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아침 산책

온 세상이 후시딘#02

by 끼미

잔잔한 아침이다. 겨우 5시간 자고 깬 것 치곤 정신이 맑다. 오랜만에 다녀온 서서울 호수공원으로의 아침 산책은 언제나처럼 내 정신을 더 맑게 깨워주었다.


오늘 아침 산책은 가는 길부터 달랐다. 오전 8시,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거리. 지친 표정의 직장인들 사이를 지나는 백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 여유로운 아침을 누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반 년 전, 방 안에 있다간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시작했던 산책 길과는 확연히 달랐다. '다들 일하는데 난 뭐하는 거지...'라는 자괴감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그때의 나는 더 이상 없다. 한 달 전처럼 '지금에 감사하자!'라며 애써 정신 승리를 하던 나도 없다. 시간의 자유가 주는 행복을 진심으로 감사히 여기는 나만 존재할 뿐이다.


귀여운 댕댕이와 너구리


오늘의 아침 산책 시간에도 세상은 나에게 다정한 연고를 발라주었다.


산책 나온 댕댕이들은 땡그랗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봐 주었고 촉촉한 코로 내 종아리에 생기를 전해주었다. 털갈이 하느라 몸 긁기 바쁜 너굴맨은 "꾜오-" 하는 구슬프고 귀여운 울음소리로 나에게 웃음을 주었다.

노란 꽃 핀 세잎 클로버는 몇 년 전 제빵 학원 다니던 시절, 제빵 시험 잘 보라며 네잎 클로버를 건네주었던 뒷자리 아주머니의 다정한 손길을 떠올리게 했다.

온 가지 위에 하얀 눈꽃들이 내려앉은 이팝나무는 이팝이 쌀 미(米)에서 왔다고 설명해주던 엄마의 보고 싶은 목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눈길 닿은 모든 것에 사랑이 있었다.



사랑, 아마 이것이었나보다. 밤잠 설친 아침 산책자의 마음이 평온했던 이유가.

사랑, 분명 이것이었다. 공허한 밤을 보낸 외톨이 산책자의 마음을 채워준 것은.

사랑, 결국 이것이다. 찰나의 지구별 산책자를 미소 짓게 하는 건.


세잎 클로버와 이팝나무




<온 세상이 후시딘> 시리즈는 일상에서 마주친 작고 따뜻한 순간을 전하는 글입니다.

사진과 짧은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에 연고처럼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