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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송 Jun 11. 2024

한 베이비 부머의 호찌민 생활

베트남 쌀국수

베트남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가 “퍼(Phở)”라고 불리는 쌀국수 일 것이다.

나는 쌀국수인 퍼를 무척 좋아한다. 여러 가지 소스와 고명이 어우러진 쌀국수의 술술 잘 넘어가는 식감과 개운하고 얼큰한 국물 맛 때문이다. 특히 요즘 같은 우기철 비 오는 날, 창 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먹는 쌀국수 맛은 운치 있고 특별하다.


베트남 북부 하노이 남동쪽 약 85Km 떨어진, 홍강 하구 도시인 남딘 (Nam Định)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한때 실크, 면직물 산업으로 명성을 떨치던 곳으로 퍼의 발상지라고 하는데, 퍼는 1900년대 초반 이 지역에서 노동자들의 인기 음식이 된 후, 인근 대도시인 하노이로 전파되고 1954년 제네바 협약으로 남. 북이 갈라지면서 백만 명이 넘는 북부 사람들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남부 호찌민시 (1975년 통일 전 이름은 사이공)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베트남 쌀국수 하면, 통상 국물이 있는 얇은 면발의 퍼(Phở)가 생각날 것이다. 퍼(Phở)에는 크게 소고기 쌀국수인 퍼보 (Phở bò)와 닭고기 쌀국수인 퍼가 (Phở gà)가 있는데, 베트남에서 쌀국수 주문을 받을 때 종류를 꼭 물어본다. 베트남 쌀국수를 한국에서는 “포”라고 발음하기도 하지만 현지에서는 “퍼”라고 발음한다.


국물이 있는 소고기 쌀국수인 퍼보 (Phở bò)만 해도, 잘 익힌 소고기 쌀국수 (Phở bò chín), 덜 익힌 소고기 쌀국수 (Phở bò tái), 소고기의 다양한 부위들을 섞어 넣는 쌀국수 (Phở bò đặc biệt) 등이 있다.

쌀국수 면 종류만 해도 퍼 (Phở), 미 (Mì), 분 (Bún), 후 띠우 (Hủ tiếu) 등 크게 4종류가 있고, 동일한 면도 요리에 따라 굵기와 모양이 다를 수 있어 일률적으로 분류하기가 어렵다.

또한, 국물 없이 소스에 찍어 먹는 다양한 종류의 쌀국수, 비빔 쌀국수, 볶음 쌀국수도 있다.


즉, 퍼 (Phở), 분 짜 (Bún chả), 분 보 후에 (Bún bò Huế), 미꽝 (Mì Quảng), 후 띠우 (Hủ tiếu), 분팃 능 (Bún thịt nướng), 분 목 (Bún mọc), 반 깐 (Bánh canh), 분 리우 꾸어 (Bún riêu cua), 까오 러우 (Cao lầu), 퍼 사오 (Phở xào) 등 각 지방마다 다양한 종류의 쌀국수 요리가 있고, 짜요 (Chả giò), 고이 꾸언 (Gỏi cuốn) 등과 같이, 먹기 편하게 변형된 형태의 쌀국수 요리도 있다. 


그리고, 쌀국수 종류마다, 면의 생김새와 식감에 어울리는 국물, 소스, 고명과 한데 어우러져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레시피가 잘 설계되어 있다.

베트남에서는 외국 손님에게 한 달 동안 하루 세끼를 완전히 다른 음식으로 대접할 수 있다고 할 만큼 음식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고 하니, 위에서 언급한 쌀국수 요리 이외에도 수많은 다양한 종류의 쌀국수 요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표적인 베트남 국물 쌀국수인 퍼는, 2000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호찌민 방문 시 먹은 음식으로 유명세를 탄 적이 있다. 

북부 하노이와 남부 호찌민의 퍼 스타일은, 국수의 너비, 육수의 단맛, 허브와 소스의 선택에서 차이가 난다. 

호찌민 퍼는, 바질, 허브, 숙주 등의 야채와 매콤한 붉은색 칠리소스와 검은색 호이신 소스, 고춧가루 소스, 생선 소스, 매운 고추, 상큼한 라임웨지를 개인 취향에 맞게 투입해서 먹는 다소 진한 국물 스타일인 반면, 맑은 국물을 특징으로 하는 하노이 퍼에는 매운 칠리소스나 매운 고추, 라임웨지, 절인 마늘을 투입하기는 하나, 야채는 파, 고수 정도 들어가는 담백한 스타일이다. 


분짜는,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와 완자구이를 새콤달콤한 소스에 찍어, 통통하게 잘 불린 쌀국수와 짜요 (스프링 롤)와 함께 상추나 깻잎에 싸 먹는 음식으로, 2016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수도 하노이에서 먹은 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쌀국수 요리이다.


옛 수도인 중부지방 후에 음식인 매콤한 분보 후에 (Bún bò Huế)는 통통하면서도 쫄깃한 면발의 쌀국수를 사용하는데 돼지족발로 육수를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선지, 족발, 베트남식 소시지, 완자, 소고기 등과 바나나 꽃, 숙주, 허브 등의 야채를 넣어 먹는다.


중부 꽝남지방 (Quảng Nam) 음식인 미꽝 (Mì Quảng)은 자작할 정도의 육수에, 굵은 면발의 국수를 새우, 돼지고기나 닭고기, 강황, 땅콩, 매운 고추 등과 함께 적당히 비벼 먹는 호이안 (Hội An)의 대표적 쌀국수 음식이다. 라임웨지 한 두 조각 짜 넣기도 하고, 각자 취향에 따라, 깨소금 쌀종이 튀김 위에 새우, 고기, 면, 땅콩 등을 올려서 먹기도 한다.


중국 광둥지방에서 유래되어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 요리가 되었다고 하는 후 띠우는, 호찌민을 포함한 남부지방에서 인기가 있는데, 세계적인 요리전문가 “고든 램지 (Gordon Ramsay)”가 요리사 경연 프로그램인 “마스터 셰프 2013 (Master Chef 2013)”에서 자신이 먹어본 최고의 음식 중 하나로 극찬한 바 있다. 나는, 칼국수처럼 면발이 굵고 쫄깃쫄깃한 타피오카 쌀국수로 만든 국물 없는 후 띠우 (Hủ tiếu xào bò)를 아주 좋아한다.


베트남 쌀국수는 찰기가 있는 우리나라 쌀과 달리 소화가 잘 되는, 소위 풀풀 날리는 알랑미 (안남미)로 만든 쌀국수이기에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

키와 몸무게가 같은 베트남 여성과 한국 여성을 비교하면, 베트남 여성이 더 날씬하게 보이는데, 소화가 잘 되는 쌀을 먹는 베트남 사람들은 위가 상대적으로 작아 상반신이 짧고 하체가 길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실제, 남성의 경우, 쌀국수 곱빼기를 먹어도, 돌아서면 금방 소화가 되는 것을 느끼게 될 정도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리고, 쌀국수의 시원하고 얼큰한 육수 때문에 과음한 후 해장하는데 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나의 절친은 베트남에 올 때마다 식사시간만 되면 쌀국수만 찾기도 할 정도로 베트남 쌀국수를 좋아한다.


호찌민에서 가장 유명한 쌀국수 식당은 단연코 1군 “파스터 (Pasteur)” 거리에 있는 “퍼 화 (Phở Hòa)”다.


쌀국수에, 매운 칠리소스, 호이신 소스를 3:1 정도로 넣고, 빠져서는 안 되는 바질 잎과 허브, 숙주나물 적당량과, 고추 몇 조각과 함께, 고춧가루 소스와 생선소스 적당량, 마지막으로 라임웨지 1~2개를 짜 넣은 뒤 맛보는 퍼 화의 쌀국수 맛은 25년째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맛이다. 

4대째 이어지는 진한 국물 맛과 부드러운 고기 맛이 일품인데, 고기도 듬뿍 넣어준다.

9만 동 (약 4,800원)의 퍼 한 그릇이면 가성비 최고의 풍미 있는 한 끼 식사가 가능하다.


베트남내 분점을 허락하지 않는 호찌민의 유명 맛집 쌀국수 식당인, 퍼 화는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코로나 이전에는 관광객들로 항상 3층 건물이 가득 찼으나, 관광객이 대폭 줄어든 최근에는 다소 한산한 편이다.

기회가 되면 한번 방문해 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호찌민에는 퍼 화가 있어, 나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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