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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넘어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

강사 선정 문자를 받고, 아빠를 생각하다

by 장서나

2월 11일 화요일

[Web발신]

[○○시교육평생학습관]


2025년 상반기 재능기부 프로그램

강사로 선정되셨습니다.


강의 스케쥴 및 강의실 조정을 위해

순차적으로 연락을 드릴 예정이오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오전 10시. 문자가 왔다. 1월에 신청했던 재능기부 프로그램 강사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다.


가슴이 떨렸다. 계속 미루다 설 명절 전에 용기를 내어 신청하고는 잠시 잊고 있었던 터였다.


'내가 드디어 강의할 수 있구나!'


문자를 본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 어떤 기준으로 강의 경력이 없는 나를 선정했을까 하는 의구심 내지는 궁금증, 잘 준비해서 실망하시지 않게 해야겠다는 다짐.


무엇보다 이런 내가 정말 어색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새로운 일에 계속 도전하고 있고,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고 있다. 내가 원래 하던 일이 아니기에 미숙한 부분도 있지만, 매일매일 내 자신이 성장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이 '성장'이 정말 어색하다. 마치 다시 20대 사회 초년생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그 시절보다 지금 더 도전하고 부딪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이 시대의 수많은 가장이 떠올랐다. 수십 년을 근무한 직장에서 퇴직하고 가족들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던져졌을 그들. 가족들에게조차 내색하지 못했겠지만, 사실 얼마나 떨렸을까. 두렵고 긴장됐을까. "내가 원래"로 시작되는 그들의 라떼 이야기는 어쩌면 마지막 남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고, 면접에서 몇 번이나 떨어지면서 낙심했을 때, 사실 그 깊이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아빠니까 당연히 자신과 가족을 위해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이제 나이가 드셔서 연금도 나오니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해도 크게 상관없지 않나'라고 생각하기도 한 것 같다.

아빠는 몇 번의 지원과 면접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지원하셨다. 꽤 오랫동안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시다가 직장의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셨다. 그 후에도 일만 있으면 아르바이트라도 나가서 일하시고, 새로운 일도 전혀 마다하지 않으신다. 지금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서 일하고 계신다.



가족 채팅방에 강사로 선정된 소식을 올렸다. 모두 잘 해낼 거라며 응원하고 축하해준다. 글을 보고 있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딸, 대견해!"

"마흔 넘어서 새롭게 시작하려니까 너무 어색해. 이 나이에 성장하는 게 이상해."

"하하하. 아빠도 나이 들어서 시작할 때 그렇더라."

아니나 다를까. 아빠도 내 생각과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아빠가 계속해서 도전하고 새로운 것에 적응해 나가시는 건 '연륜' 덕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마음' 덕분인 것 같다. 마음을 먹고 부딪히는 것. 내가 그동안 수많은 책 속에서 찾고 있었던 그 '마음'이 바로 내 곁에 아빠에게 있었다. 살아있는 교과서처럼, 나에게 말한다. 삶으로 말한다.


"너는 잘하고 있어.

마흔이든 쉰이든 여든이든 너는 계속 성장하는 거야.

계속 도전하고 새롭게 배우는 거야.

실패해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모두가 알아주진 않아도 누군가는 알아줄 거야."


그리고 나는 내가 배운 것을 또 삶으로 그려갈 것이다. 나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를 아는 이들이─나이에 상관없이─나를 통해 도전과 성장의 기쁨을 배워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어색하고 낯설어도 괜찮다. 어색함은 새로운 시작의 징표이며, 떨림은 성장의 신호임을 안다.



문득 첫 강의 날, 수강생들 앞에 서 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아마도 긴장되고 상기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게 되겠지.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강의를 맡은 장서나입니다. 저 역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중이에요. 우리 함께 이 시간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누며 성장해 보면 좋겠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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