개 마을 66개 구역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두 가지 중 저는 개인적으로 바르바레스코를 더 선호하는데 저의 내면에 숨은 여성성이 혹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지역에는 이미 우리나라에도 매우 잘 알려져 있는 와이너리 Pio Cesare가 있습니다. 이 와이너리의 지하 셀러는 2000년 전 폼페이시절의 성벽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면서, 별도의 인공장치 없이 자연적으로 습도와 온도가 유지되는 놀라운 공간입니다. 역사와 자연의 신비로움을 한 번에 느끼고 싶을 때, 역사와 명성을 확인해보고 싶을 때, 그리고 네비올로의 여성성에 도전해보고 싶을 때, 피오체사레의 Barbaresco il Bricco 싱글빈야드를 추천드립니다. 샤퀴테리와 함께 넷플릭스 영화 한 편 틀어놓고 함께 즐겨도 좋겠고, 롬바르디아 지역의 유명 요리인 Ossobuco(소꼬리 요리)와 함께 해도 좋겠습니다.
사실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 특히 싱글빈야드는 가격이 꽤 비싸기 때문에 쉽게 즐기기 힘든데, 이때 추천드리고 싶은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Rocche Costamagna의 바롤로입니다. 이 와이너리의 와인셀러는 바롤로 지역 내 라모라 마을의 언덕 꼭대기에 있습니다. 바롤로의 포도밭들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고, 날씨가 좋으면 멀리 알프스의 산맥까지 멋있게 바라볼 수 멋있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거리의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새들도 날아다니며, 따뜻한 햇살에 아름다운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낭만적인 광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골목 사이에 훌륭한 레스토랑, 재미있는 가게, 이탈리아에 가면 꼭 맛봐야 하는 젤라또 가게들이 널려있는 즐거운 동네 한가운데 조용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Rocche Costamagna의 Barolo, Barolo Dell'AnnunZiata, Barolo Dell’Annunziata Riserva 3종을 같은 빈티지로 호라이존탈 시음해도 다른 와이너리의 바롤로 싱글빈야드 한 병 가격 정도에 즐겨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뭐니 뭐니 해도 얇아 찢어질 것 같은 도우에 얹어 만든 마르게리타 피자가 최고의 음식이죠. 함께 즐겨보세요.
피에몬테를 방문하면서 가장 신선했던 경험은 네비올로 포도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이었습니다. 적포도로 만들었다고 전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황금빛의 드라이하면서 기포가 품위 있게 지속되는 너무나 훌륭한 스푸만테를 만난 겁니다. 이름하여 Cascina Chicco의 Cuvee Zero입니다. 푸줏간을 시작으로 가족들이 나눠먹을 와인을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은 Canale지역의 광대한 밭과 고급스럽고 미로같이 멋있는 와인셀러를 보유한 와이너리입니다. 뭐랄까, 가성비라는 단어가, 시음하는 동안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그래서 저도 모르게 한 상자 구매해서 출장 복귀 시 만나게 될 동료들에게 모두 한 병씩 선물로 안겨줬습니다. 어떤 음식과 함께해도 거슬리지 않고,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맛있는 아무 안주라도 함께하면 한 번에 두세 병도 금방 뚝딱 마실 수 있을 만큼 흥겹고 맛있는 와인입니다. 저라면 앤초비가 잔뜩 올라간 나폴리피자와 함께 하겠습니다. 2-3만 원 정도 가격이면 구매가 가능한 이 가성비 넘치는 스푸만테로 파티를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