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떠난 유학길에서, 결혼결심

대공황속에서 느끼게 된 외로움은 결혼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by 묭작가

때는 2019년도 가을이었다.

오래 일하던 가게를 그만두고 다른 가게로 옮겼지만

역시나 번아웃은 그대로 였고 번아웃을 계기로

망설이기만 하던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인건비 인상으로

사실 시급이 높은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못하던 월급쟁이로 있던 이유는

경력을 위해 감안하던 부분이지만 목표가 달라진 지금은 경력보다는 돈이 더 먼저였기에

망설임없이 퇴사하였다.


그렇게 새로 구한 백화점 아르바이트에서 역시나 7년차의 일머리가 눈에 띄었는지

한 달도 안되서 기존 매니저가 나가고 나서 매니저를 맡게 되었다.

뭐 시급은 똑같이 받았던거 같긴한데 그래도 일반 아르바이트 생보다는 더 챙겨주셨었다.

그래서 나름 더 재밌게 일했던것 같다.


그렇게 2020년이 되고 준비하던 JLPT2급도 합격하고 순탄히 일본 유학길에 들어섰다.

그 시기 남자 친구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사실 나와 사귀기 전부터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내가 있어서 좀 더 일했던것 같았다.

내가 유학을 가기때문에 이 도시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던것 같다.


내가 떠나던 2020년 1월 남자친구도 고향에 일자리를 구해 일하게 되었고

그렇게 부산 공항에서의 마중을 끝으로 우리는 대략 2년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 2020년 대공황의 시대. 코로나가 찾아온 것이었다.


내가 넘어간 1월까지는 유행병이 조금 돌고 있다 정도였으나

3월이 되니 국제공항 전면 폐쇠라는 드라마보다 더한 전개가 이루어졌다.

다니고 있던 어학원까지 일시폐쇠를 할 정도 였기에 상황은 겉잡을 수 없이 심각해져갔다.


그나마 재물복이 있는 내 팔자 덕인지 마침 일본의 총리는

전국민(공식적인 장기체류 비자를 가진 외국인 포함)에게

10만에(당시 한화로 100만원이상)을 급부한다는 정책을 펼쳤다.

이제 막 일본에 와 일자리가 안정되지 않았던 나에게는 정말 단비같은 지원금이었다.

물론 약 2년치의 월세와 생활비를 준비해왔던 터라 당장 돈을 못벌어도 크게 문제는

없었으나 그래도 한국에 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황은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와 정면충돌하던 시기에 일본에 유학을 와서 정말 한국에서의 모든 인연과 고립된 생활을 하다보니

차차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물론 일본인 친구들과 동료직원들이 생겨서 심심할 틈은 없었으나

하지만 근본적인 불안함은 여전했다. 1년 3개월이라는 어학원의 가간이 끝나서 비자도 끝이 났지만

계속된 코로나문제로 비자를 6개월 연장이 가능해졌다. 사실 바로 돌아가도 문제는 되지않았지만

전염병으로 인해 국가간 이동이 제한된 이 시점에 다시 돌아가면 일본에는 언제 다시 올 수 있게 될지 알수 없는 터라

6개월간 돌아갈 준비겸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했다.


한국에 돌아간다한들 내가 있을 곳이 없기도 하고 2주라는 격리기간을 보낼 곳 또한 마땋치 않았다.

일본 내부도 코로나로 인해 제한이 많아 여행도 쉽지 않았다.

기차패스를 이용해 후지산이나 훗카이도에 가보고 싶었지만 휴업하는 가게들이 늘기도하고

코로나에 걸릴 리스크가 커서 내가 거주하던 오사카 근교의 고베의 롯코산에 간것이 그나마 여행다운 여행이었던것 같다.

오사카 이곳 저곳을 다녔지만 역시 혼자 여행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같이 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던것 같다.

그 누군가는 친구 보다는 가족,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많은 생각의 시간이 있었기에

내 인생의 앞으로의 목표는 결혼이 되었다.

남자친구도 있고 그 남자친구도 결혼을 바라고(사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더 강력하게 바랬다.)

돌아가기 전에 남자친구와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살던 친정이 있는 도시가 아닌 남편의 고향인 작은 도시에서 살기로 결정하고

코로나로 받았던 임시비자를 한 번 더 연장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한국행 비행기로 무사히 귀국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에게 결혼이란 도박에 가까웠다.

내가 살던 곳이 아닌 곳에 모든 것이 처음이 될 경험들은

내가 예상하기 힘든 인생의 도박이었다.

그런 도박에 배팅을 하게 만든 남자친구는 귀국 3개월만에 나의 남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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