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라즈돌리노예 역
비열했던 역사의 첫 페이지가 펼쳐졌다
휑한 대합실 벽에 박힌 매표구가
한갓 낡은 총구로 읽히는 까닭은 왜일까
박제된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무기력한 발길이 저려온다
우수리스크와 포시예트항을 뒤로하고
1937년 9월 10일
한인강제이주횡단열차 제 1호가 출발한
통곡의 역
우리는 아무 것도 한 게 없고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단절의 세월
길게 누운 철길만이 그 때의 비통한
몸짓과 숨소리를 기억하리라
그해 봄날
사내의 펄펄 끓는 심장에 구멍을 낸
저격병의 총탄이 핏빛 너울을 드리우고
하늘로 솟구친다
예순의 청년 표트르 세메노비츠 *최의 영혼이
따가운 햇살 내리꽂히는 레일 위에서
통 큰 음성의 레치타티보로
ㅡ동지들이여,
일어나 눈물 거두고 통일을 이루라.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님이 거주했던 사저방문 대원들.
(시작 노트) 인천에서 비행기로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한 첫날, 한인촌 유허비를 참배하고 러시아 해군기지와 광장을 두루 돌아보았다. 독수리전망대에 올랐을 때 두 사제의 동상이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 성 키릴로와 성 메토디오스 형제란다. 1940년경 민족 결집을 위해 형제는 문자를 만들었고 훗날 자신의 이름 첫음절을 따서 키릴문자의 창시자로 칭송받게 되었다. 신한촌에는 아직도 까레스키가 남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