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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Nov 22. 2024

윗입술/웃는모습 갹(⿱仌口)에서 파생된 한자들

물리침, 굵은 칡베, 다리 등

범 호(虎)에서 파생된 한자들 중에 순대 갹(臄)이란 한자가 있었다. 고기 육(肉)이 뜻을 나타내고 큰돼지 거(豦)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인데, 이 한자는 《설문해자》에 표제자로 올라오지 않고 ⿱仌口이라는 한자의 혹체로 제시되어 있다. 이 한자는 '윗입술/웃는모습 갹'이라는 한자로, 골 곡(谷)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른 한자다. ⿱仌口은 맨 위가 사람 인(人)으로 이어져 있고 谷은 여덟 팔(八)처럼 떨어져 있다.

왼쪽부터 ⿱仌口의 금문, 소전, 혹체 1, 2(臄), 예서. 출처: 小學堂
왼쪽부터 谷의 갑골문, 금문, 초계 문자, 소전, 예서 1, 예서 2. 출처: 小學堂


두 한자의 금문을 보면 뚜렷하게 구분이 되는데, ⿱仌口의 윗부분은 사귈/가로그을 효(爻)와 유사하고 谷의 윗부분은 점 네 개가 따로따로 떨어져 있다. 이 爻가 사람 인(人) 두 개가 겹친 얼음 빙(仌)처럼 바뀐 게 ⿱仌口의 소전이고, 예서에서도 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谷은 소전까지도 이 네 점이 분리되어 있으나 예서 2에서 아래 두 점을 이어 쓰는 현재의 형태가 나와 ⿱仌口과 비슷해졌다.

지금 ⿱仌口은 단독으로 쓰이지 않고 다른 한자의 구성 요소로 쓰이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谷과 혼동이 심해졌다. '갹'과 '곡'이란 음도 비슷하기 때문에 ⿱仌口에서 유래한 한자를 谷에서 유래한 한자로 오해하는 경우가 잦다.


한편, 이 ⿱仌口과 비슷하게 생긴 다른 한자도 있다. 바로 갈 거(去)다.

왼쪽부터 去의 갑골문, 금문, 진(晉)계 문자, 초계 문자, 소전, 예서. 출처: 小學堂

지금은 去의 밑이 사사 사(厶)지만, 갑골문이나 금문, 전국시대 문자에서는 입 구(口)로 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 흙 토(土)처럼 쓰는 위는 원래는 큰 대(大)였다. 그런데 이 大를 仌 비슷하게 쓸 수 있고, 이러면 ⿱仌口과 같은 모양이 된다.

去는 다른 방식으로 ⿱仌口과도 관련이 된다. 몇몇 ⿱仌口이 들어가는 한자에서 ⿱仌口를 去로 대신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물리칠 각(却)은 본자가 卻인데, 卻의 ⿱仌口을 去로 대신한 것이 却이다. 그래서 리쉐친은 《자원》에서 ⿱仌口은 去에서 분화한 한자로 풀이했다. 그러나 금문에서 大나 仌 대신 爻를 쓴 것으로 보아, ⿱仌口은 口와 爻가 결합한 한자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仌口은 口 위에 爻가 있어서, 입을 다물 때 윗입술이 아랫입술을 덮는 것을 본따 윗입술이나 입천장을 뜻하는 회의자다. 虎에서 순대 갹(臄)의 소리가 나온 것을 보건대 ⿱仌口도 爻의 소리까지 따온 회의자 겸 형성자로 볼 수도 있으나, 아직은 추측에 불과하기에 일단은 ⿱仌口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仌口의 소리를 따르는 것으로 정리했다.


⿱仌口(윗입술/웃는모습 갹, 급수 외 한자)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仌口+卩(병부 절)=卻(물리칠 각): 어문회 특급  

⿱仌口+卩(병부 절)=卻→却(물리칠 각): 각하(却下), 냉각(冷却) 등. 어문회 3급  

⿱仌口+木(나무 목)=㭲(길마 겁|극진할 극): 인명용 한자  

⿱仌口+糸(가는실 멱)=綌(굵은갈포 격): 치격(絺綌: 칡으로 짠 고운 베와 굵은 베) 등. 어문회 특급  

⿱仌口+邑(고을 읍)=郤(틈 극): 극선일지(郤詵一枝),  극혈(郤穴) 어문회 특급  

却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却+肉(고기 육)=脚(다리 각): 각선미(脚線美), 실각(失脚) 등. 어문회 준3급  

⿱仌口에서 파생된 한자들.


郤의 훈음은 '틈 극'이지만, 이는 隙과 통자 관계이기 때문이고 본래의 훈은 극읍(郤邑)이라는 옛 땅이름을 가리킨다. 《설문해자》에서는 '진(晉)나라 대부 숙호(叔虎)의 읍이다. 고을 읍(邑)의 뜻을 따르고, ⿱仌口은 소리다.'라고 풀이한다. 이 극읍은 춘추 시대의 진(晉)나라가 있던 지금의 산서성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숙호의 자손 극씨는 춘추오패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진나라에서 동시기에 세 명의 고관을 배출해 위세를 떨치기도 했다.

郤은 춘추 시대의 지명으로 쓰였음에도 소전이 최초의 자형이다.

郤의 소전과 예서. 출처: 小學堂

그러나 郤의 예서에는 입 구(口) 위에 사귈/가로그을 효(爻)의 모습이 선명하다. 이는 ⿱仌口가 口와 爻로 이루어진 글자임을 입증한다.

却·卻의 소전, 예서 1, 2, 3, 4, 5, 6. 출처: 小學堂

却·卻은  ⿱仌口이 爻와 去 양쪽 모두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 한자 역시 소전이 최초의 자형이나 예서에서 口 위에 爻를 얹은 모양과 ⿱仌口가 去로 변한 모습을 모두 보여준다. 결국은 去가 살아남아 지금의 却이 되었다.



⿱仌口(윗입술/웃는모습 갹)은 口(입 구)와 爻(사귈/가로그을 효)가 합해, 입을 다물 때 윗입술이 입을 덮음을 나타내는 회의자다.  

⿱仌口에서 卻(물리칠 각)·却(물리칠 각)·㭲(길마 겁|극진할 극)·綌(굵은갈포 격)·郤(틈 극)이 파생되었고, 却에서 脚(다리 각)이 파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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