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편
2009년 초여름 어느 날,
갑자기 싸이블로그 ‘오늘 방문자’ 수가 폭발했다.
난생처음 있는 일이라 처음엔 이유가 뭔지 어리둥절했는데
‘유럽 여행이 나에게 남긴 열 가지’라는 제목의 여행기 에필로그가
싸이블로그 메인에 올랐던 것.
일기처럼 가볍게 쓴 글이고 얼굴 사진도 있어서 매우 부끄러웠지만
많은 분들이 응원·질문의 댓글을 달아주셔서 큰 힘이 됐던 뿌듯한 경험이다.
지금은 비공개로 다 돌려버린 아카이브 블로그에
40일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하나 업로드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똑딱이 디카를 가지고 다녔다.
여행 다니며 찍을 땐 좋은데,
생각날 때마다 두고두고 다시 보는 것도 좋은데,
막상 다 해놓으면 엄청 뿌듯한데,
사진 하나하나에 코멘트를 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행 다니는 내내 제일 신경 쓰이고 두려웠던 건,
내 돈이 없어지고 가방이 없어지고 험한 일을 당하는 것보다
훨씬 상상하기 싫었던 건, 바로 내 조그마한 메모리 카드들이
순간의 방심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지금 여기서 아무리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더라도,
돌아가서 남는 게 하나도 없다면?
(기록하는 맛으로 여행하는 사람)
무사히 사진 한 장 상하지 않고 모두 한국으로 돌아와 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여행 다니는 내내 정말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했다.
기차 타랴, 줄 서랴, 입장하랴, 아침 먹으랴.
유럽에 있는 동안 시간을 최대한 아껴서
비행기 삯 뽕을 뽑기 위한 눈물 나는 노력…!
이렇게 40여 일을 7시 전후에 일어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몸에 익어 다녀와서도 그 생활을 이어나갔었다. (2009년 시점)
일부러 2학기 시간표도 아침 시간으로 바꿀 수 있었고.
하지만 4시에 일어나는 요즘으로 치면 그렇게 이른 것도 아니네.
어쩌면 가장 큰 변화. 혹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
장기간의 혼여행이 엄청난 자신감을 줄 줄은 몰랐다.
짧게 다녀온 일본 혼여행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
‘뭐 6일 정도쯤이야’하고 생각했고,
이번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어입문 3’이 끝나고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자마자
밀려온 두려움에 불안에 떨기도 하고, 심지어 조금의 후회도 들었지만
(‘뭘 그렇게 누리겠다고 집 떠나 겁도 없이 여길 혼자 와…’)
이렇게 떠올리며 추억하고 있는 지금, 얼마나 나 자신이 자랑스러운지!!
‘앞으로 그 어디든 나 혼자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노노루가 여행 내내 달고 다녔던 말.
전보다 훨씬 주변 사람들에게 여유로운 태도를 가지게 된 당시 INTP.
(현재 ENFJ 주의)
혼자 다니는 여행 내내 외로움에 떨지 않기 위해선
주위에 존재하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모든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야 했고
가끔은 좌절당하기도 했지만 (여자 둘 여행객은 정말 다가가기 힘들다)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그렇게 깨닫게 된 혼여행의 정점.
그곳에서의 새로운 인연.
나 홀로 여행객의 여행의 질을 좌지우지하는,
어느 민박이든, 유스호스텔이든 그곳의 분위기 전체를 휘어잡는
매우 큰 요소 중 하나였다.
나와 맞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하루는 편안하고 즐겁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없을 경우엔, 오히려 경계심을 느끼게 되고 반대 극한으로 치닫고 마는.
새롭게 만나는 인연들은 모두 나에게 직·간접적으로 인생의 충고자가 되어 주었다.
한창 사회생활 중인 언니들,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
고시 공부 중인 혹은 마친 오빠들, 여행을 즐기는 어른들,
나와 똑같이 혼자서 유럽을 누비는 내 또래 여학우들,
여행지에서 숙서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지금은 어렴풋하게 얼굴만 기억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딘가에선가 또다시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2008년 여름 이 넓은 세계, 유럽에서 난생처음 마주쳐
마치 오래된 인연인 듯 챙겨주고, 정답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운명의 끈이 있었으니…
‘안에서 새는 바가지 글로벌하게 샌다’고
노노루의 고질적인 버릇(?)도 유럽 여행에서 한몫 제대로 했는데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