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감성의 이자카야 골목에서 보낸 마지막 밤
사흘 차 오전, 숙소 근처 골목에서 신경 쓰이는 가게 하나를 발견했다. 텐진미나미역 근처 야끼니꾸집 니쿠토사케 주베. 시선을 잡아 끄는 연두색 외벽과 귀여운 간판에서 맛집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서, 아침 먹기 전부터 일찌감치 저녁 메뉴를 결정하게 되었다. 타베로그에서 저녁 시간대 예약이 가능했지만 언제쯤 돌아올지 확실하지 않아 우선 워크인에 도전하기로 했다.
오후 여섯 시쯤 캐널시티에서 숙소로 돌아와 잠시 숨을 돌리고 니쿠토사케 주베로 향했다. 역시나 유명 맛집이었는지 예약으로 만석임을 안내받아 터덜터덜 돌아서는데, 풀 죽은 모습이 안쓰러우셨는지 직원분이 다시 우리를 불러 카운터석에는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며 괜찮을지 물어봐 주셨다. 뭐야 이 가게 친절해... 평소 식사하는 속도가 빠른 편이라 그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어 우선 자리를 잡았다.
갈비부터 우설까지 여러 부위를 끊임없이 주문하며 시간 내에 무사히 식사를 마쳤다. 고기의 기름진 정도도 나쁘지 않았고 특히나 우설은 자칫하면 잡내가 나기 쉬운데 향에 예민한 나에게 딱히 거슬리지도 않았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테이블마다 사각 잔에 담긴 레몬사와가 놓여 있었지만, 잔이 제법 커서 짧은 시간에 마시긴 힘들 것 같아 주문하진 못했다. 다음번에는 꼭 예약으로 찾아 여유롭게 머무르고 싶었던 곳.
삼각시장이라 하면 보통 오타루의 재래시장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여행 덕에 후쿠오카에도 같은 이름의 장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기를 잔뜩 먹고 입가심할 이자카야를 찾다 흘러들어온 후쿠오카 삼각시장. 낡은 상가 골목에 식당과 술집들이 늘어서 있고, 대부분이 대여섯 명 정도면 꽉 찰 듯한 아담한 크기의 가게들이었다. 관광객 가득한 번화가와 달리 퇴근한 직장인들이 모여 앉은 한적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저녁은 이 골목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골목길은 한산했지만 가게들이 작아 빈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방황하다 딱 두 개 남은 좌석을 발견하고 오키나와 주점 가치마이시사에 들어선 우리. 생소한 요리 이름에 멀뚱멀뚱 메뉴판만 보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분이 도와드릴까요, 하고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걸어오셨다. 알고 보니 일 관계로 한국에 자주 방문한다는 직장인이셨고 이 단골손님의 추천으로 오키나와 명물이라는 족발요리도 먹어볼 수 있었다. 마침 나이도 또래라 대화 주제도 잘 맞아 늦은 시간까지 신나게 수다를 나눴다. 가끔 떠올리며 다시 웃을 만한, 여행 마지막 날 밤에 어울리는 시끌벅적한 추억이었다.
돌아와서 찾아보니 삼각시장을 포함한 야쿠인 역 주변은 작은 식당과 카페가 드문드문 있는 주택가라 딱히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곳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나 자연스레 한국어 메뉴판을 내어주는 텐진이나 하카타와는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이자카야에 잠깐 머무른 것뿐인데도 현지인들 사이에서 여행 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전 날 나카스에 기대했던 감성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얻어갈 수 있어 좋았다.
이번 여행을 다녀오며 왜 후쿠오카를 난이도 최하 여행지라고들 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짧은 비행시간에 더해 어딜 가든 한국어 안내가 잘 되어 있었고 도시가 크지 않아 이동에 큰 부담이 없다. 유후인에서 벳부까지 넘어가는 가족 온천여행 코스로도 괜찮고, 친구들끼리 시내에 머물며 맛집과 쇼핑 스팟을 돌다 오호리 공원이나 모모치 해변에서 여유를 찾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도시 중심부의 분위기는 이번에 잘 알았으니 다음번에 다시 오게 된다면 사가나 다자이후 같은 근교 소도시를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요소가 평균을 유지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 어떤 형태의 여행이건 무난하게 커버할 수 있다는 점이 이 도시의 가장 큰 매력인 듯하다.
완전히 방전된 상태로 떠나 생각보다 잘 먹고 쉬었던 23년 가을. 숙소 중심으로 가볍게 산책하듯 지냈기 때문에 누군가가 딱히 참고할 만한 코스는 아니지만, 이리저리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니 마음만은 편안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돌볼 힘을 다시 가득 채워온 삼박사일 후쿠오카 여행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