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8화 : 가위바위보 아침 인사
“이제 아침에 가위바위보를 안 하면 하루가 찜찜하고,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해요.”
6학년이던 착실 씨가 담임에게 보낸 편지의 한 문장이었다.
착실 씨는 독서를 좋아했으며, 전 과목 성적이 우수했다. 글짓기, 그림, 체육 등 무엇 하나 빠짐없이 열심이었다. 언니 같은 성숙함으로 주변 친구들을 잘 챙기며 사이좋게 지냈다. 학급을 위한 봉사 활동도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착실 씨는 발표할 때 특히 빛났다. 늘 충분히 생각하고 철저히 조사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묵묵히 스스로 알아서 했다. 한 마디로 착실 씨는 30명을 복제해서 교실에 앉혀놓고 싶은 학생이었다.
착실 씨는 원래부터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그녀는 종종 담임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관해 이야기했다.
“저도 제가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이상하게 점점 자신감이 생겨요. 자꾸 발표해서 제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요. 선생님께 자꾸 편지를 써서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요.”
착실 씨는 높임말로 대화하는 학급 생활이 잘 맞았으며, 매일 발표하며 자신감이 생겼다. 뭐든 열심히 하는 성실성에 뭐든 하고 싶어 하는 적극성이 더해져 그녀는 빠르게 성장했다. 학급 친구들도 담임도 그녀가 하는 말에는 신뢰가 느껴졌다.
그런 착실 씨가 편지에 ‘가위바위보’에 대해 언급했다. 아침에 가위바위보를 안 하면 하루가 찜찜하단다. 가위바위보를 안 하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단다.
‘아! 아침 가위바위보가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구나. 아이들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마법 주문처럼 하루를 지배하고 있었구나. 더 열심히 가위바위보 해야겠다.’
담임은 착실 씨의 편지로 아침 가위바위보에 대한 확신을 굳히고, 더 열심히 할 것을 다짐했다.
아침 가위바위보란 무엇일까?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팬데믹 이전에는 담임과 악수가 등교 인사였다. 에너지 넘치는 날에는 하이 파이브도 했고, 유독 씩씩하게 인사하는 아이들은 안아주기도 했다. 담임과 친근한 스킨십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나 코로나는 우리 반 아침 인사를 불가능하게 했다. 새로운 아침 인사가 필요했다.
그 시기 학급 운영 및 교실 놀이 전문가 쏭쌤 연수를 들었다. 선생님의 교육 철학과 학급 경영 방침이 나와 매우 유사해서 배울 점이 많았다. 버릴 것 하나 없이 알찬 연수 내용 중 쏭샘의 아침 등교 인사에 눈이 확 뜨였다. 바로 ‘가위바위보 인사법’이었다. 높임말 쓰는 우리 학급에 딱 맞는 인사 방법이었다. 바로 학급에 적용하기로 했다. 연수에서 제공한 가위바위보 인사 안내판을 칠판에 부착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매일 아침 등교하여 교실 문을 열면 담임과 가위바위보를 했다.
“가위바위보.” (이겼을 때 배꼽 손) “행복하겠습니다.”
“가위바위보.” (비겼을 때 배꼽 손) “공감하겠습니다.”
“가위바위보.” (졌을 때 배꼽 손) “배려하겠습니다.”
아침부터 가위바위보로 담임을 이겼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같은 손 모양으로 비겼다면 담임과 마음이 통했다는 뜻, 공감하는 사이가 되었다. 가위바위보에서 졌다고 슬퍼할 이유가 없었다. 상대에게 승리의 기쁨을 주었으니, 나는 배려하는 넓은 마음의 소유자였다. 5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매일 아침 담임과 소통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말은 습관이다.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소리는 결코 자연스럽게 발화할 수 없다. 높임말로 대화하며,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를 수시로 말하는 우리 교실에 ‘행복하겠습니다. 공감하겠습니다. 배려하겠습니다.’는 너무나 잘 어울렸다. 학교 오자마자 매일 예쁜 말을 외쳤다. 평소에도 행복, 공감, 배려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행복 씨는 새 학년 시작부터 두 달 동안 아침 가위바위보 인사에서 담임에게 비기거나 졌다고 했다. 한 번도 담임을 이겨본 적이 없단다. 꼭 이겨서 “행복하겠습니다.”를 외치고 싶다는 5학년 아이의 간절함. 행복 씨는 5월부터 가위바위보에서 담임 이기기 도전을 시작했다.
그냥 이긴 것으로 해줄 테니 ‘행복하겠습니다.’ 인사하라고 해도 싫다고 했다. 정정당당하게 이겨서 자신 있게 인사하겠단다. 3월, 4월 거의 40번의 가위바위보를 했을 텐데,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행복 씨의 도전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도전은 쉽사리 성공하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가위바위보.” (행복 씨가 졌다.) “배려하겠습니다. 내일은 행복하겠습니다.”
“가위바위보.” (비겼다.) “아~아깝다. 그래도 공감하겠습니다.”
매일 비기고 졌지만, 행복 씨는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항상 긍정의 말로 씩씩하게 인사했다. 그는 이 도전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며칠이 지났을까?
“가위바위보.”
담임은 바위, 행복 씨는 보자기. 드디어 행복 씨가 이겼다.
“앗싸! 선생님, 행복하겠습니다. 오늘 정말 특별히 행복하겠습니다!”
‘앗싸’를 외치며 행복 씨는 손을 높이 치켜들고 점프했다. 신이 났다. 인사하는 목소리가 우렁찼다. 행복 씨는 그 순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다. 펄쩍 뛰며 좋아하는 행복 씨의 모습에 담임도 너무 기뻤다. 가위바위보에서 지고 행복하긴 처음이었다. 화창한 5월의 아침이었다.
몇 초의 가위바위보와 의무적으로 하는 말이 과연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가위바위보 인사는 현재형이 아닌 미래형이다. 오늘 하루 스스로 행복하겠다는 다짐,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고 배려하겠다는 약속이다. 뭐든 말대로 되는 법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친구의 상황에 공감했고, 자기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했다. 당연히 학교생활은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착실 씨의 편지와 행복 씨의 도전이 이를 증명했다.
교실을 들어서자마자 가위바위보를 하며 우리 반은 짧지만 즐겁게 성장한다. 아침부터 시작되어 온종일 우리와 함께하며 행동이 되고 마음이 되는 예쁜 말. 행복하겠습니다. 공감하겠습니다. 배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