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사회에 도전하는 두 여성의 해방과 저항, 멀티미디어 오페라
2024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가 10월 3일부터 10월 27일까지 전국 각지의 공연장들에서 진행된다.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새로운 서사:마주하는 시선’을 주제로 동시대 예술의 경향을 소개하고 예술의 새로운 실험에 주목한다. 당대 예술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국내·국외의 수준 높은 공연, 공연장·공연 예술단체와 공동 추진하는 협력 공연, 아울러 ‘예술과 기술, 사운드’ 등 새로운 실험 프로젝트들이 소개된다. 또한 워크숍 페스티벌에서는 관객과 예술가가 한데 모여 동시대 예술의 흐름을 공유한다.
올해 워크숍은 <포커스 중동>으로 아랍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는 페스티벌 프로그램이 준비되었는데, 이에 따라 이번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는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아랍·중동·이슬람의 서사 기반 공연을 다수 접할 수 있었다. 무더웠던 8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선정작들을 확인했을 때부터 10월이 오기를 기다리며 쏟아지는 작품들을 예매했다. 10월, 어느 때보다 늦게 찾아온 가을에 나는 10월 5일 아랍의 가부장적 사회체계 속 여성의 지위와 해방을 다룬 멀티미디어 오페라 <우먼, 포인트 제로>를 관람했다. 아직 다수의 공연이 남아있는 지금, <우먼, 포인트 제로>의 후기를 전하며 서울공연예술제에 더 많은 시민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먼, 포인트 제로>는 이집트 작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나왈 엘 사다위의 동명 소설을 재구성해 무대화한 작품이다. 기존 오페라 장르의 문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재탄생한 멀티미디어 오페라로, 2022년 프랑스 남부 오페라 축제 ‘액상 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초연했다. 10월 4일과 5일 양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이 진행되었으며 이번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의 공연이 아시아 초연이다. 내가 관람한 5일에는 무대 공연 후 제작진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우먼, 포인트 제로>에는 두 여성이 나온다. 한 여성은 페미니스트이자 활동가인 파트마이며, 다른 여성은 그녀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자 하는 젊은 영화 제작자 사마이다. 파트마는 한 남성을 살해한 죄목으로 감옥에 수감된 상태이다. 사마 역시 혁명 운동 가담자이지만 동지들과 달리 수감되지 않았고 철창 바깥에서 파트마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되었다.
파트마는 지옥과 선택, 사랑과 자유에게 침을 뱉는다. 그것들은 한 번도 파트마의 것이었던 적이 없었고, 그랬던 삶에 주어지는 지상에서의 수감과 저승에서의 지옥은 가소로울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사는 것이 지긋지긋한 만큼 잃을 당당함이 없다. 파트마는 태어났다. 남자 형제들과 다르게 그녀는 학교에 갈 수 없었다. 또래 남성과 설렘도 있었지만, 할례를 받는다. 부모의 죽음 이후에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글자를 가르쳐주었던 지식인 삼촌네로 가게 된다. 그녀는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삼촌의 아내 역할’을 해야 했다. 그녀는 그것을 사랑이라 기억한다. 우리는 그녀의 기억을 따를 뿐이다.
삼촌의 결혼 이후 그녀는 기숙사 생활을 했고, 곧이어 10대에 결혼하게 된다. 남편은 돈 많은 할아버지였다. 결혼 이후 그녀는 성적으로 학대당하고 금전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남편의 많은 돈 중 한 푼도 그녀를 위한 것은 없었다. 여성이 가정에서 그러므로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오직 복종뿐, 그것이 신에게 가닿는 길이다. 그녀는 학대를 피해 도망친다. 도망친 길 위에는 그녀를 ‘어떻게든 해보고자’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그녀는 괜찮다. 길은 위험하지만 자유롭다. 우리는 그것을 자유라고 말해본다.
매춘을 한다. 처음 만난 매춘 마담은 그녀를 착취하기도 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준 고마운 엄마기도 하다. 기술을 배워 그녀는 자신의 사업을 벌인다. 그녀는 처음으로 행복하다. 내 방이 있고, 카페에 가서 먹고 싶은 음료를 시킬 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혁명 운동을 하는 정치 조직에 가담한다. 조직의 지도자의 비서 역할까지 하며 열심이었지만, 조직 지도자에게 성폭력을 당한다. 남자 하나 죽여서 감방에 갇힌 거. 그거참 가소롭다. 별거 아니다. 신이 회개하지 않는 나에게 지옥만을 선사한다면, 그 지옥에 침을 뱉어주리라.
<우먼, 포인트 제로>는 호소력 깊은 서사 전개 방식 외에도 음악과 무대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무대 배경으로는 중동 지역 여성들의 인터뷰 영상이 작은 소리로 무한히 반복된다. 그것은 모두 계산이라도 된 듯, 음악 박자에 맞아들어가 음악의 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 화면 뒤로 하고 배우들이 있는 무대에는 가로 새로 팽팽한 줄이 묶여있다. 선을 넘고 피하며 튕기는 배우들의 표현은 인터뷰 과정에 더 집중하게 했다.
오페라를 볼 때 일반적으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무대 아래에 위치하여 좌석 위치에 따라 상이하겠으나, 관객이 직접 볼 수 없게 배치된다. 그러나 <우먼, 포인트 제로>의 경우 지휘자와 연주자가 배경을 차지한다. 일반적인 서양 악기 외에도 한국의 대금, 아랍의 전통 악기가 함께하는 연주에서 지휘자이자 음악감독 카나코 아베의 지휘가 돋보였다. 카나코는 연주자들에게 단지 연주만을 지시하지 않는다. 극 중 파트마가 경험하는 성폭력과 캣콜링, 구타의 순간은 연주자들의 입과 손의 소리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연주자들은 오페라에 깊게 연루된다.
공연의 마지막 대사는 파트마가 내내 인터뷰를 한 사마에게 건넨 말이었다. ‘피와 땀으로 하는 투쟁 말고 예술로 할 수 있는걸’ 해보라는 그 말과 함께 무대는 암전된다. 그 말이 참 묘했다. 응원 같기도, 비아냥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극 중 파트마와 사마는 불화한다. 갈등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서로 다른 처지가, 그것이 관계의 전부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파트마는 이집트 시골에서 태어나 교육받지 못했고, 어렸을 때부터 성폭력과 강간에 노출되었으며 인신매매 수준의 결혼을 했다. 직업은 성노동자이며 살인죄로 감옥에 수감되었다. 한편 사마는 같은 여성이지만 도시에서 태어나 대학 교육까지 받았으며 결혼도 이혼도 본인의 선택을 통해서 하였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직업이고 철창 바깥에서 파트마를 인터뷰한다.
사마가 행복하기만 했을 리 없다. 불행할 수만은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 그녀 역시 혁명 운동에 가담했으며 파트마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증언하고 기록하고 있다. 그녀는 고등 교육을 받았지만, 그녀가 고등 교육을 받아 만든 결과물이 그녀의 삶을 옥죌 것이다. 파트마도 이야기가 하고 싶다. 파트마의 인생에는 그녀에게 빌붙고 싶어 하는 빌어먹을 작자들만 가득했다. 무언가를 느끼고 성찰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삶이 아니었지만, 파트마는 사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것이 어떤 의미일지 알면서, 동시에 알 수 없으면서.
이야기하기라는 과정은 파트마에게 아무 의미가 아니었다가도, 위안이 되었다가도, 한순간에 재수 없어지는 과정이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위안도 연대도 인질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파트마의 마지막 말은, 어쩔 수 없는 마음에 대한 표출이다. 한국의 한 극장에서 편히 앉아 오페라를 보러온 시민들이 들어야 하는 말인 것이다. 예술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그런데 또 없다고. 그것은 영영 세상과 고립될 수도, 초월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파트마의 말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