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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타쿠나 Apr 22. 2024

[함께읽자] 행복을 향한 사소한 시작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탐구보고서>, <행복을 나르는 버스>

벌써 20년이 다 돼 가는 일이다. 고향 가는 고속버스 옆자리에 한 남성이 앉았다. 삼사십 대의 그는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버스가 속도를 높이고 내부의 공기가 고요히 가라앉자 그는 조용히 전화를 건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는 듯 자기가 배를 다시 타게 됐다고, 이번에는 2년쯤 있다가 돌아온다고 했다. 전화를 한 두 통 더 돌린 뒤 그도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그의 사연을 궁금해하면서 나는 까무룩 잠에 빠졌다. 


버스가 휴게소에 도착해서 정신을 차렸다. 잠이 덜 깨 멍하니 있는 내게 아저씨는 휴게소에서 산 도시락을 건넸다. 놀랐고 당황했다. 고맙다고 너스레를 떨면 됐을 텐데 “진짜 안 먹어도 되는데….” 하며 엉거주춤 도시락을 받아들었다. 속이 좋지 않아 먹는 둥 마는 둥 대부분을 남겼다. 아저씨의 속상함이 표정에 묻어났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남은 음식을 애달파하는 것 같았다. 호의를 가벼이 대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런데도 헤어질 때까지 살가운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다. 곧 바다로 오래 떠날 사람이었는데…


멋쩍게 건넨 도시락은 대화의 물꼬를 트고 싶다는 소박한 신호였던 것 같다. 낯선 이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이라도 하염없을 바다 위 시간이 가까워져 옴을 잊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니면 그저 아무에게라도 친절을 베풀고픈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큰 일을 앞두고 관대함을 베풀고 싶은 기분에 휩싸이기도 하니까. 뭐가됐든 대화를 나눴다면 서로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을 것이다. 삶의 특별한 만남은 우연하고 소박한 형태로 종종 일어나니까, 지금에 와서 미화된 기억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것인가


저씨가 궁금했음에도 대화를 트지 않은 이유는 어떤 염려 때문이었다. 그가 불쾌한 얘기를 불쑥 꺼낼 수도 있고 투머치 토커라 끝없는 이야기에 맞장구 쳐야 할 수도 있다. (다른 승객들은 안 듣는 척 우리의 대화를 주시할 것이다;;) 이런 노파심은 낯선 이와의 교류를 가로막는 장벽이다. '비용을 과대평가하고 이익을 과소평가하는 게 일반적인 의사결정의 특성이라지만' 인간관계에서 그 편차는 두드러지는 것 같다. 섣부른 관계보다 침묵이 안전해 보인다. 정말 그 판단이 맞을까? 이걸 연구한 실험이 실제로 있다. 대중교통에서 생면부지의 사람과 대화하는 편이 좋은지 미국의 시카고대학에서 확인해본 것이다.

    연구진은 혼자 기차와 버스를 타는 사람에게 특정 행동을 하고 그 경험을 평가하게 했다. 한 그룹 참가자들은 1.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하거나 2. 평소대로 행동하거나(무엇을 읽거나 일을 하는 등) 3. 혼자 만의 생각에 집중하며 고독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연구진은 다른 그룹에게는 셋 중 한 가지 행동을 '상상'으로만 하게 했다.
    실험 결과 두 그룹이 긍정과 부정으로 꼽은 행동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실제 행동한 그룹은 대화를 가장 긍정적 경험으로, 고독을 즐겁지 않은 경험으로 꼽았다. 반면, 상상만으로 평가한 그룹에게는 고독이 최상, 대화가 최하의 경험으로 여겨졌다.
출처ㅣEpley, N., & Schroeder, J. (2014). Mistakenly seeking solitude.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143(5), 1980–1999


이 실험은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좋은 것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를 드러낸다. 우리는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를 예측하는 데 서투르다. 득이 될 선택임에도 부정을 예단하며 좋은 기회를 날리는 실수를 거듭한다. 인간관계에서 판단 미스의 기회비용은 단순히 좋은 관계가 될 뻔한 사람을 놓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장기적 관점에서 좋은 삶을 만들기 힘들어질 수 있다. 질 좋은 인간관계가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긴 연구 프로젝트라 일컬어지는 ‘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가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하버드의 결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보고서>는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이 80년 넘게 추적한 행복과 좋은 인생의 조건을 집대성한 책이다. 1938년 하버드 의대 성인발달 연구팀은 19세의 하버드대 2학년 학생 268명과 보스턴 빈민가의 10대 456명의 삶을 평생 관찰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이 연구의 참가자였다) 연구는 최초 참가자의 후손까지 대를 거쳐 이어지고 있다. 그 80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좋은 관계는 우리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준다’이다. 돈이나 명예, 학벌은 행복감을 높이는 데 인간관계만큼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빈곤 수준으로 돈이 없으면 고통스러워지는 것은 맞지만, 돈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2010년 프린스턴 대학의 앵거스 디턴과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에 따르면 연간 7만 5천 달러이니 물론 쉬운 것은 아닙니다) 더는 정서적 행복과 뚜렷한 상관관계를 갖지 못했다. 


책은 친밀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을 강조한다. 동반자와 가족과 잘 지내야 한다. 심플하지만 어려운 주문이다. 그래서 연구진은 건강을 위해 헬스클럽에 가듯 좋은 관계도 평생에 걸쳐 가꿔가야 하는 것이라고 격려한다. 10여 년 전 나온 <행복의 조건>이 연구 참가자의 사례 해설을 중심으로 하버드 연구를 소개한 것과는 다르다. 이전작이 지적 흥미를 북돋웠다면 이번 책은 새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준다. 연구 결과를 개인의 삶에 적용하는 법을 고심해 알려주는 지침서 같은 느낌이다. 슬픈 사실은 이론에 통달해도 실천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책 대로 살겠다고 마음 굳게 먹은 날에도 부부싸움을 하고 울었다. 그래서 어느 지점부터 이 책은 자기계발서처럼 느껴졌다. '타당한 말이지만 내가 해내기는 어렵겠군.' 가족과의 관계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참가자는 완벽한 하루 루틴을 보내는 자기계발서 저자처럼 보였다.


다행히 용기를 주는 챕터가 끝부분에 나타났다. ‘중요하지 않은’ 관계도 충분히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하는 호기가 생긴다. 책은 ‘가장 유익한 관계 중 일부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았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일 수도 있다’고 한다. 커피 바리스타와의 대화, 택시 기사와 나눈 잡다한 얘기, 옆자리 승객과의 대화는 가벼운 교류이지만 충분한 의미가 있다. 사소한 기분 좋은 순간은 엉망이었던 하루에 활력소를 주고 스트레스의 균형을 맞춰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상적으로 기분을 고양시킬 기회를 찾고 알아차리는 습관이 생기면 시간이 지나면서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남에게 상냥할 수 있다면 왜 살 맞대고 사는 동반자와 자식에게 그럴 수 없겠는가, 하는 용기가 솟는 것이다. 작은 관계에서 잘 해내는 연습을 하면 주요관계에서도 빛을 발할 것이다. 언젠가는.


작은 관게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뒤 아이가 보는 유튜브 영상이 우려스러워졌다. 초딩 딸은 부쩍 ‘참교육’ 관련 영상을 재미있어했다.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버릇없이 굴거나 공중질서를 안 지키는 이른바 ‘무개념’ 人에게 망신 주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내용이었다. 아이는 실제로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했다. “할머니를 때리는 젊은 사람을 본 적이 있냐” 거나 “볼륨을 크게 키워 지하철에서 휴대전화 영상을 보는 사람이 있냐”는 유의 뜬금없는 질문이 알고 보니 유튜브 때문이었다. 


문제 계정을 차단해도 모르는 이에 대한 불신을 강화하는 시각은 앞으로도 계속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런 눈으로 보는 세상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야생의 공간이 된다. 타인은 새로운 관계를 맺을 가능성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시한폭탄으로 전락한다. 기괴한 빌런이 내 주변에 도사린다고 믿으면 위축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때때로 뉴스를 장식하는 ‘묻지마’식 봉변이 불러오는 노파심도 이해는 되지만, 그렇게 울타리를 치기 시작하면 나의 영역에 들일 사람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차단하고 골라내서 놓치게 될 인연이 애달프다.


어떤 관계든지 시작할 때는 누구나 상대에게 낯선 타인이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친숙해지고서야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낯선 이를 대하는 자세를 인간관계에 대한 기본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후행이 매끄러울 리 없다. 낯설거나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경계만 하거나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대하면 그 영향은 중요한 관계에도 가게 된다. 친절과 배려는 점진적으로 확장해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다루는 버스> : 무심한 타인이 특별해지는 순간


모르는 이와 맺는 사소한 관계는 얕아 보이지만 강렬한 경험을 선사할 수도 있다. 잠시 한 공간에 있었던 사람 덕분에 세상을 보는 또 다른 관점을 선물처럼 얻어가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이런 경험이 쌓이면 삶의 색채는 풍성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낯선 이와 나누는 온정이 어떤 빛깔인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행복을 다루는 버스>는 소중한 그림책이다. 중량감 있는 찰나의 만남은 또, 버스에서 일어난다. 어린 시제이는 할머니와 함께 탄 버스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점박이 강아지와 함께 탄 시각장애인과 문신을 양팔 가득 새긴 아저씨, 기타를 들고 탄 아저씨 등이 버스 승객이다. 그들은 어린아이에게 사소한 친절을 건넨다. 시각장애인 아저씨는 눈이 아닌 귀와 코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알려주고 기타를 든 아저씨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싶은 아이에게 직접 노래를 들려준다. 덕분에 아이는 음악에 빠져들어 공간이동을 한 것 같은 마법의 순간을 경험한다.


어서 내리고 싶을 법한 만원 버스가 특별한 공간이 된 건 그 속에 흐르는 관대한 분위기 덕분이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호응하는 친절함이 마법 같은 경험을 선사했다. 책 속에서 할머니가 뿌린 강한 향수는 머리 아픈 냄새가 아니라 코로 세상을 볼 때 느낄 수 있는 풍경이 된다. 기타 치는 아저씨의 노래는 민폐가 아닌 승객들을 위한 작은 공연으로 변한다. 필요한 건 다른 사람의 몸짓과 말을 따뜻하게 해석하는 태도이다. 그러면 “무심코 지나쳐 알아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 읽고나서야 이 책이 필요한 독자는 아이가 아니라 나였음을 알게 된다.


일부러 관계를 만들어 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행복 탐구보고서>는 관계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다른 목적을 위한 디딤돌이 아니고, 건강과 행복으로 이어지는 기능적인 길도 아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행복을 느끼게 된다. 선후관계가 그렇다.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온전한 대화를 나누고 난 뒤 몸에 퍼지는 따스함과 감사함, 잠깐일지언정 서로를 이해했다는 용기와 안도감은 일부러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사소한 친절과 용기를 갖길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헤어질 사람이기에 베풀 수 있었던 관대함을 가까운 사람에게도 줄 때가 올 것이다. 그때는 선물을 받은 기분이 아니라 인생의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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