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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Nov 12. 2024

얽힐 구/교(丩)에서 파생된 한자들

얽히다, 새끼, 크다, 굽히다 등

얽다, 매다, 동이다 등의 뜻을 지니며 음이 비슷한 다양한 한자들을 살펴보았다. 높이날 료(翏)에서 파생된 휠 규(樛), 성/법칙 려(呂)에서 횃불 료(尞)를 거쳐 파생된 동일 료(繚), 사귈 교(交)에서 파생된 목맬 교(絞) 등. 이번에는 얽힐 규(糾)를 살펴보고자 한다.

얽힐 규(糾)는 가는실 멱(糸)과 얽힐 구/교(丩)의 뜻을 가져온 한자이자 丩가 소리도 나타내는 회의 겸 형성자다. 糾는 소전에서부터 나타나며 丩의 뜻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糸을 더한 글자로 보므로, 丩의 자원을 살펴보자.

왼쪽부터 丩의 갑골문, 금문, 진(晉)계 문자, 초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丩는 갑골문에서부터 나타나며, 그 형태가 크게 변하지 않은 채 전승되었다. 두 개의 실이 서로 얽혀 꼬여 있는 모습으로, 얽힘을 나타내는 상형자다. 나중에 丩가 쓰이지 않으면서 糾가 만들어져 丩를 대신해 쓰이고 있는데, 이렇게 옛날에 쓰였으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 한자와 옛날에는 없었으나 지금은 옛 한자를 대신해 쓰이는 한자, 이렇게 두 한자를 묶어서 옛 한자와 지금의 한자라는 뜻의 고금자(古今字)라고 한다.


丩(얽힐 구/교, 급수 외 한자)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丩+口(입 구)=句(글귀 구): 구절(句節), 시구(詩句) 등. 어문회 준4급  

丩+口(입 구)=叫(부르짖을 규): 규성(叫聲), 아비규환(阿鼻叫喚) 등. 어문회 3급  

丩+攴(칠 복)=收(거둘 수): 수거(收去), 몰수(沒收) 등. 어문회 준4급  

丩+糸(가는실 멱)=糾(얽힐 규): 규명(糾明), 분규(紛糾) 등. 어문회 3급  

丩+虫(벌레 훼)=虯(규룡 규): 규룡(虯龍: 새끼 용), 규염(虯髥: 규룡이 서린 듯한 꼬불꼬불한 수염) 등. 인명용 한자  

丩+走(달릴 주)=赳(헌걸찰 규): 규규(赳赳: 헌걸참), 규규무부(赳赳武夫: 용맹한 무사) 등. 어문회 준특급  

句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句→勾(굽을 구): 구배(勾配: 수평 기준 기울기. 물매.), 면구(免勾: 조선 시대에 중죄인의 판결을 미루거나 죄를 덜어 주던 일) 등. 어문회 준특급  

句+人(사람 인)=佝(곱사등이 구): 구루(佝僂/痀瘻: 곱사등이), 구루병(佝僂病) 등. 인명용 한자  

句+力(힘 력)=劬(수고할 구): 구근(劬勤: 부지런히 일함), 구로(劬勞: 자식을 낳아서 기르느라고 힘들이고 애씀) 등. 어문회 특급  

句+口(입 구)=呴(숨내쉴 구): 구허호흡(呴噓呼吸: 의식적으로 숨을 많이 쉬는 법. 심호흡.) 등. 급수 외 한자  

句+土(흙 토)=坸(때 구): 인명용 한자(垢와 동자)  

句+女(계집 녀)=姁(아름다울 후): 후유(姁婾: 즐거워하는 모양, 또는 아름다운 모양. 《고봉전서》), 아후(娥姁: 중국 한나라 고제의 황후 여후의 자) 등. 인명용 한자  

句+尸(주검 시)=局(판 국): 국소(局小), 대국(大局) 등. 어문회 준5급  

句+山(메 산)=岣(산꼭대기 구): 구루비(岣嶁碑: 중국의 형산에서 발굴된 석비. 전승으로는 우왕의 공적을 기린 비라 하나 실제로는 월나라 태자 주구가 부왕 불수를 기린 비라 함.), 구루산(岣嶁山: 형산의 별명, 또는 이에서 딴 한유의 시) 등. 인명용 한자  

句+手(손 수)=拘(잡을 구): 구속(拘束), 불구(不拘) 등. 어문회 준3급  

句+日=昫(따뜻할 구): 윤사구(尹士昫: 조선 단종 대의 인물), 조의구(趙義昫: 조선 세종 대의 인물) 등. 인명용 한자  

句+木(나무 목)=枸(구기자 구): 구기자(枸杞子), 구연산(枸櫞酸) 등. 어문회 1급  

句+犬(개 견)=狗(개 구): 구장(狗醬: 보신탕), 토사구팽(兔死狗烹) 등. 어문회 3급  

句+玉(구슬 옥)=玽(옥돌 구): 유구(柳玽: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등. 인명용 한자  

句+疒(병들어기댈 녁)=痀(곱사등이 구): 구루(佝僂/痀瘻: 곱사등이) 등. 급수 외 한자  

句+立(설 립)=竘(다듬을 구): 이구(李竘: 조선 세조 대의 인물) 등. 인명용 한자  

句+竹(대 죽)=笱(통발 구): 구(笱: 통발), 폐구(敝笱: 해진 통발이란 뜻으로, 《시경》의 한 편인데,  노나라에 시집간 제나라 군주의 딸 문강·애강이 음란하여 제어되지 않음을 풍자함.) 등. 어문회 특급  

句+老(늙을 로)=耉(늙은이 구): 구로(耉老: 노인), 기구(耆耉: 예순 살과 아흔 살 늙은이) 등. 어문회 준특급  

句+老(늙을 로)=耇(늙은이 구): 인명용 한자(耉와 동자)  

句+肉(고기 육)=胊(포 구): 구병(胊邴: 한나라 임구 땅에서 부를 일군 병씨(邴氏). 《경세유표》), 좌구(左胊: 포의 가운데를 구부려 왼쪽에 놓음. 《백사집》) 등. 인명용 한자  

句+艸(풀 초)=苟(진실로/구차할 구): 구차(苟且), 승명구구(蠅營狗苟: 작은 이익에 악착스레 덤빔) 등. 어문회 3급  

句+金(쇠 금)=鉤(갈고리 구): 구충(鉤蟲), 조구(釣鉤: 낚시) 등. 어문회 1급  

句+隹(새 추)=雊(장끼울 구): 구치(雊雉: 장끼가 욺. 상나라 왕 고종이 겪은 재이. 《상서·고종융일》) 등. 어문회 특급  

句+馬(말 마)=駒(망아지 구): 구극(駒隙: 망아지가 달리는 것을 틈으로 보듯 세월이 짧음), 천리구(千里駒: 천리마) 등. 어문회 1급  

句+鼠(쥐 서)=鼩(생쥐 구): 정구(鼱鼩: 생쥐) 등. 급수 외 한자  

呴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呴+火(불 화)=喣(불 후): 후말(喣沫: 물이 말라 물고기가 서로 불어주고 거품을 내뿜어 함께 견딘다는 《장자》의 구절에서 딴 것으로, 위기에 처해 서로 보살핌. 《고산유고》) 등. 인명용 한자  

局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局+手(손 수)=挶(잡을 국): 고국경(枯挶莖, 화충은 말라죽어도 줄기를 붙잡는다는 말로, 친근함을 뜻함. 《송자대전》) , 이국(李挶: 조선 세종 대의 과학자 이순지의 아들) 등. 인명용 한자  

局+木(나무 목)=梮(징 국): 삽국(臿梮: 가래와 흙을 나르는 들것, 《각사등록》), 국(梮: 썰매, 《금계집》) 등. 인명용 한자  

局+足(발 족)=跼(구부릴 국): 국보(跼步: 허리를 구부리고 걸음), 국축(跼縮: 삼가는 모양) 등. 인명용 한자

局+金(쇠 금)=鋦(꺾쇠 국): 국자(鋦子: 거멀못. 《오주연문장전산고》) 등. 인명용 한자  

昫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昫+火(불 화)=煦(따뜻할 후): 후후(煦煦: 온정을 베풂), 화후(和煦: 봄 날씨의 따뜻함) 등. 어문회 준특급  

竘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竘+艸(풀 초)=蒟(구약풀 구): 구약(蒟蒻), 구장(蒟醬) 등. 인명용 한자  

얽힐 구(丩)에서 파생된 한자들.


글귀 구(句)는 《설문해자》에서는 “굽은 것이다. 입 구(口)의 뜻을 따르고 丩는 소리다.”라고 풀이하는데, 어차피 口도 소리가 구이니 口는 뜻과 소리를 모두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丩가 실이 얽힌 모습이니, 丩도 소리뿐만 아니라 뜻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본다.

왼쪽부터 句의 갑골문, 금문 1, 2, 전국시대 초계 문자 1, 2, 소전. 출처: 小學堂


위의 변천에서 보이듯 丩+口라는 글자 구조가 그대로 현대까지 내려왔다. 갑골문에서는 丩의 사이로 口가 파고들고 있으며, 금문에서는 금문 1처럼 얽힌 실을 더 늘려서 쓰기도 한다. 초계 문자 1은 다름아닌 월왕구천검에서 발굴된 월왕 구천(句踐)의 이름자다. 당시 중국에서는 곡선을 강조해 화려하게 글자를 장식해서 저렇게 쓰기도 했는데, 글자가 마치 새와 벌레와 같다 해 조충문(鳥蟲文)이라고 한다.

금문에서는 갈고리 구(鉤)와 늙은이 구(耉)를 가차해서 쓰는데, 둘 다 굽었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어구의 뜻으로 쓰이는 것은 이 어구가 갈고리처럼 문장과 문장 사이를 잇는 물건이기 때문에 인신된 것으로 보이며, 더 나아가서는 어구에서 글귀, 장구라는 뜻이 나왔고 굽다는 뜻은 주로 勾가 가리키게 되었다.


왼쪽부터 局의 소전, 예서 1, 2, 3. 출처: 小學堂


局은 《설문해자》에서는 “재촉함이다. 입 구(口)가 자 척(尺)의 아래에 있는 것을 따라, 거듭 재촉함을 나타낸다. 일설에는, 박(博)이라 해, 바둑을 두는 것이라 한다. 상형자다.”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진나라와 한나라의 예서를 보면 주검 시(尸)에 句가 결합한 모습이 뚜렷해 허신이 잘못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丩가  들어가는 일부 형성자에서 糾를 糺로, 虯를 虬로 쓰는 등 丩를 새 을(乙)처럼 쓰기도 하는데, 허신이 자 척(尺)을 尸와 乙이 결합한 한자로 보았으니 尸+(丩+口)를 (尸+乙)+口로 잘못 분석한 것이다. 尸는 人과 비슷한 뜻으로 볼 수 있으므로, 사람이 굽혀서 재촉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 같다.

局은 선진 시대 문헌에서는 굽힘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리쉐친은 《자원》에서 재촉함은 굽힘에서 인신된 뜻이고, 그 외의 국면, 국부, 판국 등의 뜻은 가차로 풀이했다.


잡을 구(拘)는 《설문해자》에서는 “막는 것이다. 句와 手의 뜻을 따르며, 句는 소리를 나타내기도 한다.”라고 풀이해 句가 형부이며 동시에 성부라고 보았다.

왼쪽부터 拘의 금문, 진(秦)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위의 拘의 금문을 해서로 바꾼 것. 출처: 字統网

拘의 금문으로 발굴된 글자는 조금 복잡한데, 천천히걷는모양 준(夋)을 句와 糸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夋은 지금은 위에 맏 윤(允), 아래에 천천히걸을 쇠(夊)가 있는 형태다. 그러나 원래는 위의 문자에서 나타나듯 允 밑에 계집 녀(女)가 있는 형태다. 그렇다면 여자를 실로 묶어서 잡아간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다가 더 간단하게 손으로 굽혀서 막는다→잡아간다는 구조의 拘가 나타나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구기자 구(枸)는 지금은 구기자를 가리키지만, 《설문해자》에서는 “나무인데, 장을 담가 먹믈 만하며, 촉에서 난다. 나무 목(木)의 뜻을 따르며 句는 소리다.”라고 해설해 구장(枸醬)이라는 다른 식물로 해설한다. 구장은 지금은 한자로 구약풀 구(蒟)로 바꿔서 구장(蒟醬)이라고 쓰는데, 필발(蓽茇)이라고도 한다.

필발, 또는 구장과 그 열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그런데 중국에서는 잎을 주로 먹는 후춧과의 또 다른 식물인 베틀후추를 주로 구장이라고 부르고 있어 혼동이 있다. 이쪽은 필발과 구별해서 부를 때에는 대필발(大蓽茇)이나 토필발(土蓽茇)이라고 하는데, 헷갈리게도 구별 없이 필발이라고도 한다. 학명으로 구분하면 필발의 학명은 피페르 롱굼(piper longum)이고 베틀후추의 학명은 피페르 베틀레(piper betle)이다.

베틀후추 잎은 구장엽이나 누엽이라 해서 약으로 쓰는데, 대만이나 동남아시아 일대에서는 누엽에 빈랑나무나고 하는 나무의 열매를 싸서 씹는 문화가 있다. 이 열매는 약용으로 쓰이지만 마약성이나 유독성으로 논란이 많은데, 어찌나 구장엽이 인상적이었는지 영어로 빈랑나무 열매를 '베틀후추 열매'라는 의미로 베틀 넛(Betel nut)이라고 하고, 이걸 씹는 행위를 베틀 넛 추잉(Betel nut chewing)이라고 할 정도다.

베틀후추.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빈랑 열매를 베틀후추 잎에 올린 것과 감싼 것. 출처: NSW health.


왼쪽부터 枸의 초계 문자, 진(秦)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蒟의 초계 문자와 소전. 위의 작은 글자는 해서로 바꾼 꼴. 출처: 小學堂


蒟는 구약나물을 부르는 한자로 쓰지만, 여전히 구장이라는 뜻도 남아 있다. 구장이 한국에서는 생소한 향신료일 뿐. 초계 문자에서는 蒟의 성부로 竘가 아니라 枸를 쓰는데, 본디 중국에서는 구장을 나무로 생각했으나 원산지인 동남아시아와 더 가까운 초나라 문화권에서는 枸가 나무가 아니라 풀인 것을 알고 艸를 덧씌워 바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지금 쓰이는 문자가 艸+枸가 아닌 지금의 蒟인 이유는 어쩌면 구장이 약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세운다는 뜻이 있는 竘를 선호한 것이 아닐까? 《설문해자》에서는 蒟를 “열매다. 풀 초(艸)의 뜻을 따르고 竘는 소리를 나타낸다.”라고 풀이한다.


구약나물의 다른 이름은 곤약(菎蒻)인데 이 이름이 더 익숙할 것 같다. 구약(蒟蒻)이란 말은 서진 시대의 시인인 좌사의 〈촉도부〉에 처음 나오는데, 촉도부의 해석에서는 이렇다 할 주석이 없어 이 구약이 지금의 구약나물인 것으로 보인다. 구약나물의 원산지가 동남아시아인 걸 감안하면 이 말 역시 그 지방의 단어를 중고한어(중세 중국어)로 옮겨적은 것 같으나 이를 추척하지는 못했다.


枸는 원래 구기자가 아니라 구장을 가리키는 한자이니만큼 그 어원도 구장에 있을 텐데, 필발(구장)의 원산지에 가까운 인도와 동남아시아 언어에서는 산스크리트어의 피팔라(pippala)와 유사하게 부르고 있어 지금의 이름인 필발에 가깝지 구장과는 전혀 비슷하지 않다. 베틀후추 역시 영어에서 부르는 베틀(Betel)은 말레이어 베릴라(verrila)가 포르투갈어를 거쳐서 변형된 것인데, 베릴라와 구장도 전혀 다르다. 필발과 비슷한 또 다른 식물인 피페르 레트로프락툼(piper retrofractum)은 말레이어에선 예전에 열매를 카바이(cabai)라고 했다는데, 혹시 구장이 여기서 온 말일까 싶었지만 카바이와 枸를 관련 있는 것으로 본 연구는 없으니 억측일 것 같다. 다만 구장은 열매를 먹는 것인 만큼, 지금의 베틀후추보다는 필발과 유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구기자 열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그러면 대체 枸는 언제부터 필발 곧 구장이 아니라 구기자를 가리키는 한자가 된 걸까? 전한 대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하는 한자 유의어 사전인《이아》에서도 枸는 구장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다만 구기자 기(杞)는 구계(枸檵)라고 풀이하고 구기자 계(檵)는 구기(枸杞)라고 풀이하고 있어 늦어도 전한 대에는 구기자와 구장이 모두 있던 것을 볼 수 있다. 구장은 중국에선 외래 식물이고 오히려 구기자가 토종이라 더 의문이다.

《시경·남산유대》과 《장자》에 이미 枸라는 한 글자만으로 가리키는 나무가 있는데, 남산유대를 해석할 때 枸는 구기자라고 하기도 하고, 극구(蕀枸)나 구극(枸棘)이라고도 하는 헛개나무라고도 한다. 그러나 경전 해석용인 《이아》에서 枸를 구기자나 헛개나무로 풀이하지 않은 데다 이 두 나무는 항상 구기나 극구라고 하지(그러니까 이 단어는 연면사다) 枸만 떼어다 이 나무들을 가리키는 데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심스럽다. 그래서인지 《본초강목》에서는 구기자가 구극(헛개나무)을 닮았으나 줄기가 기류(무늬개키버들)를 닮아서 구극의 '구'와 기류의 '기'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해설하기까지 했다.

탱자나무.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시경》의 주석인 《모시전》에서는 이 구(枸)를 지구(枳枸) 곧 탱자나무라고 했고, 삼국시대 오나라와 서진의 인물인 육기(육손의 손자)도 탱자나무의 생태를 묘사하며 더 자세히 풀이했다. 이는 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 송옥이 지은 《풍부》에서 탱자나무가 굽이굽이 자라는 모습을 지구(枳句)라고 묘사한 데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枸는 원래 탱자나무가 굽은 모습을 나타내는 한자였던 것 같다. 일설에는 《설문해자》에서 풀이한 구장은 앞서 설명한 필발 열매가 아니라 탱자를 발효해서 먹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枸는 본디 탱자나무를 가리키는 한자였다가, 구기자나무와 구장(필발)을 가리키는 한자로 변형된 것이 아닐까 싶다.


雊(장끼울 구)는 현대에 쓰이는 일이 없는 한자인데, 《시경·소아·소변》과 《상서·고종융일》에 쓰이기 때문에 특급 한자로 선정한 것 같다. 《상서》에서는 치구(雉雊)나 구치(雊雉)라 해서 장끼가 우는 현상을 일종의 변고로 보며, 상나라 왕 고종이 이런 변고를 겪고 몸가짐을 잘 다스렸기 때문에 변고가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은 일로 기록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에서도 간혹 이 이야기를 언급한다.

《설문해자》에서는 “장끼가 우는 것이다. 우레가 울기 시작하면, 장끼가 울며 그 목을 굽힌다. 새 추(隹)와 句의 뜻을 따르며, 句는 소리이기도 하다.”라고 풀이한다. 장끼가 울 때는 목을 쭉 빼고 '꿩! 꿩!'하고 우는데, 그 울음소리가 구(句)의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목을 '굽힌다'[句]라고 묘사한 것 아닐까 싶다.


丩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丩의 뜻에서 비롯해 얽다, 구불구불하다는 뜻을 지닌다.

口(글귀 구)는 口(입 구)에서 뜻을 가져오고 丩에서 소리를 땄으며, 丩의 뜻을 가져와 원래는 구불구불한 것, 나아가 이제는 말이 얽힌 글귀를 뜻한다.

糾(얽힐 규)는 糸(가는실 멱)에서 뜻을 가져오고 丩에서 소리를 땄으며, 丩의 뜻을 가져와 실이 얽힌 것을 뜻한다.

虯(규룡 규)는 虫(벌레 훼)에서 뜻을 가져오고 丩에서 소리를 땄으며, 丩의 뜻을 가져와 구불구불하게 서린 새끼 용을 뜻한다.


또 丩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虯의 뜻을 가져와 새끼, 작다는 뜻을 지닌다.

狗(개 구)는 犬(개 견)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虯의 뜻을 가져와 개의 새끼인 강아지를 뜻한다.

駒(망아지 구)는 馬(말 마)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虯의 뜻을 가져와 말의 새끼인 망아지를 뜻한다.

鼩(생쥐 구)는 鼠(쥐 서)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虯의 뜻을 가져와 작은 쥐인 생쥐를 뜻한다.


또 丩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嘂(크게부르짖을 규)의 뜻을 가져와 높다, 크다는 뜻을 지닌다. 이 한자는 지금은 口가 1개로 줄어든 叫와 같은 한자로 보는데, 《설문해자》에서는 따로 풀이했으며, 또 중국 고대의 악기인 훈(塤) 중에서도 큰 종류를 가리킨다.

赳(헌걸찰 규)는 走(달릴 주)에서 뜻을 가져오고 丩에서 소리를 땄으며, 嘂의 뜻을 가져와 풍채가 크고 당당하게 걷는 모습, 즉 헌걸참을 뜻한다.

劬(수고할 구)는 力(힘 력)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嘂의 뜻을 가져와 힘을 많이 들이는 것, 곳 수고하는 것을 뜻한다.

岣(산꼭대기 구)는 山(메 산)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嘂의 뜻을 가져와 산에서 가장 높은 곳인 산꼭대기를 뜻한다.

竘(세울 구)는 立(설 립)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嘂의 뜻을 가져와 높이 세우는 것, 건장한 것을 뜻한다.

蒟(구약풀 구)는 艸(풀 초)에서 뜻을 가져오고 竘에서 소리를 땄으며, 竘의 뜻을 가져와 사람을 건장하게 하는 풀인 구장, 곧 필발을 뜻한다. 지금의 뜻인 구약풀은 가자한 것이다.


句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句의 뜻에서 비롯해 구부리다, 굽다는 뜻을 지닌다.

佝(곱사등이 구)는 人(사람 인)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句의 뜻을 가져와 사람이 굽은 척추장애인(곱사등이)을 뜻한다.

枸(구기자 구)는 木(나무 목)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句의 뜻을 가져와 나무가 굽이굽이 굽은 탱자나무를 뜻한다. 지금의 뜻인 구기자나 구장은 가차한 것이다.

痀(곱사등이 구)는 疒(병들어기댈 녁)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句의 뜻을 가져와 등이 굽는 병에 걸린 척추장애인을 뜻한다.

笱(통발 구)는 竹(대 죽)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句의 뜻을 가져와 대나무를 굽혀서 만든 통발을 뜻한다.

耉(늙은이 구)는 老(늙을 로)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句의 뜻을 가져와 허리가 굽은 늙은이를 뜻한다.

胊(포 구)는 肉(고기 육)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句의 뜻을 가져와 고기를 말려 굽힌 포를 뜻한다.

跼(굽힐 국)은 足(발 족)에서 뜻을 가져오고 局에서 소리를 땄으며, 句의 뜻을 가져와 다리를 굽히는 것을 뜻한다.

鉤(갈고리 구)는 金(쇠 금)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句의 뜻을 가져와 쇠를 굽힌 갈고리를 뜻한다.

鋦(꺾쇠 국)은 金(쇠 금)에서 뜻을 가져오고 局에서 소리를 땄으며, 句의 뜻을 가져와 쇠를 굽힌 꺾쇠를 뜻한다.

雊(장끼울 구)는 隹(새 추)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句의 뜻을 가져와 장끼가 목을 굽히고 꿩꿩 우는 것을 뜻한다.


또 句는 굽히다에서 파생되어 막다, 잡다는 뜻을 지닌다.

拘(잡을 구)는 手(손 수)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句의 뜻을 가져와 손으로 막아 잡는 것을 뜻한다.

挶(잡을 국)은 手(손 수)에서 뜻을 가져오고 局에서 소리를 땄으며, 句의 뜻을 가져와 손으로 막아 잡는 것을 뜻한다.

笱(통발 구)는 竹(대 죽)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句의 뜻을 가져와 대나무로 물고기를 막아 잡는 통발을 뜻한다.


또 句는 굽히는 것에서 파생되어 정교한 것, 아름다운 것을 가리킨다.

姁(아름다울 후)는 女(계집 녀)에서 뜻을 가져오고 句에서 소리를 땄으며, 句의 뜻을 가져와 여자가 아름다운 것을 뜻한다. 이는 丩와 음이 통하는 尞에서 嫽(예쁠 료)가, 交에서 佼(예쁠 교)·姣(아리따울 교)가 파생된 것과 같다.


이상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丩(얽힐 구)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句에서 파생된 의미는 별도로.


丩+口=句(글귀 구)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丩(얽힐 구/교)는 두 실이 얽힌 모습을 본딴 상형자로, 나중에 糸(가는실 멱)을 더해 糾(얽힐 규)로 쓴다.

丩에서 句(글귀 구)·叫(부르짖을 규)·收(거둘 수)·糾(얽힐 규)·虯(규룡 규)·赳(헌걸찰 규)가 파생되었고, 句에서 勾(굽을 구)·佝(곱사등이 구)·劬(수고할 구)·呴(숨내쉴 구)·坸(때 구)·姁(아름다울 후)·局(판 국)·岣(산꼭대기 구)·拘(잡을 구)·昫(따뜻할 구)·枸(구기자 구)·狗(개 구)·玽(옥돌 구)·痀(곱사등이 구)·竘(다듬을 구)·笱(통발 구)·耉(늙은이 구)·耇(늙은이 구)·胊(포 구)·苟(진실로/구차할 구)·鉤(갈고리 구)·雊(장끼울 구)·駒(망아지 구)·鼩(생쥐 구)가 파생되었고, 呴에서 喣(불 후)가, 局에서 挶(잡을 국)·梮(징 국)·跼(구부릴 국)·鋦(꺾쇠 국)이, 昫에서 煦(따뜻할 후)가, 竘에서 蒟(구약풀 구)가 파생되었다.  

丩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얽힘, 구불구불함의 뜻, 또는 虯에서 따서 새끼나 작은 것, 또는 嘂에서 따서 크거나 높은 것을 뜻하며, 句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굽힘, 나아가 막음·잡음이나 정교함·아름다움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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