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는 한강에서

온 세상이 후시딘#03

by 끼미

1.

마음이 복잡해서 자전거 타고 한강을 달렸다.

자전거 위 양복 입은 직장인들. 백수는 괜히 더 심란해졌다.

한강 왔으니 한강이나 봐야겠다 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회색 정장 입은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길쭉한 모가지를 앞뒤로 왔다갔다하며 유유히 강을 걷는 새. 그 뚱땅거리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웃게 해줘서 고마워, 새야.



2.

새 덕분에 가벼워진 마음, 폰 배터리 용량도 가벼워졌길래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려던 길.

집 반대편 하늘에 붉은 태양이 한껏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독 거대한 태양은 우주의 마법사가 태양만 두 배로 확대해서 하늘에 다시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마법사의 아름다운 작품은 폰 꺼질까 불안한 지구인의 발목을 붙잡았다.


‘오늘의 태양은 두 번 다시 뜨지 않아.‘


결국 마법사의 유혹에 넘어간 지구인은 폰 배터리를 포기하는 대신 우주가 전하는 마법의 기운을 충전했다.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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