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전 미국을 매료한 실화 로맨스. 영화 <빅식>
사랑은 아주 어려운 거야.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영화 <빅 식> 중
"앗 살람 알레이쿰(우르드어 인사말)." 낮에는 우버 택시를 몰고 밤에는 작은 클럽에서 코미디를 하는 파키스탄 출신의 쿠마일(쿠마일 난지아니). 그는 18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5세이다. 안정적으로 미국에 정착한 쿠마일의 가족이지만, 그의 부모는 쿠마일에게 "다른 것은 다 용납하겠지만 결혼만큼은 파키스탄 여자와 하라" 못 박는다.
그러나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쿠마일은 백인 대학원생 에밀리(조이 카잔)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는 이 사실을 부모에게 숨긴 채 파키스탄 여자들과 형식적인 맞선을 이어가고. 설상가상 이 사실을 에밀리에게 들키고 마는데..."나와 함께 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어?" 에밀리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쿠마일은 그녀와의 이별을 결심한다.
얼마 후, 에밀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응급실에 입원하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엉겁결에 에밀리의 보호자가 되어 그녀 곁을 지키는 쿠마일. 뒤늦게 달려온 에밀리의 부모는 딸에게 상처를 준 쿠마일을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잠든 에밀리 곁을 떠나지 않는 쿠마일의 모습에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금방이라도 깨어날 줄 알았던 에밀리의 혼수상태는 14일 동안 이어진다. 쿠마일은 그녀를 향한 그의 진짜 마음을 깨닫고 자신의 부모에게 에밀리의 존재를 밝히기로 결심하는데... 과연 이 둘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2018년 개봉된 마이클 쇼월터 감독의 작품 <빅식 The big sick>. 영화는 주연 쿠마일 역을 맡은 쿠마일 난지아니(Kumail Nanjiani.1978~)와 그의 부인 에밀리 V. 고든(Emily V. Gordon. 1979~)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시나리오 작가인 에밀리는 남편과 함께 3년의 시간을 들여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영화 같은 이들 부부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제작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주드 아패토우(Judd Apatow, 1967~) 감독이다. 그는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 <40살까지 못해본 사람> <사고 친 후에>등의 작품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현시대 미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코미디를 만든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 영화는 대박이 날 것"이라는 아패토우 감독의 예감은 적중했다. <빅식>은 비평가들은 물론 관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2017년 북미 개봉 당시에는 무려 17주간 장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같은 해 아카데미상 각본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2018년 크리틱스 초이스 영화상에서는 최고의 코미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와 함께 흥행에 박차를 가한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었다. 특히 주연 쿠마일 난지아니는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재현해 냈다. 쿠마일은 한국 관객들에게는 생소한 배우지만 미국에서는 인기 텔레비전 시트콤 <실리콘 밸리>를 거쳐 마블 영화 <이터널스>의 히어로 역할에 안착하며 관객들에게 그의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아시아 출신 배우로서 보여준 그간의 쿠마일의 활약은 할리우드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촉진하는데 기여했다 평가받는다. 근년에는 중국 출신 여배우 양자경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한국의 배우 이정재가 스타워즈에 캐스팅되는 등 아시아 출신들의 할리우드에서의 활약이 이어진 바 있다. 그러나 이른바 `대나무 천장`이라 불리는 아시아 출신들이 미국 사회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현상은 미국 영화계의 여전한 과제다.
쿠마일은 그가 미국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도전들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 공개적으로 발언해 왔다. 영화 <빅식>에서는 쿠마일과 그의 형이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자신들을 쳐다보는 미국인들에게 "우리는 테러에 반대합니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다. 무대에 오르는 그를 향해 "ISIS(이슬람국가 호라산)로 돌아가라"는 관객의 야유에 공연장이 소동에 휩싸이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런 차별과 혐오에 재치 있게 맞서는 쿠마일의 모습은 영화의 색다른 관전 포인트로 작용한다.
주연 배우들과 함께 <빅식>의 수혜를 톡톡히 누린 것은 에밀리 엄마 베스 역의 홀리 헌터(Haly Hunter. 1958~)다. 영화 <피아노(1993)>의 에이다 맥그래스 역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홀리 헌터는 <빅식>으로 `인생 캐릭터를 갱신했다`고 평가받았다. <피아노> 속의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는 관객들은 이 뛰어난 여배우가 여전히 사랑스럽고 매력이 넘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주조연 배우들의 열연에 비해 영화가 파키스탄 여성들을 묘사한 방식은 아쉬움을 남긴다. 오래된 관습과 전통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 속 파키스탄 여성들은 특히 해당 지역 관객들에게 불쾌감을 안겼다. 영화에서는 쿠마일의 부모가 매번 다른 파키스탄계 여인을 집으로 불러 아들에게 선보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역할에 기용된 백인과 흑인 혼혈 배우의 어색한 우르두어 연기도 옥의 티로 지적됐다.
영화의 원제 <빅식>은 `큰 고통`을 의미한다. 일차적으로는 혼수상태에 빠진 (영화에서는 절반 이상 잠들어 있는) 여주인공 에밀리의 병을 뜻한다. 동시에 다른 문화권에서 자아를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쿠마일의 성장통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 1400년간의 전통과 싸우고 있다."는 영화 속 쿠마일의 대사는 그가 감당해야 할 사랑의 무게가 `치약을 어디부터 짜서 쓰는지`와는 다른 종류의 것임을 알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이루어진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남녀 주인공이 이루어낸 <빅식>의 기적 같은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색다른 기쁨을 선사할 것이 분명하다. 사랑을 믿는 모든 이들이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영리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빅식>. 편식하기로 유명한 미국 관객들을 사로잡은 이색적인 영화의 맛은 까다로운 한국 관객들의 입에도 꽤나 흡족하게 들어맞지 않을까.
이런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로맨틱 코미디 좋아하는 편 #파키스탄 문화를 엿보고 싶다면? #이게 진짜 실화라고?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연재됩니다.
오마이뉴스에서의 제 기사는 아래에서
https://omn.kr/27vp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