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이야기, 변치 않는 걸작
지난 10월 12~19일 올림픽 체조경기장 KSPO돔에서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인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이 10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내한 공연을 펼쳤다. 오페라’투란도트‘는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의 유작이자 미완 작이다.
고대 중국 제국의 공주 투란도트는 자신에게 청혼하러 온 남자들에게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내고, 모두를 맞추는 사람과 결혼하겠지만 만일 맞추지 못하면 참수형에 처하겠다고 한다. 수많은 남성이 투란도트의 미모에 반해 수수께끼에 도전했다가 참수형을 당하고 만다. 전쟁으로 나라를 잃은 왕자 칼리프 역시 투란도트에, 한눈에 반해 수수께끼에 도전하였고 모든 수수께끼를 푸는 데 성공한다. 그럼에도 공주가 청혼에 응하지 않자, 칼리프는 공주에게 자신의 이름을 맞춰보라며 질문한다. 칼리프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투란도트가 칼리프의 아버지를 찾아내 추궁하자 칼리프를 사랑했던 류는 칼리프를 지키기 위해 자결한다.
여기까지가 푸치니가 작성한 내용이다. 푸치니는 류의 죽음 이후 투란도트가 칼리프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의 설득력을 위해 고민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아끼던 하인이 자신을 위해 자결했을 때, 칼리프가 여전히 투란도트를 사랑할 수 있는지 혹은 지금까지 수많은 청혼자의 목을 베어갔던 투란도트가 이름 모를 하인의 죽음에 감복해 사랑을 알게 될 수 있는지. 감정이 가장 상승하는 국면에서 어떻게 타당하게 결말로 끌고 나갈지는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투란도트를 극장에서 상영할 때는, 푸치니가 작성한 부분까지 미완으로 끝을 내기도 한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의 힘을 빌렸다. 류의 자결 이후, 칼리프는 자신의 이름을 직접 투란도트에 알려주고 투란도트는 그의 이름은 ‘사랑’이라 답한다. 투란도트 역시 칼리프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미완 작에 대해 드는 애정이 있는 것 같다. 누구도 완성작을 알 수 없는 까닭이다. 푸치니가 작성한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것밖에 우리가 그 이야기에 가닿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번 오페라에서 가장 좋았던 아리아는 2막 투란도트가 불렀던 In questa reggia (옛날 이 황궁에서)이다. 이 아리아에서 투란도트는 자신이 왜 외국의 남성들을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를 내어 처형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전말이 나온다. 먼 옛날 궁전을 쳐들어온 타타르 군인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로우링 공주의 한을 풀어주기 위함이라는 것이 그 요지다. 수수께끼를 내고 끊임없이 도시를 죽음으로 휩싸이게 한 투란도트의 속내를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3막에서는 투란도트의 아리아 중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Nessun dorma (아무도 잠들지 마라)를 칼리프가 부른다. 칼리프는 밤 중에 투란도트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 밤,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노래를 부른다. 환희에 찬 Nessun dorma와 애통에 찬 In questa reggia 사이에서 느껴지는 간극 때문이지, 어찌 보면 엽기적인 방식으로 수많은 젊은이를 죽음에 내몬 투란도트를 괜히 이해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류의 죽음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전개를 이해하고 싶은 까닭은 음악에 있다.
한국에서 오페라를 일반 시민이 향유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많다. 우선 오페라의 상대적으로 높은 공연가도 한몫하지만, 전용 극장이 유럽과 같은 수준일 수 없는 점과 오페라가 ‘고급문화’로 여겨지는 만큼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가 앞서는 점도 크게 작용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오페라를 책으로 처음 접했다. 이후에는 영상으로 유명 아리아들을 접한 것이 다였다. 처음으로 극장에서 봤던 것은 프라하에 방문했을 때였다. 글과 영상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오페라를 보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오페라는 노래를 중심으로 한 극, 혹은 극이 있는 노래이지만 동시에 무용과 무대 장치, 의상까지 종합적으로 혁신하는 공연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현장에서 직접 아리아의 울림을 듣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 되는 것이다. 이번 내한 공연은 이러한 오페라의 웅장함을 그대로 담은 공연이었다. 메인 배우들의 아리아뿐 아니라 초대형 무대 위에서 펼쳐진 백여 명의 합창단의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어린이 합창단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무대의상도 공연에 대한 이 입도를 높였다. 가까운 공간에서 이런 규모의 오페라를 만나볼 수 있는 것만으로 뿌듯했던 공연이었다.
*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