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편
유럽여행까지 따라다닌 고질적인 버릇은 바로 ‘가계부 쓰기’.
아껴 쓰고 또 아껴 쓰기 위해 한국에서 쓰던 가계부를 여행에까지 소환했다.
(그냥 기록하는 걸 좋아하는 덕후일 수도…)
그렇기에,
너무나 안타깝게도 돈이 여행의 질 반 이상을 차지하는 듯하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하고 철저히 사전 조사를 해놓았다 하더라도
정작 그곳에서의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말짱 도루묵.
노노루는 유럽을 다니면서, 이곳에서의 생활에 지장을 느꼈던 적이 많았다.
물론 프랑스어입문 3 수업을 듣는 동안은 내 돈 안 들이고 너무 잘 먹었지만
(외식 비용은 물론 생활비도 지원 됐다)
혼자가 되자마자 돈을 아끼기 위해 정말 열심히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던…
이탈리아 남부 투어에 가서도 점심 식사가 예정돼 있던 식당이 너무 부담돼서
혼자 따로 먹겠다고 일행들과 잠시 떨어져서
노점에서 제일 싸게 파는 마르게리따 피자를 먹었던 기억.
여행 가서 돈 걱정 않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노노루가 유럽에 있는 동안 썼던 가계부를 보면
얼마나 먹을 것에 인색했는지 알 수 있다.
혼자 용감하게 식당에 들어가지 못해서,
민박에서 주는 저녁 식사 꼬박꼬박 챙겨 먹는 건 물론이고,
아침 뷔페식으로 나오는 유스호스텔에선 몰래 점심 저녁 다 챙겨 싸다녔다.
먹을 것뿐만은 아니다.
여행 가서 남는 건 사진과 기념품 들인데 그걸 사는 데 상당히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다행히도 노노루의 눈을 사로잡을 기념품들이 많았던 건 아니었지만)
입장료도 아끼지 말아야지, 가기로 결심했다면 꼭 들어가야지 하면서도
정작 입구에 서면 온갖 고민 잡념들이…
엄청 아껴 썼는데도 막판 프랑스에서 돈이 부족해 엄청 절망했던 기억이 난다.
유로, 넌 참 짱이었다.
여행은 원래 참 좋은 거다.
배우고 느끼는 것도 많고, 생각도 깊어지고.
하지만 여행을 계획하거나 준비하면서
‘내가 이렇게 시간·돈을 들여서 그곳을 꼭 가야 하는 걸까?’
(특히 정보를 샅샅이 찾아볼수록 이미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인 거… 다들 공감할 듯)
라고 진심으로 나에게 묻게 되더라. 특히, 돈.
하지만 이젠 알겠다. 확신한다.
여행은 정말로, 인생 최고의 취미다.
최고이자 궁극의 가치, 그냥 그 자체로도 가치를 가지는 그런.
내가 뼈 빠지게 돈을 벌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고,
그 돈들을 여행을 위해서 써도 아무런 아까움이 들 것 같지가 않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미루고 여행에 홀릭해
이곳저곳을 유랑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제 충분히 알 것 같다.
난 앞으로 돈을 벌고, 또 악착같이 아낄 거다.
왜?
그곳에 가려고.
(사실 20대에 갓 외국에 눈을 뜨면서 가졌던 생각이고
40대를 바라보는 지금은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
여행의 진수는 여행 그 자체가 아닌, 여행을 통한 ‘성장’이다. 그 전제가 바로 ‘기록’이고)
혼자 여행 다니며 돈도 없겠다,
밖에서 물 한 통 사 먹기도 겁이 나 독하게 안 먹었고,
욕심은 또 많아서 하루종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덕분에 걸어 다니는 체력은 꽤나 붙었었다.
지구력이 높아졌달까?
유럽은 전에 갔던 여행과 비교해 봤을 때 훨씬 내 취향에 가까웠다.
앞서 밝혔듯 유럽에 널린 게 미술관·박물관… 원래 미술관·박물관은 혼자 가는 거고.
미술관·박물관은 어디든 꼭 들러보려 했고 26곳에 방문했으며
(주변 사람들이 나보고 미대 다니냐고 했을 정도)
여기서 만난 수많은 작품들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에 충분했다.
유명한 작품을 실제로 보거나 이제까지 몰랐던 작가의 작품을 알게 됐거나.
특히나 중요한 건 나의 취향을 알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나 스스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런 것들을 탐닉하는 데에 매우 심취했으며
혼자 나름대로 생각해 보기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거다.
간단히 말해, 더 ‘공부’ 해보고 싶다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거 같다는 확신도?!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이과생의 좌충우돌 미대 졸업기에서도 나왔지만
당시 프랑스어입문 3에서 만난 학우의 말이 자극제가 되어
실제로 노노루는 일 년 반 후 미대 복수전공에 도전을…!
사실 잘 몰랐다.
대한민국 부모님 중 딸 혼자 외국에 보내주지 않는 분도 계시다는 것을.
노노루야 뭐, 혼자 일본에 다녀온 것도 있고
이번에 유럽에 나온 것도 그렇게 큰 설득이 없이 이뤄줬으니.
유럽에서 가끔씩 만나는 어른들께서 제일 많이 하는 말씀이
부모님이 혼자 나가게 허락해 주셨냐는 말씀.
그리고 꼭 덧붙이셨던 “우리 딸도 이렇게 혼자 나와봐야 할 텐데.”
(찬성과 반대 사이에 고민이 많으신 듯하다)
입학 초기에 엄마의 과보호(?)로 서울 입성이 매우 어려웠던 노노루는,
엄마는 ‘내 인생의 감시자’라는 생각을 깊이 가지고 있었다.
반은 자식 걱정 반은 대리만족으로 이 나이의 딸의 삶을 쥐려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럽을 다니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나를 잘 이해해 주고
내 뒤에서 가장 많은 응원을 보내는 건 엄마라고.
내 삶이 잘 못되지 않도록 걱정하는 마음이 너무 커져서
모자란 딸에게 잘못 비친 엄마의 사랑에 너무 미안해졌다.
그리고 오히려 스스로 결심했다.
내가 엄마의 낙이 되자고, 행복이 되자고.
유럽에서 마주치는 가족 단위, 혹은 엄마와 딸 여행객들을 볼 때마다
저 어머니들은 이런 좋은 곳에 와서 별세계를 경험하고 가는데
대한민국 그 좁은 제주도에서 오직 아들딸자식밖에 모르고 살았을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단순히 타지에서 향수와 엄마가 보고 싶은 걸 떠나
뭔가 마음속 싶은 곳에서 충격을 받은 듯하다.
정말 어찌 보면 무모했고 어찌 보면 찬란했던
먼 타국에서의 기억과 기록들은 어린 노노루의 정신적 자산이 되어
‘갓생’의 씨앗이 됐다.
두 달 만에 어린 22살 노노루를 훌쩍 성장시켰던
어린 두 딸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은 유럽 체류.
샤대 돈으로 4개국 체류하기 첫 시리즈, 유럽이야기 끝.
다음은 일본 시리즈로 슝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