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일정으로 머물 딸과 함께 베트남으로 돌아가면, 유치원부터 고교까지의 학창 시절을 베트남에서 보낸 딸의 위시리스트에 있는 쌀국수도 먹고 발마사지도 하는 등, 딸과 함께 동행하면서 보낼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기대된다. '딸의 고향 나들이' 일정이 화려하게 전개될 것이다. 우리 엄빠는 신나 할 딸을 바라보며, 분위기에 맞추어 같이 호응만 해 주면 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내가 무릎이 아프다고 하며 잘 걷지를 못해 신경이 쓰인다.
그런 차에 병원에 가는 걸 가장 싫어하는 아내가 웬일인지 스스로 병원에 한번 가보았으면 하는 의중을 내보인다. 정형욋과 전문의로 창원에서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연락을 취하니 언제라도 오라고 한다. 이틀 후인 목요일, 창원에 있는 병원을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12월 19일 목요일. 무릎과 허리의 X ray, CT 촬영을 하고 MRI를 찍어 본결과, 무릎 내측 반월상 연골이 파열되어 있는데, 3개월이 이미 경과되었기에 조기에 연골 봉합 수술을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예정된 일정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즉시 입원 수속을 밟고, 바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수술을 하면 목발 생활을 하다가 6주 후에나 걷기가 가능하다고 한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며칠간 더 병원에 머물며 후속치료를 받으면 된다.
죽마고우에게는, 토요일 예정되어 있는 그 친구의 딸 결혼식에 내가 부득이 참석 못하는 저간의 사정 설명과 함께 양해를 구하고, 뒤죽박죽이 된 우리 부부의 비행기 스케줄과 딸아이와의 베트남 방문일정을 급히 재조정했다.
실망했을 딸아이는 병원을 오가며 상황을 이해하고, 한동안 불편하게 생활할 엄마를 더 걱정하고 위로한다.
아들도 여동생과 함께 수시로 병원을 오가며 엄빠를 지원한다.
우리 부부는 후속 치료와 가료를 위해 당분간 두 달 정도 한국에 더 머물기로 결정하고, 딸아이는 당초 예정되어 있던 베트남 방문 열흘 일정을 조정해, 일주일 정도는 엄빠와 같이 한국에 더 머물다가, 마지막 이틀만 베트남을 들렀다가 거주하고 있는 미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본인의 엄마와 함께 동남아 여행을 하고 있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가, 예비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정식 허락을 받기 위해 베트남에 오기로 되어 있던 일은 차질이 생겼지만, 대신 딸아이는 남자 친구와 둘이서 베트남에서 어린 시절 추억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기로 일정을 정리했다.
박완서 작가의 '일상의 기적'이란 글이 생각난다.
허리를 다친 하룻밤 사이에, 평소 사소했던 일들이 굉장한 일들로 바뀌었다는 내용이다.
'지금! 두 눈을 뜨고,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은 몸에 51억 원이 넘는 재산을 지니고 다니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도 있다.
평소 우리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어느 날 우리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 되어 버릴 수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고, 두 눈으로 창밖을 보고, 두 발로 걷고, 두 손으로 음식을 먹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일상의 일들이 가능하지 않게 되었을 때, 평범했던 일상은 새삼스레 기적이 되어 버린다.
평화롭고 건강하게 영위하는 하루하루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순간이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이다.
12월 23일. 퇴원한 아내를 위해 정성껏 저녁을 준비한 딸이 기특하다.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도 다 함께 퇴원 축하 자리를 하니 저녁식사 시간이 더욱 빛이 난다.
아내의 생일인 내일은 맛있는 미역국과 달콤한 케이크를 기대하시라는, 딸의 한 마디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이 자리를 빌려, 아내의 수술과 입원 치료기간 동안, 자신의 가족같이 세심한 배려와 큰 도움을 준 친구 윤석환 원장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