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접몽

나에게 호주는

by 승연하

얼마 전, 호주에 사는 큰아들을 만나러 다녀왔다. 아이가 일곱 살이던 해 우리 가족은 호주로 건너가 4년 남짓을 살았다. 그러나 IMF 사태와 맞물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큰아이만 그곳에서 혼자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쳤고, 대학 입학 무렵 잠시 다녀온 뒤로는 무려 17년 만의 방문이었다.

4년간의 호주 생활은 내 생애 가장 뜨겁고도 아픈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곳에서 첫 암을 선고받아 투병했고, 그 바로 직후 임신을 해서 주변의 만류 속에 기적같이 건강한 셋째 아이를 출산했다. 큰 아이를 명문 사립학교에 보내며 낯선 상류 사회의 문화를 경험하기도 했고, 젊은 날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준 소중한 인연들도 만났다. 그러나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은 처참히 무너졌고, 남편과의 관계도 벼랑 끝에 서야 했다. 기적과 실패, 인연과 상처, 그리고 생과 사의 경계가 한데 뒤엉킨 곳. 호주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출국을 앞둔 며칠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1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면, 마치 지구를 몇 바퀴나 돌고 돌아온 듯 환경도, 마음가짐도, 얼굴에 새겨진 주름까지 변해 있었다. 그런데 다시 마주한 호주는, 역설적이게도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과거의 기억이란 결국 나의 시선으로 재구성된 파편일 뿐, 온전한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모든 것이 한바탕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장자의 ‘호접몽’처럼, 잠결에 꾼 꿈이 현실인지, 지금의 현실이 꿈인지 누가 알 수 있을까. 꿈을 꾸는 렘(REM) 수면 상태와 깨어 있을 때의 뇌 상태가 같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어쩌면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이 시간도 긴 잠 속을 스쳐 가는 한 장면일지 모른다. 17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마주한 그곳에서, 나는 과거의 나를 조용히 배웅하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현재’라는 꿈 속으로 돌아왔다.

구름에 가려 잠시 보이지 않을 뿐, 태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듯이.

변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 달라진 나를 발견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해가는 스스로를 고요히 지켜본다. 어쩌면 이 '알아차림'이야말로 이번 여행이 내게 건네준 가장 큰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매일 오전 9시 모닝커피 마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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