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타오름달
어릴 적 나는 “동생이 갖고 싶니?”라는 부모님의 질문에
“시러시러~”라면서 단호하게 거절한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내가 받을 수 있는 사랑이 줄어들진 않을까.
지금도 언니와 반반 사랑을 나눠 갖는데, 또 동생이 생기면 내가 받을 사랑이 더 줄어들 것 같아서 무서웠던 거 같다.
그땐 몰랐다. 우리가 받은 사랑은 반쪽짜리가 아니라 두 배의 사랑이었다는 걸.
언제쯤 우리 아이들도 서로의 존재로 인해 부모의 사랑이 배가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보라. 내가 만약 유명한 연예인이고, 인기가 많아 나를 보는 모든 이가 나를 따라 하기 위해 애쓴다면??
내가 하는 말투와 행동들은 모두에게 표본이 되고, 온 세상 모두의 관심사가 나에게 쏠려있다. 매일 아침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기 위해 수많은 기자가 집 앞에 줄을 서 있고, 내가 먹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하면 수많은 팬이 선물로 보내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든든한 소속사 대표가 나를 도와줄 사람을 데리고 왔다며 소개해준다.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온 이후, 내가 중심이 되어 돌아가던 세상이 점점 그 사람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제 기자들은 나의 일상보다 그 사람의 일상을 더욱 궁금해하며, 나를 보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도 그 사람과 더 많은 대화를 시도한다. 이상한 일이다. 그 사람이 온 후로, 모두가 그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이 얼마나 속상한 일인가.
우리 아이에게는 이보다 더한 상황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아이는 웃으면 이쁘다고 찰칵, 울면 귀엽다고 찰칵, 아이의 첫 코딱지, 변기의 첫 응아 사진도 막 찍는다. 모든 것은 찰칵찰칵. 50일, 100일, 200일, 300일 등 모든 날이 기념일이 되고, 첫 옹알이는 물론 울고 웃는 대부분의 시간들이 영상물로 기록되고, 작아진 옷까지 기념품이 된다. 아이의 귀여운 말투는 물론 몸동작 하나하나에 아이를 보는 삼촌, 이모, 지나가는 동네 주민들도 이뻐서 어쩔 줄 몰라한다.
그런데, 부모가 아이(첫째)를 위한다는 말로 형제자매를 데리고 온 이후 아이의 세상은 완전히 바뀐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기(둘째)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해 주던 시간도 많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가지고 놀던 장난감도 나눠 주어야 하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도 아기에게 더 간다. 아기는 점점 클수록 아이의 것을 탐하고, 아기가 울면 부모는 아이에게 양보하라고 한다.
동생은 뱃속에서부터 형을 좋아했다. 아빠의 목소리보다는 형의 목소리에 더 반응(태동)하였으며, 형과 엄마가 함께 하는 모든 순간들을 뱃속에서부터 느꼈다.
이것을 모르는 비나리는 엄마의 불러오는 배를 보며 동생의 존재를 느꼈을 테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동생이 세상 밖으로 나온 후에야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실감했을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동생의 존재에 비나리는 많이 당황했을 수도 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형이 되었고, 비나리는 동생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기에는 여전히 어렸던 거 같다.
자신에게 쏟아지던 관심들이 하루아침에 우는 아기에게로 가자, 비나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했다. 울어도 보고 떼도 써보았지만, “기다려봐” 또는 “나중에 “ 또는 ”아기가 울잖아! “ 등등 어린 비나리에게 엄마는 이해해 달라는 말밖에 없었다. 이에 비나리는 대단한 결심을 한 듯 이전과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엄마가 나와 놀아주지 않는 거지? 동생 때문이야!!
그래! 다시 엄마의 사랑을 뺏어오자!
비나리의 시간은 그때부터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동생이 울면 비나리도 똑같이 옆에 누워 같이 울기 시작했으며, 잘 걸어 다니다 가도 갑자기 아기처럼 거실 바닥을 기어 다니기도 했다. 힘들게 시작한 배변 훈련을 포기하고 결국엔 동생과 똑같은 기저귀를 채워달라고 했다. 그렇게 쉬울 것 같았던 배변 훈련은 결국 1년이나 더 지연되었다…(7월 글 참조)
그렇게 한참을 거꾸로 가는 시간은, 둘째가 형을 따라 직립보행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원래의 시간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우리 둘째는 억울하다. 형의 사랑을 뺏어간 악당(?) 같지만, 동생의 입장에선 처음부터 형에게 향하는 사랑은 알지도 못했다. 동생이 생기기 전에 형이 혼자서 가득 받았던 그만큼의 사랑을 동생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것이다.
나는 동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 때는 내가 두 아이의 부모가 된다면 무조건 동생을 더 많이 이뻐할 거라고 철없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막상 두 아이의 부모가 되고 보니, 현실은 생각한 것과 달랐다.
첫째는 한창 이쁨 받아야 할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선택권도 없이 형-누나-언니-오빠가 되어 어리광보다는 의젓함을 더 빨리 요구받는 것이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형이니까 조금만 참아 “ 또는 ”네가 형이니, 동생에게 양보해 “라는 말을 고작 네 살 아이에게 하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혼자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한 외동과는 달리, 우리 비나리는 놀이터에서도 동생과 차례를 번갈아 가며 타야 한다고 배우며, 양보를 강요받았다.
그렇게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날 비나리는 “동생아, 나도 너무 타고 싶어. 조금만 타고 비켜줘.”라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동생은 말을 알아듣는 척 마는 척 신나게 놀고 있는데 문득, 생각해 보니, 비나리도 지금의 둘째 만한 시기부터 형 역할을 강요받은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비나리에게 더욱 마음이 갔다. 그리고, 나의 어릴 적 시절도 함께 떠올랐다. 무조건 언니와 똑같이 해달라고 떼쓰는 나를 위해 우리 부모님도 언니에게 양보를 강요하시면서도 어린 언니에게 얼마나 미안해하셨을까. 이제야 비로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부모는 모든 아이에게 똑같은 사랑을 주기 위해, 사랑을 반으로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두 배로 만들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
만약,
비나리가 둘째로 태어났더라면
지금보다 더 많이 어리광을 피울 수 있었을까?
만약, 동생이 첫째로 태어났더라면 지금의 비나리처럼 컸을까?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동생을 미워하는 첫째 때문에 고민의 글이 많았다. 동생을 몰래 때리기도 하고, 깨물거나 눈코 등을 꾹꾹 찌르기도 하고 걷기 시작하면 밀기 일쑤다.
비나리와 비슷한 시기에 형, 누나가 된 지인의 아이들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밖에서 만나면 너무나 순하고 착한 형, 누나였지만, 집에서는 난폭할 정도로 동생을 미워한다고 고민이라고 했다.
나 또한 이런 상황에서 두 아이의 사이를 좋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써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어떤 책에서는 처음 둘째를 데려가는 날, 엄마가 안고 가면 안 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동생이 선물을 사 왔다’고 좋은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잘 통하지 않았던 것은 비나리가 그러한 상황을 이해하기에 턱없이 어렸기 때문인 것 같다.
비나리가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해 보여 우리는 한동안 아빠-엄마 각각 한 명씩 아이를 전담하여 아이 혼자서 오롯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첫째가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할 시기, 협상에 대해 시도해 보았다. 어떤 책에서는 어린아이에게 ‘협박’을 포함한 ‘협상’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표현했지만, 우리에게는 괜찮은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시도해 보았다. 그 협상에서 우리가 비나리에게 제시한 것은 과자였다.
비나리는 처음 보는 것을 쉽게 입에 넣지 않았다. 그렇기에 또래보다 과자를 늦게 알게 되었고, 과자에 대한 소망(?)이 상대적으로 컸다. 그래서 나는 동생을 밀거나 때리면 그날은 과자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야 과자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할 때부터 협상에 동생을 포함시켰다. 동생에게 장난감을 나눠주면, 새로운 장난감을 사주겠다 등.
점점 비나리는 조건의 대가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 거래의 최고봉은 “네가 동생을 사랑하면, 엄마는 너를 더 많이 사랑해 줄 거야”였다.
이 말이 네 살 아기에게는 다소 어려운 말이었지만, 아이가 동생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면서 사이가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저돌적인 동생의 급습-형의 최애 장난감을 가지고 도망하기, 반반 나눠준 과자를 다 먹고 형 과자 뺏어 먹기 등에 분을 참지 못하고 동생을 밀치거나 때리거나 하는 행동 등이 반사적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집에서는 동생을 미워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밖에 나가면 꼬옥 둘이 손을 잡고 다니고 보이지 않으면 어디 갔는지 챙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사는 세상은 1퍼센트의 미움과 99퍼센트의 사랑으로 채워졌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아니었지만, 우리의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동생이었다. 나 역시 동생으로 태어났고, 내 남편은 형이 될 줄도 모르고 태어났으나 어느 날 동생이 생겼다고 한다. 서로 각자 다른 환경과 위치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동등한 부모로서 아이들을 보고 있다. 어릴 적 각자의 형제자매에게 느낀 질투를 알기에 더욱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한다.
사랑도 많이 받아본 사람이 할 수 있다고 하듯이, 우리 아이들도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아 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 비나리의 육아일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