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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6시간전

급할 극(茍)에서 파생된 한자들

경계하다, 공경하다, 받치다 등

얽힐 구/교(丩)에서 파생된 한자들 중에서는 丩와 입 구(口)가 결합한 글귀 구(句)에서 파생된 한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는 공경 경(敬)이 없었다. 글귀 구(句)와 풀 초(艸)가 결합한 진실로/구차할 구(苟)와 칠 복(攴)이 결합한 한자가 아닌가?

실은 敬의 왼쪽이 苟가 아니다. 苟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흡사하지만 다른 한자인 급할 극(茍)이다.

苟와 茍의 확대.

茍에서는 句 위에 얹은 게 艸가  아니라 북상투 관(卝)이다. 그렇다고 卝과 句가 결합한 한자가 茍인 것도 아니다. 이 茍에서 차근차근 敬의 자원과 파생된 한자들을 살펴보자.

茍은 《설문해자》에서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자못 급하게 경계함이다. 양 양(羊)의 생략형과 쌀 포(勹)와 입 구(口)의 뜻을 따른다. 口는 말을 삼가는 것과 갈다. 羊의 뜻을 따르는 것은, 옳을 의(義)·착할 선(善)·아름다울 미(美)에 들어가는 羊과 같다.”

갑골문과 금문이 발견되면서, 허신의 이런 설명에는 약간의 수정이 필요해졌다.

왼쪽부터 茍의 갑골문, 금문 1, 2, 3, 전국시대 진(晉)계 문자 1, 2, 고문, 소전. 출처: 小學堂

갑골문은 머리에 뿔이 달린 사람이 꿇어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 머리에 뿔이 달린 사람은 당시 중국의 서쪽 너머에 사는, 양을 치며 사는 강(羌)인들을 가리킨다. 상나라에서는 이 강인들을 때때로 사로잡아 와서 노예로 부리기도 하고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茍은 이렇게 강인들이 꿇어 앉아서 공경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羌과 꿇어 앉은 사람의 모습인 병부 절(卩)이 결합한 회의자이다. 이 공경함이란 뜻에서 경계함이란 뜻이 인신되었다. 또 다른 설에서는 이 형태를 강인이 꿇어 앉은 모습이 아니라, 개가 꿇어앉아서 사방을 경계하는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금문 1은 갑골문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금문 2와 3에서는 입 구(口)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茍의 형태를 조금씩 갖춰 나간다. 진(晉)계 문자에서는 꿇어앉은 모습을 묘사하는 卩이 羊에서 분리되면서 아래를 둥글게 감싸는 모습이 되었고, 고문에서는 羌 아래의 사람 인(儿)이 쌀 포(勹)처럼 변형되어 口를 둥글게 감싸 지금의 茍의 자형에 상당히 가까워졌다.

《설문해자》에서 勹로 본 부분은, 실은 羌의 일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점만 빼고 보면 허신은 꽤나 정확하게 茍의 자원을 분석해 냈다.


茍은 갑골문에서는 경계함의 뜻으로, 금문에서는 공경함의 뜻으로 쓰였다.


이제 茍에 攴이 결합한 敬도 살펴보자.

왼쪽부터 敬의 금문 1, 2, 진(晉)계 문자, 제계 문자, 초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敬은 처음에는 茍을 그대로 쓰기도 하다가 攴이 결합해서 茍에서 분화되었다. 진(晉)계 문자, 제계 문자, 초계 문자는 다양한 茍의 변형을 보여주지만 모두 茍과 攴의 결합을 유지하고 있고, 이 형태가 소전을 거쳐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敬을 “엄숙함이다. 茍과 攴의 뜻을 따른다.”라고 풀이해 회의자로 보았지만, 실제로는 茍이 소리도 나타내는 회의 겸 형성자로 보인다.


송나라 때 발견한, 조충문으로 쓴 잠명(잠언을 새긴 것) 대구(허리띠를 고정하는 고리)가 있는데, 매우 난해한 형상이라 '해독 불능'이라고 전해졌다. 리링(李零)이 1983년에 이 금문을 최초로 해석했다.

송나라의 왕구가 《숙당집고록·대구》에 수록한 조서 잠명 대구. 출처: 빙상바이(2022)

이 조서 잠명 대구에서 茍으로 해석한 한자는 본문의 오른쪽에서 3번째, 위쪽에서 2번째 한자로, 이렇게 생겼다.

조서 잠명 대구의 茍과 리링의 해독(우상단). 출처: 小學堂, 리링(1983).

왼쪽 부분은 장식이 많이 들어갔지만 양의 뿔과 입이 들어가 있어 茍의 금문과 비슷하다. 오른쪽은 꼭 개 같이 생겨서, 茍이 개가 꿇어앉아 사방을 경계하는 모습이라고 해석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리링은 이 조서 잠명 대구에서 장식 필획을 대거 제거했는데, 위의 희한하게 생긴 한자에서도 개 모양의 필획을 제거해서 오른쪽 위처럼 간략화해 금문의 茍처럼 만들어 해석했다. 리링 후에도 스셰제(施謝捷), 린친충(林進忠), 차오진옌(曹錦炎), 둥산(董珊), 천리(陳立), 빙상바이(邴尙白)가 이 조서 잠명 대구를 해석했는데, 茍의 해석은 바뀌지 않았다.


한편, 대구의 머리에 있는 4글자를 리링은 물가절동(勿(物)可悊(折)冬(中))으로 해석했는데, 빙상바이는 이 4글자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경시신종(敬始愼終)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조서 잠명 대구의 첫 글자. 출처: 小學堂

리링은 왼쪽 위와 오른쪽의 장식 필획을 제거하고 勿처럼 보이는 부분만 남겼다. 그러나 빙상바이는 왼쪽 위를 양의 뿔이 변형된 것으로 보았고 아래쪽은 사람 인(人)이 변형된 것으로 보아 口가 들어가기 전의 茍으로 해독했다. 오른쪽은 칠 복(攴)의 변형으로 보았다. 이 두 부분을 결합하면 敬이 된다.

빙상바이의 해독을 확장하면 위의 茍으로 판독한 문자에서도 개 같이 생긴 부분을 그냥 지우지 않고 攴의 변형으로 읽어서 글자 전체를 다시 敬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여러 학자들의 판독에서도 이 茍은 나중에는 敬을 나타낸 것으로 본다. 그러나 빙상바이도 이 茍을 敬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으므로 이런 확대 적용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茍(급할 극, 급수 외 한자)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茍+攴(칠 복)=敬(공경 경): 경례(敬禮), 공경(恭敬) 등. 어문회 준5급  

敬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敬+人(사람 인)=儆(경계할 경): 이희경(李喜儆: 독립운동가), 조경(趙儆: 조선의 무신) 등. 어문회 2급  

敬+手(손 수)=擎(받들 경): 경수(擎手: 경건하게 손으로 떠받듦), 경호(擎壺: 시각 알림용 병) 등. 어문회 준특급  

敬+手(손 수)=擏(받들/등잔걸이/경계할 경): 인명용 한자(擎의 동자, 檠의 동자)  

敬+心(마음 심)=憼(공경 경): 인명용 한자  

 敬+日(날 일)=曔(밝을 경): 이경(李曔: 조선 정종의 휘) 등. 인명용 한자  

 敬+木(나무 목)=檠(등잔걸이 경): 등경(燈檠: 등잔걸이), 서경(書檠: 독서등) 등. 어문회 특급  

 敬+玉(구슬 옥)=璥(옥이름 경): 유경(柳璥: 최씨 정권을 끝장낸 고려의 문신) 등. 어문회 준특급  

 敬+言(말씀 언)=警(깨우칠 경): 경계(警戒), 순경(巡警) 등. 어문회 준4급  

 敬+馬(말 마)=驚(놀랄 경): 경악(驚愕), 대경실색(大驚失色) 등. 어문회 4급  

茍에서 파생된 한자들.


보통 간략한 글자가 많이 쓰이고 복잡한 글자는 덜 쓰이게 마련인데, 敬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획수가 많은 警과 驚이 다른 파생자보다 더 많이 쓰이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驚].


茍·敬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茍·敬의 뜻을 본받아 경계하다, 공경하다는 뜻을 지닌다.

儆(경계할 경)은 人(사람 인)이 뜻을 나타내고 敬이 소리를 나타내며, 敬의 뜻을 가져와 사람이 경계함을 뜻한다.

憼(공경할 경)은 心(마음 심)이 뜻을 나타내고 敬이 소리를 나타내며, 敬의 뜻을 가져와 마음으로 공경함을 뜻한다.

警(깨우칠 경)은 言(말씀 언)이 뜻을 나타내고 敬이 소리를 나타내며, 敬의 뜻을 가져와 말로 경계하게 함을 뜻한다.

驚(놀랄 경)은 馬(말 마)가 뜻을 나타내고 敬이 소리를 나타내며, 敬의 뜻을 가져와 말이 경계해 놀람을 뜻한다.

또 茍·敬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공경하는 몸짓에서 인신되어 받친다는 뜻을 지닌다.

擎(받들 경)은 手(손 수)가 뜻을 나타내고 敬이 소리를 나타내며, 敬의 뜻을 가져와 손으로 공경스럽게 받침을 뜻한다.

檠(등잔걸이 경)은 木(나무 목)이 뜻을 나타내고 敬이 소리를 나타내며, 敬의 뜻을 가져와 등잔을 공경스럽게 받치는 등잔걸이를 뜻한다.


이상의 관계를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茍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茍(급할 극)은 양을 치는 강인이 꿇어앉아 공경하는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본딴 회의자로, 나중에 攴(칠 복)과 결합해 敬(공경할 경)을 파생시켰다.  

茍에서 敬(공경할 경)이 파생되었고, 敬에서 儆(경계할 경)·擎(받들 경)·擏(받들/등잔걸이/경계할 경)·憼(공경 경)·曔(밝을 경)·檠(등잔걸이 경)·璥(옥이름 경)·警(깨우칠 경)·驚(놀랄 경)이 파생되었다.  

 茍·敬은 파생된 한자들에 공경·경계, 나아가서 공경하는 몸짓에서 받침의 뜻을 파생된 한자들에 부여한다.



빙상바이(2022): 빙상바이(邴尙白), 〈탁물유리, 신종여시 - 「조서잠명대구」 신고〉(託物喻理、慎終如始─「鳥書箴銘帶鉤」新考), 《청다이중문학보》(成大中文學報), 77, 117-158 (2022.6)

리링(1983): 리링(李零), 〈전국조서잠명대구고석〉(戰國鳥書箴銘帶鉤考釋), 《고문자연구》(古文字研究) 8, 59-62 (1983.2) (금문문헌집성(金文文献集成)(https://archive.org/details/jinwen-jicheng/%E9%87%91%E6%96%87%E6%96%87%E7%8C%AE%E9%9B%86%E6%88%9006/),  29권 192-193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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