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고려인 디아스포라 04
바이칼호수에서 가장 큰 알혼섬, 원주민 부리야트족 어르신이 뒷짐을 짚고 마을을 지날 때면 살아생전 할아버지 모습이다. 후지르마을 언덕에서 자란 냉이 뿌리도 씹어보았다. 고향의 맛이다. 이침 햇살 내리꽂히는 모래톱을 맨발로 걸었다. 내 유년에 뛰놀던 아시거랑 콩 모래밭이다. 벗어든 양말에 퍼 담아 꼭 껴안아 본다. 고향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브르한 바위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북소리를 따라 올랐다
멀리 바르구진산맥이 뻗어있는 쾌청한 하늘
유빙이 떠도는 코발트빛 호수를 향해 샤먼 부부가 신을 부르고 있었다.
광대뼈가 도드라진 검붉은 얼굴이 북소리와 함께
울음의 깊이가 점점 밑동의 깊이었다
수심 천육백여 미터의 호수 밑바닥을 훑고 하늘로 솟구치는
울음의 밑동이 내생명의 근원은 아니었을까
머플러에 꾹꾹 눌러 쓴 염원을 솟대에 매달았다
아무도 돌보지 않은 역사와 누구의 백성도 아니었던*
밑동뿐인 그들을,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다간 이 땅의모든 영혼을 위하여.
*김윤배 시인의 시베리아의 침묵”에서 인용
(시작노트) 어둑할 무렵 이르쿠츠크 역에 도착하여 발을 내 딛는 순간 온몸이 휘청거렸다. 마치 커다란 풍선을 딛는 것처럼 바닥이 물컹하게 느껴졌다. 잠시 의자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며 땅 바닥이란 인식을 하고 나니 조금씩 걸을 수가 있었다. 처음 기차를 탔을 때도 마음 보다는 몸이 먼저 적응 했던 것 같다. 사흘간 달리는 기차 안에서의 일상이 나도 모르게 적응하고 있었나 보다, 수 없이 오지 여행을 다녔지만 처음으로 느껴 본 체험이다. "미생물울 포함한 모든 생물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DNA" 설게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깊은 숲 속의 밤은 춥고 어수선했다. 나는 휴대용 전기 매트와 보온용 알루미눔 병을 준비해 갔기에 숙소에서 오랜만에 따뜻한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건축가 류춘수(상암 월드컵경기장 설계) 선생님께서 빠렛뜨를 준비하시고 틈틈이 풍경을 그리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