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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쟁이 May 09. 2024

늘 웃으며 지내.

거의 5년 만에 대학교 은사님을 뵈었습니다.       


퇴임하시고도 여전히 바쁘게 지내시는 은사님께서 출장차 서울 올라오셨다가 얼굴 한 번 보자시는 연락에 기쁜 마음으로 만나 뵈러 나갔지요. 메시지로, 전화로 안부만 여쭙다가 직접 뵈니 너무 좋았습니다.      


요즘 뭐 하고 지내냐 하시는 물음에 어버버 할 새도 없이 글을 쓰고 있다고. 개인 공간에 글을 쓰고 올리고 있다고 실토하였습니다.     


글 쓰는 건 가족을 포함한 지인들에게 다 비밀로 하고 있었거든요. 왠지 모르게 좀 부끄럽고 민망하고. 표현의 자유가 제약될 것 같고. 왠지 모르게 검열관들이 늘 것만 같은..

뭐 그런 느낌.. 여러분도 아실까요?     


그래서. 주변에 이야기를 안 하고 있었는데. 교수님께 실토를 해 버렸습니다. 비밀로 해달라는 말씀도 덧붙이면서요.     


한동안 아파서 계속 쉬고 있었던 걸 아셔서, 걱정을 끼쳐드리기도 죄송스럽고.. 뭔가 열심히 몰두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던 마음이 앞서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교수님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하시더라고요. 생각이 날 때마다 끄적끄적 적고 싶은 욕구가 일렁일 때가 있는데....라고 하시길래, 냉큼 권해 드렸습니다. 비공개로 쓰시거나. 아님 공개로 글을 한 번 써 보시라고요. 그렇게 저희는 서로의 글쓰기 '도반' 이 되어 주기로 약조했습니다.      


필사를 하면 좋은 점도 설파하고요. 대하소설을 정말 좋아하시길래, 혹시 '최명희'님의.... 라고 말을 꺼내기 무섭게 '혼불!'이라 대답하시며 최명희 작가님의 생가에 가보신 이야기를 진지하게 해 주시는 교수님의 모습을 뵈며, 저의 이웃님 한 분이 떠올랐습니다.     


저의 이웃님 중에 소설가의 꿈을 가지시고 혼불을 필사하시는 분이 계신다고. 교수님도 한 번 해 보시라고 권해드리기도 했습니다. 글쓰기와 독서를 좋아하는 공통점을 가진 분들과는 내향인끼리라 하더라도. 대화가 끊이질 않겠구나.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요.    

   

"늘 웃으면서 지내." 하시며  돌아서 가시던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귓가에 계속 맴돌더라고요.


글을 쓰면서, 웃음이 늘었습니다.

    

뭔가에 쫓기듯 조바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몸이 많이 안 좋았고요. 가방끈은 긴데, 어디에도 써 보지 못하고 있는 가방끈이라 속상한 마음도 제 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기회가 올 때마다, 하지 못하게 막아서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 그때마다 저항하거나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그저 포기하기만 했던 저에 대한 원망도 있었습니다.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제 마음에 생채기를 냈던 사람들과의 관계들로 좌절했던 순간들조차도.

나 스스로를 지키려 하기보다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원망하고 자책하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거와는 이제 서서히 안녕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거든요.

그때의 나도 저이고. 지금의 나도 저입니다. 과거의 나의 모습에. 과거의 일들에 대해 후회해 보았자 과거에만 매몰될 뿐이니까요.     

 

뭐 어쩌겠습니까. 다 지나간 일인 걸요. 되풀이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냥. 지금은 지금의 삶에 충실하는 겁니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연구하고 끈질기게 공부해 보았던 경험은 제가 포기하지 않고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고요. 안 될 거라는 생각보다, 결국엔 해 낼 수 있을 거라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수동적으로 순응하며 살았던 삶의 경험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지난날의 경험들은 저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며 '저'를 찾아가는 여행을 할 수 있게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해서 글을 써 나갈 수 있도록. 블로그. 이곳으로까지 데려다주었네요.      

 

되풀이되기만 했던 과거를 끊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해 주었네요.

이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늘 웃으며 지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이제 아무런 마음의 거리낌 없이, 웃으며 지낸다 말씀드릴 수 있는 지금이라서 너무 좋습니다.      


느리더라도. 천천히. 꾸준한 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저는 제가 좋아하는 글을 계속해서 쓰고 있으니까요.     


그 한 걸음이면 됩니다.

힘들었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힘을 내는 순간들로 이끌어주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저는 글을 씁니다.

     

따뜻한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어서.

혹시 저처럼 돌고 돌아 아름다운 길을 찾아오시는 중이신 거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고.

같이 힘내보자고.

함께 하자며

      

오늘도 저는 글을 씁니다.     


좋은 사람 곁에 좋은 사람 곁에 좋은 사람,

생각쟁2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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