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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타쿠나 May 08. 2024

울 오빠 보러 애셋 냅두고 6시간 운전한다

사랑합니다, 데이브레이크 Daybreak

지난 4월, 데이브레이크 오빠들이 군산에서 공연을 했다. 주말 운전을 하니 왕복 6시간 정도가 걸렸다. 어린이집 다니는 꼬마 둘과 초딩 딸은 엄마 없는 토요일을 보내야 했다.

(데이브레이크를 아시나요? '들었다 놨다', '꽃길만 걷게 해줄게' 같은 한 번쯤은 들어본 노래를 부른, 무려 2007년 데뷔한 4인조 밴드입니다.)


 장거리 운전할 이유가 충분한 공연이었다.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보면, 사슴이 나무꾼에게 선녀들이 목욕하는 연못을 알려주며 애 셋을 낳을 때까지 선녀옷을 절대 돌려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왜 하필 애 셋이었을까.. 양팔에 낄 수 있는 애가 최대 두 명이라서? 직접 키워보니 3명은 좀 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셋을 거두면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다른 마음을 먹을 여유가 없다. 그런데도, 애 셋을 낳은 뒤부터 데브 덕후 활동을 시작했다. 그만큼 진심이라는 뜻이다.  (물론 하나도, 둘도, 없어도 다 힘듭니다..시적허용으로 읽어주세요)


왜 하필 데이브레이크였을까. 시작은 우연했다. 시험에 지겹게 떨어지던 취업준비생 시절, 혼자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고 데이브레이크를 처음 알게 됐다. 그때 들었던 노래는 '팝콘', 설레다 못해 팝팝 튀어오르는 노래의 경쾌함이 내 처지와 너무도 달랐다. 그래서 묘하게 기분전환이 됐다. 집-도서관만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이 파릇파릇해지는 것 같았다.


그 시절이 지나고는 데이브레이크 노래를 듣지 않았다. 취업을 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일상에 굳이 의미부여를 하거나 특별한 무드를 채색할 필요가 없었다. 주어진 일, 해야 할 일을 기분에 상관없이 해내면 됐다. 그런 태도가 익숙해지고 난 뒤에야 나는 청춘이 지났음을 알게 됐다.


다시 만난 데이브레이크는 또, 우연 때문이었다. 당시 즐겨듣던 노래의 가수가 데이브레이크와 합동공연을 해서 처음 공연을 보게 됐다. 그들시간이 흘러도 빛바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듯 푸르던 시절 듣던 노래를 불렀다. 나를 지배한 건 어떤 괴리감이었다. 옛 노래를 듣고 설레하는 건 어쩐지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느낌이었다. 남자친구를 옆에 두고 방방뛰며 오빠의 손짓, 몸짓 하나에 꺅꺅 거리는 관객을 보고 '좋을 때다' 하며 뒷방 늙은이의 눈길이나 보냈다. 그때는 몰랐지, 그 순간 내가 데브에 스며들었음을.


공연의 여운으로 한동안 내 플리를 오빠들의 노래로 채웠지만 ('불멸의 여름'을 특히 많이 들었다) 또 잊었다. 그러다 한참 뒤 불쑥한 마음으로 소규모 단독공연을 가게 됐고...그때부터는 데이브레이크를 향한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 수 없었다. 여건이 되는 한 모든 공연을 갔다. 야외공연장에서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애들을 보고 나는 오빠들을 봤다.


공연 다니기가 힘들고 눈치도 보여 '이제 그만 해야지' 하고 현타가 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빠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그런 회의가 무색하게 눈에는 이내 눈물이 맺혔다. 아직은 끝낼 때가 아니다. 그래서 4년째 계속 공연을 쫓아다니는 중이다. 


이런 진지함은 때론 주변의 놀림거리가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휘둘리지 않고, 휘둘릴 필요도 없지만..(이게 오덕의 본질이다) 밴드에 빠졌다고 하면 '여유가 있나보네', '아직 젊다, 이 엄마' 같은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 지면에서 한 발자국쯤 떠 있는 취급을 받았다.


예전에 발레 덕후 활동을 할 때와 비교하면 온도가 다르다. 그때는 볼쇼이보다 마린스키 발레단이 더 좋은 이유나 루돌프 누레예프 안무 버전의 촘촘한 스텝이 주는 정교함에 대한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낯설어도 기꺼이 들어줬다. 지금처럼 가벼운 주제로 여기지 않았다.

한때는 발레를 보러 해외원정을 가기도 했다. 덕질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덕질한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덕후 활동은 대상을 바꾸며 계속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빠들은 나의 '신'이다. 그리스신 같은 인격신의 느낌으로다가. 탁월하고 비범해서 숭배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인간의 형상이지만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고 (울오빠 나이는 반백살이지만 언제나 30대처럼 보인다)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는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압도적인 감정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바닥에서부터 꾸역꾸역' 올라온 데브 성장의 역사는 어떤 숭고함을 자아낸다. 인정과 성취에 목말라 진심보다는 간판에 연연했던 내게 그런 모습은 이루지 못한 꿈이기도 했다. 데이브레이크는 내게 문학이고, 영화고, 인생이다.


간절하지만 오빠들을 너무 속속들이 알아버리지 않게 완급조절을 한다. 적당한 신비감,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계속 느낄 수 있도록 적당히 펜스를 친다. 그렇다, 덕후 활동을 하는 이유는 삶 속에서 보고 듣고 확인할 수 있는 우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몇이든 어떤 사람이 됐든지 간에 덕질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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