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검색창에서 '국내 대기업에 근무 중인 직원 중 임원이 될 확률'을 검색해 보니 0.83% 라고 한다.
그런데 임원으로 승진한 이후에도 해당 직급을 유지 및 계속 승진할 가능성을 연차 기준으로 나누어 보면,
어느 정도의 확률 분포를 보일까?
내가 근무했던 회사의 경우, 사업부 실적에 따라 연간 임원들의 퇴출률은 10~30% 내외였으며, 평균적인
임원 재직기간은 약 5년 정도였다.
그렇치만 예외적으로 15년 이상을 계속 임원으로 '생존(?)'하시는 분들도 간혹 있었는데, A의 경우 40대
중반에 임원으로 승진하여 60대 초반에 퇴임한 케이스로 그의 '임원 생존확률'을 계산해 보니 약 4% 였고,
임원이 될 확률과 같이 연계해 보니 거의 0.04% 정도로 매우 희소성을 가진 확률 분포에 속해 있었다.
엔지니어로서 성공 열망에 가득 차 있었던 나는, A의 어떤 장점이 'Rule과 Process'가 엄격한 회사 인사
시스템에서 계속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고, 그래서 먼저 A의 프로필을 조사해 보았는데
결과는 나의 예상과 전혀 맞지 않았다.
A는 SKY 대학출신도 아니었고, 박사와 같은 특정 분야의 전문성도 없었으며, Career path나 집안 배경(?)
에서도 특이점이 전혀 없었다. 다시 말하면 '학연, 지연, 혈연'과 같은 동아줄도 하나 없이, 신입사원부터 박박 기어서(?) 올라온 전형적인 흙수저 유형이었다.
그래서 나는 A에게 인터뷰를 요청해서 궁금한 사항들을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나의 첫 질문은 "프로필을 보니 좋은 조건들이 없었는데 어떻게 남들보다 빨리 임원이 되셨나요?" 였는데,
A는 웃으며 "유민 씨, 저는 개인적인 실력보다는 조금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라고 겸손하게 답변하였다.
그리고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이며 "지금 보시는 손가락은 모두 비슷한 크기에 역할도 달라서 어떤 손가락이
항상 최고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요. 단지 어떤 동작이 필요할 때, 그 순간에 가장 중요한 손가락이 무엇이냐? 의 선택 차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기존 임원을 대체하기 위해 새 임원을 고르는 경우, 후보자 모두가 비슷한 역량을 가진 경우가 많아 선택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보다는 팀 전체가 좋은 성과를 내서 더 큰
조직으로 확대될 상황이 되거나, 회사가 크게 성장하기 위해 추구하는 새로운 기술을 리딩할 인재가 필요한
경우, 손가락은 하나뿐만 아니라 두 개 이상이 선택받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남의 파이를 뺏을 것이 아니라 전체 파이를 더 크게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했으며
일을 할 때, 이러한 업무 방향성을 가지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팀장님이 찾고 있는 기술적인 Item과 Solution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했고, 팀이 더 크게 성장하는데 필요한 기술적 조직과 리더 역할을 제 스스로 만들려고 계속 노력했던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어떤 노력과 실제 성과를 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팀장님과 회사에 어필했었고요.
그리고 저의 과거 스펙보다는 현장중심의 성과를 더 좋게 평가해 주신 인사 시스템과 제가 일했던 IT 시장의 성장 덕분에, 그 당시 제가 운 좋게 임원이 된 게 아닐까요?" 라며 조금은 장황한 설명을 하였다.
A의 답변을 들으면서 손가락 비유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가 소속 팀의 성장을 통해 자신도 발전할 초석을 다져왔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논리적이고 매력적으로 느꼈다.
두 번째 나의 질문은 "임원으로 장기간 생존하신 비결은 무엇인가요?"라는 다소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A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참 동안 침묵하였다.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되자 나는 초점을 바꾸어
"임원 근무 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들은 무엇인가요?"라고 다시 질문했다.
그러자 A는 웃으며 "유민 씨, 이제 좋은 질문을 하셨어요. 저는 '경영 Risk 대비 안전'을 지키는 것이 항상
최우선 사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화재나 인사 사고, 품질 사고 등이 크게 발생하면 쉽게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겨울철 내리는 눈을 매일 청소'하듯 팀원들과 계속
현장에서 점검하며 소통했습니다. 실제 안전사고가 발생될 확률을 항상 '0'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하이인리의 법칙처럼 조그마한 사고 징후가 감지될 때 이를 대형사고와 연계해 시뮬레이션하고 예방교육을 반복한 결과,
운 좋게도 15년의 임원 재직기간을 큰 사고 없이 보낼 수 있었습니다.
추가로, 사람 간 관계를 잘 설정하고 조화롭게 하는 것이 팀의 안정과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가근불가원'이라는 말처럼 임원급 리더는 특정한 부서나 사람, 특정 협력사에게 몰입되지 않고 객관적
이며 투명한 관점에서 항상 대응해야 합니다.
통상 임원들은 인사권이나 결재권과 같은 Power를 가지고 조직 및 사업을 이끌어 가는데, 만약 주변 분들이 기대하는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라는 원칙이 무너진다면 '도덕적 해이'를 동반한 금융 부정과 인사 사고가
반드시 발생되게 됩니다. 나쁜 사례로, 저 역시 직원 시절에 학연에 의한 불공정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고,
특정 임원에게 동아줄을 댄 동료 및 협력사 때문에 심적인 고통을 크게 받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원이 된 이후, 저의 스텝부터 '십상시'가 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교체를 했고, 현장 직원들과
직접 소통 및 중간관리자들과도 연간 100회 이상의 소통 간담회 등을 통해 팀에서 혁신할 분야가 무엇인지를 항상 찾았으며, 제가 이해되면 실무에도 즉시 반영 했었습니다. 협력사 거래도 동반 성장은 추구하되, 부정한
사례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즉시 처벌하여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라는 악평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노력을 계속한 덕분인지, 제가 맡았던 팀은 매년 GWP 평가에서도 무난한 성적을 거두었고, 부정사례 관련된 감사(Audit) 한번 없이 저의 임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라며 상당히 재미없고 원칙적인 이야기만을 해 주었다.
A의 답변 대부분은 당장 내게 도움 될 내용이 없었지만, '원칙을 잘 지키는 것이 경영의 기본'이라는 프레임은
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꼭 기억해야 할 메시지로 생각했다.
마지막 나의 질문은 "회사 생활을 오래 하신 경험을 바탕으로 혹시 제게 주실 메시지가 있나요?"였다.
A는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찬찬히 바라보더니, 조금은 촉촉해진 목소리로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저와 유민 씨는 한 세대의 나이 차이가 있고 이미 삶의 방식과 패턴도 모두 다른 상태인데, 저의 과거 회사
생활에 대한 경험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 유민 씨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제가 앞서 이야기했던 말들은 모두 잊으세요.
다만,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시간의 흐름에 무관하게 적용될 수 있는 아래 메시지를 참고하세요.
첫째, 본인과 가족의 건강 및 워라밸을 잘 지키는 것을 항상 최고의 판단가치로 두세요.
둘째,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으니, 팀 플레이를 하세요.
- 현재 1등 하기 위한 의사결정보다는 미래에 다가 올 더 큰 1등을 놓치지 않도록 집단지성을 활용하세요.
셋째, 남에게 도움을 주고 기쁨을 주는 일에 당신의 시간을 투자하세요.
마지막으로 회사 내 직급이 올라가고 인맥이 확장될수록, 친한 분들과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역설을
꼭 잊지 마세요.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은 '멀리서 내게 활을 쏘거나, 가까운 곳에서 칼을 휘두르며 위협하는
사람이 아닌, 해맑게 웃고 안아주면서 내 등에 단검을 꽂는 사람'입니다."
A의 메시지는 모두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지만, 친할수록 조심하라는 이야기는 '사회라는 정글 속에서 누가
언제 적이 될지 모르니 자기 정보 및 관리를 철저하게 잘하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A와의 인터뷰는 실제 8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그의 이야기를 모두 글로 정리하기는 어려웠고 대략 요약하는
형식으로 써 보았는데, A의 멘트처럼 과거의 회사근무 경험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다만, 그가 배고픈 대한민국의 한 시대를 묵묵히 견인해 오면서 흘렸던 눈물과 땀들이
조금이나마 현재의 주인공들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