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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갈 Jul 09. 2024

[리뷰] 이 재미를 당신도 알았으면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V.17 후기

덕후의 역사는 길다. 유치원도 가기 전부터 나는 문방구 한쪽에 붙어있는 스티커에 눈을 때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너무 귀여워서 갖고 싶었던 것일지라도, 아까운 나머지 사서는 정작 한 번도 어딘가에도 스티커를 붙이지는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귀여운 것에 감탄하고 그것을 단지 간직하는 것에서 오는 쾌락을 알았던 것이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부터는 문구류에 대한 왜곡된 집착이 강화됐다. 확언하건대, 나는 고등학생 때 매일 월드콘을 사 먹은 것 외에 모든 용돈과 세뱃돈을 문구류에 올인했었다. 시작은 학교 앞 문방구였지만, 나는 이내 대형 서점의 고급 문구류에도 눈을 떴고 학기 초에는 동대문 문구/완구 거리를 누비며 동네에서는 구할 수 없는 각종 노트와 필기류를 섭렵해 갔다. 예쁘게 하는 것에 대한 욕망은 지면에 대한 완전한 통제욕과도 이어졌다. 나는 멀쩡한 필기도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내가 세운 볼펜/형광펜 체계에 어긋나는 실수가 생기면 과감하게 뜯어내고 다시 쓰기 시작하는 학생이었다. 그건 공부라기보다는 일종의 공예였고 취미 활동이었다. 중학생 때부터는 문구류 자체에 대한 집착 외에도 캐릭터와 일러스트, 그것을 창작하는 작가님들에 대한 선호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좋아하는 캐릭터 A의 굿즈를 차근차근 마련해 갔다.


이건 ‘고-급’의 미감과는 거리가 있는 어떤 집착, 몰두, 섭렵과 가까운 행위이다. 다만 나는 왕성한 의욕과는 상반되게 정보력은 부족한 학생이었다. (그것은 고등학생의 예산 고려하면 차라리 잘된 일이기도 하다) 대학생이 되고 난 뒤 나는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이 일정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매년 서울 일러스트 페어(이하 서일페)의 메이트가 되어준 대학 동기는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한 친구였다. 손 필기에서 전자 필기로 넘어갔던 대학생 1학년 때, 지금도 그러하지만 나는 다이어리만큼은 수기를 고집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완전히 통제할 지면은 일정표에 한정된 것이다. 나는 나의 6공 다이어리에 손수 그림을 그려가며 한 땀 한 땀 다이어리를 꾸며갔다. 그것은 일정한 체계가 있는 ‘다꾸’의 세계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행위였다. 친구는 나에게 지면을 꾸밀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알려주었고 나는 십수 년 이어온 집착으로 다시 그 세계에 몰입해 나갔다. 매해 7월과 12월은 나에게 서일페의 달이었고, 탕진으로 인하여 통장 잔고를 눈치 봐야 했지만, 가슴이 뿌듯이 차오르는 예쁜 것들로 웃음이 멈추지 않는 시간이기도 했다. 올해에도 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다! 다들 서일페에 참여한다면 반년에 한 번씩 뿌듯하게 행복할 수 있을 텐데. 다꾸와 꾸미기라는 심신 안정제는 덤이다. 


서일페 참여를 위한 꿀팁


서일페에 10번 정도 참가해 본 경험자로서 올해 12월 서일페에 당신이 꼭 오길 바라며 전하는 몇 가지 팁들을 공유한다.


① 여유로운 입장을 원한다면 오픈런을 하자!

서일페는 10시에 시작한다. 그리고 11시부터는 인파가 몰려 부스가 확연히 북적인다. 부스의 수가 많은 만큼 인파가 몰리더라도 구경에 큰 방해가 되지는 않으나 좀 더 여유롭게 초반 구경을 원한다면 시작 시각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 개장과 동시에 입장하는 것을 추천한다. 무엇보다 부스는 많고 홀은 넓다. 현실적으로 하루 안에 모든 부스를 다 보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고, 체력에 따라 실패할 확률도 높다. 따라서 초반 한 시간 동안 여유롭게 빠르게 부스를 구경하는 것이 전체 체력 안배에 유리하다.


② 현실적인 예산을 세우고 현금을 준비하자!

카드 결제가 가능한 부스도 있지만 대부분의 부스는 현금 혹은 계좌 이체만 가능하다. 현금을 추천하는 이유는 계좌 이체를 할 경우, 자신이 얼마나 썼는지 계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과소비의 지름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산을 너무 빠듯하게 짠다면 금방 계좌이체를 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동전과 지폐를 잘 넣을 수 있는 지갑을 마련해서 지출로 인한 타격을 최소화하자!


③ 최애 작가님이 있다면 출발 동선에 고려하자!

앞서 말한 대로 전체 부스를 다 구경할 수 있는가는 그날 나의 체력에 달렸다. 꼭 가고 싶은 부스가 있다면 그 부스가 있는 라인을 시작점으로 잡는 것이 체력적으로도, 재정상에도 유리하다.


④ 당일 재입장이 가능하니, 피곤하다면 부스 내 카페테리아를 이용하거나 코엑스 내 타 시설에서 휴식을 취하자!

손목에 띠를 두른 뒤에 당일에는 재입장이 가능하다. 홀 안에도 간단하게 음료와 빵을 섭취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와 화장실 등은 준비되어 있으나 내부 인원이 많은 만큼 매우 붐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것은 중간에 쉬지 않고 빠르게 입장하여 오전 중에 대강의 구경을 마치는 방법이다. 그러나 꼭 전체 부스를 다 구경하고 싶지만,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중간에 적절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내부 카페테리아는 시간대에 따라 앉을 자리가 없을 수 있다는 점은 유념하자.


⑤ 감탄은 쉼 없이 해도 괜찮다!

서일페는 단순히 일러스트 제품을 한 번에 모아 파는 장소 이상의 의미다. 작가님들이 페어에 참여하시는 이유는 매출 창출도 있지만 고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이기 때문도 있다. 다수의 일러스트 작가님은 전용 소품샵이 있다기보다는 몇몇 소품샵에 입점하거나 온라인으로 판매/홍보에 집중하는 전략을 핀다. 그렇기에 현장에서 고객들의 생생한 반응을 접하는 것,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상호작용을 만들어 내는 것이 서일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 귀엽고 아름다운 작품에 환호성을 지르면 작가님의 은은한 미소를 마주할 수 있다. 혹시 팬인 작가님이 있다면 현장에서 바로 엽서나 제품을 산 뒤 사인을 받을 수도 있다. 작가님들도 부스에 찾아온 구매자들을 위해 무료 덤을 넉넉히 준비해 주시는 경우가 많으니,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 있다면 그 감탄을 입으로 표현하는 것이 서일페에서는 언제나 환영이다. 


귀엽고 친절한 당신들이 좋아!



서일페에 들어서면 나는 어떤 편안함을 느낀다. 귀여운 걸 좋아하는 사람들, 맛있는 걸 먹기 거기에 돈을 쓰는 사람들. 높은 인기에 부스는 늘 붐비지만 서로 부딪히는 일이 생기더라도 친절하게 웃어주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자신의 캐릭터를 사랑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들이 여기에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캐릭터를 또 사랑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작가분들의 배려는 가끔 계산서에 포함되는 것을 초월한다고 생각한다. 이 재미를 당신도 알았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길 바라본다.



*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0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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