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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담기 씨소 May 22. 2024

우리가 함께 하는 오늘

늘 옆에 있어서 무심히 지나친 모든 것이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다.


    모두가 잠든 캄캄한 밤    
  남편이 숨을 헉헉거리며, 나를 애타게 불렀다.
                        
 

[우리가 함께하는 오늘]

                                        씨소 에세이


 잠결에 벌어진 급박한 상황에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벌벌 떨기만 했다. 남편은 쥐어 짜내듯 힘겹게 119를 외치며,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나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119를 눌렀다.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는 내내 남편과 통보 없는 이별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 시간을 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

 주말에는 가사 분담을 하기로 약속했으면서 이행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친 것도. 비염으로 콧물을 줄줄 흘리는 아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왜 사줬는지 따져 물은 것도. 모두 후회뿐이었다.

 인간은 사고나 병으로 예고 없이 죽을 수 있는 미약한 존재인데, 나는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남편은 내 곁에 있으리라 착각하고 살았나 보다.     


 응급실 접수를 하고 검사가 진행되었다.

 심전도 검사, 혈액검사와 CT촬영 등 남편은 여러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받는 동안 응급실 침상에 누워있는 남편의 얼굴이 안쓰러울 정도로 해쓱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남편 손을 꼭 잡고 침상에 달라붙어 울먹거렸다.

 “여보, 아프지 마. 내가 미안해. 당신한테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다른 사람 때문에 속상할 때도 당신한테

화풀이해서 당신이 병이 났나 봐.”

 이런 순간에도 남편은 나를 위로했다.

 “괜찮아요. 당신 힘들어서 어떡하지. 잠도 못 자고 피곤할 텐데 택시 타고 먼저 집에 가요.”


 늘 나만 힘들고, 나만 늙어가는 줄 알았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편, 배려심 많은 남편의 존재를 순간순간 잊고 살았다. 소중한 것을 잃은 후에야 삶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했는지 깨닫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이라면 그건 바로 ‘나’다.

 반나절의 시간이 흐르고 의사 소견상 정밀검사가 필요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나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검사날짜를 잡았다. 우리 부부는 손을 꼭 잡고 응급실을 걸어 나와 택시에 몸을 실었다. 내 마음은 어둠인데 하늘은 얄미울 정도로 맑고 예뻤다. 창 너머를 바라보며 나는 어떻게 죽음을 대할 것인가. 죽음으로 다가가는 삶의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자문했다.


 며칠이 지나고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날이 너무 포근해서 목적지 없이 산책 삼아 걸었다. 걷다 보니 시민을 위해 조성된 공원에 평형대 같은 운동기구가 있었다.

 아들 녀석이 겅중 뛰어 올라가더니 양팔을 벌리고 정면을 응시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수평을 유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느리지만 흔들림 없이 끝을 향해 걸었다. 아들이 착지하는 순간 ‘죽음으로 다가가는 삶의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렸다.

 타인에 의해 흔들리지 말고 수평을 유지하라.

 내일이 아닌 매 순간 보이는 것에 집중하라.

 그러면 내일이 와도 지난 오늘을 아쉬워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맺어져 나와 남편은 20여 년을 함께 걸어왔다. 함께한 시간은 행복할 때도, 슬프고 고달플 때도 있었던 긴 여정이었다. 남편과의 인연으로 엮어진 시부모님과 주변 사람들. 때론 그들의 말과 행동이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타인의 말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억울하고 화가 치밀 때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열변을 토해냈다. 내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주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오랜 시간 내 감정 쓰레기들을 담고 살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늘 옆에 있어서 무심히 지나친 것이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다고 깨닫던 그 날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남편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내 존재를 마주한 날, 나는 남편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남편과 함께한 과거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결혼 후 어려움 속에서도 남편은 내 편이 되어주려고 노력했고 지킬 수 없는 말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부부관계도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며 살았는데, 난 거짓말이라도 달달한 말을 못 하는 남편이 싫었다. 늘 겸손한 남편이 가끔은 당당해 보이지 않아서 싫었다. 이 순간 나는 고백한다. 타인에 의해 상처받거나 흔들리지 않는 오늘을 살고 싶다고. 혼자가 아닌 남편과 함께 두 아이와 함께 격려와 사랑이 담뿍 담긴 오늘을 살아보겠다고.

가족이 손 맞잡고 걷는 이 순간이 행복이다

마주한 노을이 감동으로 감사로 다가온 날..

투닥거려도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찾고 싶다..


#소중한사람 #부부 #죽음 #오늘 #운수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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