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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면토끼 Jul 23. 2024

축복받지 못한 탄생.

치유 - 꺼내는 중입니다.


나의 이야기면서, 그녀의 이야기이고,


시작하는 이야기면서 끝내는 이야기이다.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면서 헤어지고 오는 그 첫 번째 이야기.






저 멀리 뉘엿뉘엿 지는 석양이 오늘따라 참 붉기도 하지.



그대로 멈춰 온 세상을 빨갛게 집어삼킬 것 같은 기세로 10월의 지는 태양이 그녀를 비춘다.



그녀는 노을에 몸을 맡긴 채 잠시 눈을 감으며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는구나 싶었다.



무거운 몸으로 추수를 끝내도 할 일은 끝없이 이어지고 이에 질세라 한숨도 끊임없이 새어 나온다.



숨쉬기가 버거워 나오는 숨인지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자 나온 한숨인지 구분할 기운이 그녀에겐 없다.



시선아래 가슴보다 더 불룩하게 솟은 배는 오늘일지 내일일지 기약이 없다.



기약이 없는 이는 여기 또 있다.



그녀의 남편.



남편은 어디로 가버린 건지 그의 시간을 그녀에게 맡겨버린 채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늘 그랬다.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면 마무리를 하지 않고 사라지고 술로 마무리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지는 뻔했다.



깊은 한숨이 그녀를 감싼다. 잠시 그 한숨에라도 기대어 쉬고 싶지만 엄마 손길이 필요한 첫째와 엄마 손길이 간절한 둘째를 위해서 힘든 몸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그녀가 움직여야만 아이들이 산다.



저녁을 준비하려고 들어간 부엌을 보니 부족한 세간살이가 꼭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올라오는 서글픔이 눈앞을 뿌옇게 가렸다.



누가 볼세라 쌀을 씻으며 쌀뜨물과 함께 눈물을 흘려보내는 그녀다.



사르르 아래 배가 아파온다.



마음이 아파서일까? 아니다, 그럼 낮에 일하며 급하게 먹은 점심이 탈이 났을까?


그것도 아니지.


그제야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했던 그녀의 하루가 스쳐 지나갔다.



땅땅하게 굳어 있는 배를 거칠어진 손으로 어루만져 주어도 소용없구나.


부엌에 나와 화장실로 향하는 길에 마주한 햇살이 꼭 그녀 같았다.


곧 넘어갈 사람.



화장실로 향하여 마주한 문 앞에서 잠시 멈칫한다.


느낌이 세하다.


들어가지 않고 화장실을 끼고돌아 주섬주섬 치마를 겉어 올리며 자리를 잡는다.




저녁준비 생각에 마음은 급하고 정신은 다른 곳에 가있고 손에 쥐어진 종이 달력을 얼마나 쥐어 잡고 있었을까.


별안간 가까이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붉은 건 지는 태양인데 내 눈에 비친 건 붉은 피투성이다.


똥과 함께 피투성이인 아기를 탯줄을 메단 채 걸었다.


탯줄이 끊어지면 아기와도 끊어질까 봐 그렇게 시간을 걸어왔다.


우리 엄마는.



내가 처음 세상에 나와 닿은 곳은 땅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손길과 엄마의 흙먼지투성이 옷.



엄마는 나를 가지고 나서 산부인과 진찰은 성별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엄마는 말한다.


그때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봤다면 넌 지금 여기 없다고.


뒤이어 아빠도 말한다.


넌 주워왔다고.




평범하게 집에서 낳았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난 집도 아니고 길도 아닌 곳에서 태어났다.


받아주는 산파도 없이 낳고 엄마가 주웠다.



나는 똥통에 빠져 죽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 아기였다.



불쌍하다. 짠하다.


그때 내가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난 아무것도 모른 채 울고만 있었다.


태어난 게 기뻐서.


태어나자마자 아파서.


태어나니 슬퍼서.



그때 진짜 불쌍했고 짠한 건 우리 엄마가 아니었을까.


더럽고 냄새나는 그런 곳에 나를 낳아서.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못해서.


깨끗한 보자기도 아닌 더러워진 옷에  싸안고 와야해서.




나를 안고 방으로 들어오는 엄마는


그 순간


내가 태어나서 행복함을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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