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하면 되잖아!"
어디를 가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찾아간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 그날 날씨와 아이들의 컨디션에 맞는 곳을 고른다. 우리가 제주도 에코랜드를 방문한 날은 겨울인데도 꽤 춥지 않아 밖에서 놀기 좋은 날이었다. 초록이 무성한 시기에 가는 것이 더 좋겠지만, 마침 어제 내린 눈이 녹지 않아 온통 하얀 풍경도 눈이 시원하여 좋았다.
하얀 눈으로 덮인 곶자왈 숲속을 가로지르는 기차를 타고, 작은 역마다 내려 시간을 보낸다. 호텔에 있는 갤러리 카페도 잠깐 들려본다. 잠깐 쉬며 맛난 빵이나 먹어볼까 하고 들른 베이커리 카페. 카페 입구부터 정교하고 웅장한 작품들에 압도된다.
"와! 얘들아, 여기 좀 봐봐!"
이렇게 크고 다양한 작품들을 가까이에서 본 게 언제였더라. 더군다나 작품의 재료가 다양하다. 비즈를 이용해서 하나하나 작업한 엄청난 크기의 작품, LED를 이용해서 계속 색과 모양이 변하는 작품, 오로지 연필로만 그린 흑백사진 같은 작품 등 이쪽 보랴 저쪽 보랴 눈이 바빴다. 수십 점의 작품이 입구부터 안쪽 카페까지 쭉 걸려 있었다. 사실 전문가가 보기에 이러한 전시 방법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접했던 전시와는 달리 일관성이나 개연성이 없이 각각의 작품들이 자기 색깔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정말 좋았다. 마치 한 번에 여러 전시회를 온 것처럼 신이 났다. 한 작품만 놓고 계속 보고 있어도 아쉽지 않을 것 같은 작품들이 수십 점 걸려 있으니, 하나씩 충분히 봐주지 못하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아이들만 생각하고 고른 곳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니 공돈이 생긴 것처럼 마음이 춤을 췄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아? 뭐가 제일 좋았어?"
각자 자기가 체험한 것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엄마는 그 갤러리 작품들이 기억에 남아. 예술가에 대한 로망이 있나 봐.
나도 그렇게 크고 압도되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
무심결에 속마음이 나왔다. 아이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말한다.
"엄마, 하면 되잖아!
엄마 하고 싶은 것 다 해!"
"그래, 해야겠다! 엄마 배울 거야!"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아이에게 말해 버렸으니, 말한 대로 언젠가 해야 한다.
내가 핸드폰으로 책을 읽고 있으면 아이들이 묻는다. "엄마, 엄마가 쓴 거야?"
내가 핸드폰으로 보는 책에 그림이 있으면 아이들이 묻는다. "엄마, 엄마가 그린 거야?"
쓰고 그려서 책을 만들고 난 뒤, 아이들에게 엄마는 '진짜' 쓰고 그리는 사람이 됐다. 엄마가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아이들이 커가는 걸 내가 매일 느끼듯이, 아이들도 엄마가 성장하는 걸 매일 느끼나보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이자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된다. 앞으로도 우리는 함께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것이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두근대는 가슴을 맞대며 살아있음을 느낄 것이다. 윤중목 시인이 「나의 기도」에서 읊은 것처럼 "매 순간 두근대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정말로 예술가가 된다면,
커다란 캔버스에 오랜 시간 공들여 나의 영혼을 깃들일 수 있다면,
그건 오롯이 아이들 덕분일 것이다.
그날 아이들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하며
딸들 덕분에 꿈을 이루었노라고, 고맙다고 고백할 것이다.
혹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꿈을 향해 나아간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꿈꾸는 동안 나의 마음은 더욱 깊어지고,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게 빛날 테니.
처음으로 여인의 벗은 몸을 만졌을 때처럼
처음으로 파도치는 바다를 보았을 때처럼
처음으로 백범일지를 읽었을 때처럼
다시금 심장의 고동소리가 듣고 싶다
매 순간 두근대고 살고 싶다
- 윤중목, 「나의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