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침, 편함, 채찍 등
變(변할 변)이 들어가는 단어는 매우 많다. 돌변(突變), 이변(異變), 변경(變更), 변화(變化)... 이 중에서 이 글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단어는 변경(變更)이다. 變(변할 변)과 更(고칠 경)을 써서, '다르게 바꾸어 새롭게 고침.'이라는 뜻이다. 유의어로는 更 대신 改(고칠 개)를 쓴 변개(變改)가 있다.
更이라는 한자는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이 한자는 매우 오래되어서 갑골문에서부터 나오며, 그 형태가 조금 뭉개져 현대까지 전해졌다.
아래 부분은 變에서도 본 攴(칠 복)이고, 위쪽에 있는 것은 丙(남녘 병)이라는 한자다.
예서로 변하면서 위아래가 하나로 합쳐져서 그렇지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更을 구성하는 각 부분이 뚜렷하게 잘 보인다. 금문에서는 丙이 이중으로 겹치기도 하고, 거기에 攴 대신 彳(조금걸을 척)과 止(멈출 지)가 더해져 辵+丙+丙이 되기도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즉, 丙(남녘 병)과 攴(칠 복)이 결합한 글자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하게 구성된 글자의 자원에는 이설이 많다. 이는 丙의 자원에 정설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한 설명은 丙이 소리를 나타내고 攴이 뜻을 나타내는 형성자라는 것으로, 허신이 설문해자에서 이 설을 제시한 이래의 통설이다.
丙은 갑골문부터 지금까지 그 형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중간에 장식용으로 一(한 일)을 덧붙인 게 지금의 표준으로 굳어졌을 뿐. 그러나 저게 무엇을 본떴는지는 세 가지 다른 설이 있다. 첫째는 魚(물고기 어)의 꼬리 부분을 본떴다는 것으로. 실제로 魚의 갑골문이나 금문 중에는 꼬리가 丙처럼 생긴 것이 있다. 유교 경전이자 한자 유의어 사전인 《이아》에서 물고기 꼬리를 丙이라고 하는 것도 한 가지 근거가 된다.
다른 설은 鬲(다리굽은 솥 력)의 아랫부분이라는 설로, 마찬가지로 鬲의 갑골문이나 금문 아랫부분도 丙을 닮은 것 같다.
마지막은 제사 때 쓰는 제기인 俎(도마 조)나 几(안석 궤)를 닮은 일종의 제사용품이라는 것이다.
한자 자원의 고전인 《설문해자》에서는 丙은 一(한 일), 入(들 입), 冂(멀 경)이 합해서 一이 상징하는 양기가 들어오는 남녘을 가리킨다고 했지만, 현대에는 이것은 억지 풀이로 본다. 설문해자는 이 丙 외에도 천간과 지지 글자들을 음양오행설에 집착해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비판받는다.
어느 설을 따르든, 丙의 원래 뜻은 사라지고 현재에는 천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중 셋째의 뜻만 남았다. 지금 '남녘 병'이라고 하는 것은 설문해자의 영향도 있지만, 셋째 천간 글자라 방위에서도 셋째 방위, 즉 남방을 가리키게 되었기 때문이다. 更에서도 丙의 뜻은 남지 않고 소리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설에서는 丙이 상징하는 어떤 기물을 '채찍으로' 친다(攴)로 보아, 更을 鞭(채찍 편)의 원 글자로 보기도 한다. 이 설에서는 丙과 鞭의 음이 쌍성의 관계에 있다고 보고, 丙에서 更, 更에서 便(편할 편), 便에서 鞭의 음이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설이 분분하지만 대개는 어쨌든 丙에서 更의 음이 나왔다고 본다. 更이 본디 '채찍질하다'라고 한다면, 채찍질에서 고치다, 고치다에서 다시의 뜻이 차례로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고치다'와 '다시'는 음도 경, 갱으로 서로 다르다.
뜻이 비슷해 보이는데 음이 달라서 현실에서 이 한자는 헷갈리는 단어 두 개를 만들었다. 更新은 경신도 되고 갱신도 되는데 뭐가 맞는 걸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두 단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갱신(更新)
「명사」
「1」 이미 있던 것을 고쳐 새롭게 함. =경신. 예) 자기 갱신. 환경 갱신. 동맹 갱신.
「2」 『법률』 법률관계의 존속 기간이 끝났을 때 그 기간을 연장하는 일. 계약으로 기간을 연장하는 명시적 갱신과 계약 없이도 인정되는 묵시적 갱신이 있다. 예) 계약 갱신. 비자 갱신. 어업권의 갱신.
「3」 『정보·통신』 기존의 내용을 변동된 사실에 따라 변경ㆍ추가ㆍ삭제하는 일. 예) 시스템의 갱신.
경신(更新)
「명사」
「1」 이미 있던 것을 고쳐 새롭게 함. ≒갱신. 종묘 개량 경신. 예) 노사 간에 단체 협상 경신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였다. 그의 이론은 논리학과 철학에 경신을 일으켰다.
「2」 기록경기 따위에서, 종전의 기록을 깨뜨림. 예) 마라톤 세계 기록 경신.
「3」 어떤 분야의 종전 최고치나 최저치를 깨뜨림. 예) 무더위로 최대 전력 수요 경신이 계속되고 있다. 주가가 반등세를 보이며 연중 최고치 경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즉, '이미 있던 것을 고쳐 새롭게 함'이란 뜻으로는 둘 다 쓸 수 있지만, 법률용어나 정보통신용어로는 갱신, 기록 등 어떤 숫자를 고치는 것은 경신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계약'갱신' 보장을 요구하는 자영업자들에선 '갱신'이 맞는 것이고,
인터넷 페이지를 '새로고침'도 '갱신'이며,
미콜라스 알레크나는 남자 원반던지기 기록을 38년 만에 '경신'한 것이다.
更 외의 丙에서 파생된 글자들을 살펴보자. 更도 그렇지만 대개는 丙이 의미에 기여하지 못하고 '병'이라는 소리만 나타낸다. 病(병 병)의 자원을 丙이 상징하는 '불'에서 찾으려는 시도도 있지만, 전국시대 초나라 죽간에선 丙 대신 方(모 방)으로 갈아끼운 글자도 있는 것으로 보아 순수한 성부가 맞는 것 같다. 한편 昞(밝을 병)과 炳(불꽃 병)은 보통명사보다는 사람 이름에 많이 쓰이는 한자다.
丙(남녘 병, 어문회 준3급)에서 파생된 글자
丙+攴(칠 복)=更(고칠 경/다시 갱): 경신(更新), 변경(變更)/갱신(更新) 등, 어문회 4급
丙+日(날 일)=昞 또는 昺(밝을 병): 조병(趙昺) 등, 어문회 2급
丙+木(나무 목)=柄(자루 병): 권병(權柄), 신병(身柄) 등, 어문회 2급
丙+火(불 화)=炳(불꽃 병): 김병연(金炳淵), 조병옥(趙炳玉) 등, 어문회 2급
丙+疒(병들어기댈 녁)=病(병 병): 병원(病院), 질병(疾病) 등, 어문회 6급
更(고칠 경/다시 갱)에서 파생된 글자
更+亻(人, 사람 인)=便(편할 편/똥오줌 변): 편리(便利), 불편(不便)/변기(便器), 대변(大便) 등, 어문회 7급
更+木(나무 목)=梗(줄기/막힐 경): 梗塞(경색), 靑梗菜(청경채) 등, 어문회 1급
更+石(돌 석)=硬(굳을 경): 강경(強硬), 경도(硬度) 등, 어문회 준3급
便(편할 편/똥오줌 변)에서 파생된 글자
便+革(가죽 혁)=鞭(채찍 편): 敎鞭(교편), 鞭毛(편모) 등, 어문회 1급
사실 便은 更과 음이 달라서 회의자로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람(人)이 불편하면 고쳐서(更) 편하게 한다(便)는 것이다. 그러나 형성자로 보는 시각도 있어서 이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丙 편에 포함시켰다. 便에서 파생된 상용 한자는 鞭밖에 없기도 하고. '똥오줌 변'은 음이 비슷해서 가차한 것이다. 아쉽게도 편한 것과 똥오줌은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 같다.
丙은 물고기 꼬리, 다리 굽은 솥, 제기 등이 원 뜻으로 추정되지만 정설은 없으며, 현재는 '셋째 천간, 남녘'의 뜻으로 쓰인다.
丙에서 更, 昞, 柄, 炳, 病이, 更에서 便, 梗, 硬이, 便에서 鞭이 파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