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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울리는 밤

세이스강의 단편소설

by 세이스강 이윤재

기적이 울리는 밤
글: 세이스강(이윤재)

전남 순천의 조용한 늦가을 밤 차가운 바람이 골목길을 스쳐 지나갔다. 안 보아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활동지원사 마이루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보아는 중증 시각장애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성실한 안마사였다. 그녀의 손끝에는 치유의 힘이 깃들어 있었고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따뜻한 미소를 짓는 마이루가 있었다.

"보아 씨, 오늘 좀 피곤하죠?"
"조금… 마이루 씨 덕분에 무사히 마쳤네요."

그녀는 어젯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어둠 속에서 숫자들이 춤을 추듯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꿈 지금도 그 숫자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마이루 씨, 로또 사본 적 있어요?"
"글쎄요, 한두 번 재미 삼아 사봤죠. 혹시 보아 씨도 관심 있어요?"
"그냥… 오늘따라 이상한 꿈을 꿔서요. 숫자가 계속 떠올라요."

마이루는 잠시 생각하다가 보아의 손을 잡고 가까운 복권 판매점으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이 떠올린 숫자들을 말했고 마이루는 조심스럽게 로또 용지에 적었다.

"이거, 왠지 느낌 좋아요!"

그렇게 아무런 기대 없이 산 로또 한 장 보아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토요일 밤 8시 30분 TV에서는 로또 당첨 번호를 발표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이루는 평소처럼 보아의 저녁 식사를 챙겨주고 있었다.

"오늘 로또 발표하는 날이네요. 혹시 보아 씨가 산 번호 확인해 볼까요?"
"에이, 설마… 그래도 한번 들어볼까요?"

보아는 마이루의 팔을 잡고 소파에 앉았다. TV에서는 공이 하나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숫자는… 7!"

마이루는 천천히 보아가 적어둔 번호를 확인했다.

"우리 번호에도 7 있어요!"

"두 번째 숫자는… 14!"

마이루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우리 번호에도 14 있어요."

"세 번째 숫자는… 24!"

마이루는 숨을 멈췄다.

"네 번째 숫자는 31, 다섯 번째 숫자는 39, 마지막 숫자는 42… 그리고 보너스 번호는 18입니다!"

마이루는 떨리는 손으로 로또 용지를 다시 확인했다.

"보아 씨… 우리… 1등이에요."

"네? 장난하는 거죠?"

"아니에요. 진짜 1등이에요! 30억 원이 넘어요!"

그 순간 보아는 너무 놀라 정신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다.

다음 날 아침 보아는 침대 위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어…? 이게 뭐야?"

그녀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려보았다. 선명한 손금이 보였다. 창문 너머로 햇살이 들어오는 것도 느껴졌다.

"보인다… 보인다!"

보아는 깜짝 놀라 소리쳤고 마이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보아 씨… 설마… 앞이 보여요?"

보아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응… 나 보여! 마이루 씨 얼굴도 보여!"

마이루는 얼떨떨하면서도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그녀를 꼭 안았다.

"이게 무슨 기적이야…"

의사를 찾아간 보아는 믿을 수 없는 진단을 받았다.

"이건 정말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적입니다. 강한 심리적 충격이 시신경을 되살렸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결심했다.

"나는 더 이상 안마를 할 필요가 없어요. 새로운 인생을 살아볼래요!"

그리고 그녀는 마이루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이루 씨… 나는 당신 덕분에 살아왔어요. 당신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거예요. 나랑… 같이 새로운 인생 살아볼래요?"

마이루는 보아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보아 씨, 사실… 나도 오래전부터 보아 씨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얼마 후 결혼했다.

그 후 보아와 마이루는 광주 상무지구 시민운동장 앞 작은 아파트에서 행복한 삶을 시작했다. 보아는 새로운 꿈을 위해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마이루는 보아를 위해 요리를 배웠다.

어느 날 보아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 로또 또 사볼까? 이번엔 1등 되면 뭘 할까?"

마이루는 웃으며 말했다.

"에이, 한 번만으로 충분하죠! 그리고 지금이 1등보다 더 행복하잖아요?"

그렇게 두 사람은 숫자로 측정할 수 없는 행복을 안고 새로운 인생을 함께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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