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넘게 숨긴 연애
나의 부모님의 굉장히 옛날 사람이다. 유교집안 그 자체이다. 늦게까지 밖에서 술 마시는 건 꿈도 못 꾼다. 꽉 막힌 집안이 싫어서 자유를 갈망해 왔다. 자유로운 부모님이 있으신 친구가 매번 부러웠다. 그리고 부모님께 나의 속마음을 최대한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꺼내도 좋은 소리 못 듣고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점점 부모님 곁에서 떠날 준비를 하나씩 하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는 퇴사 두 번째는 남자친구 공개이다.
퇴사
이때까지 착하고 말 잘 듣는 딸이었다. 부모님이 싫어할 것 같은 행동을 안 했다. '이걸 하면 부모님이 좋아하겠지?'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부모님의 눈치를 봤다. 첫 직장생활에서 괴로움을 느낄 때 그래도 몇 년 살아본 사회적으로 선배인 부모님의 말을 들으려 노력했다.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퇴사를 하면 나보다 부모님이 더 괴로워할걸 알았다. 퇴사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조금만 더 버텨보라며 나를 매번 설득시켰기 때문이다. 부모님 덕분에(?) 나의 선택을 미루고 미뤄서 결국은 퇴사를 했다. 첫 직장생활이 괴로웠지만 부모님이 나의 선택을 강하게 반대해도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그 길을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줘서 좋은 경험으로 생각한다.
내 인생인데 왜 자꾸 나를 아바타처럼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하는지 너무 갑갑하다. 퇴사를 하고 해외여행을 간다고 말했더니 노발대발 화를 내셨다. 해외여행 가는 게 그렇게 죄인가? 해외여행을 가는 것조차 내 맘대로 못 가게 하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기에 부모님 입장에서 나의 인생이 크게 걱정되는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성인이고 내가 내 인생을 선택하고 결정해도 되는 나이 아닌가.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해도 내가 고통받고 그런 경험이 쌓여야 나 스스로도 조금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게 내 생각이다.
남자친구 공개
남자친구를 사귈 때마다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 조금 사귀고 말해야지 싶었지만 나의 자유를 가로막을걸 알기에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25살. 사귄 지 3년이 넘어가는 시점이어서 말할 때가 된 거 같아 자연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더 이상은 숨고 싶지 않았다. 이야기를 했더니 역시나 어이없는 질문 투성이었다.
"학교는 어디 나왔냐"
나보다 안 좋은 대학교를 나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은 공부가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나도 그렇게 좋은 대학교를 나온 건 아니다.
"무슨 과 나왔냐"
문과 중 한 학과 이야기를 하니 바로 한숨부터 쉬셨다.
"무슨 일 하냐""직업이 튼튼한 사람을 만나라"
남자친구는 영업직이다. 영업직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나는 남자친구를 서로 학생인 신분에서 만났다. 나도 사회적인 편견에 사로 잡혀 남자친구를 처음 만났을 당시에 영업직이었으면 꺼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봐왔기에 남자친구가 선택한 길을 존중한다. 엄마는 "공무원인 남자"를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한다. 공무원 다니는 남자가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안정적이다. 하나밖에 없다. 나랑 잘 맞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닌가.
남자친구를 직접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저런 정보들로만 판단한다는 게 너무 싫다. 주변에 엄마 지인 딸과 비교까지 했다. "00 남자친구는 대기업 다닌다더라." 그렇게 밖으로 보이는 것들이 중요한가. 내가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남자친구는 굉장히 잘해주고 성격이 나와 잘 맞다. 남자친구는 종종 우리 부모님 생각까지 하면서 맛있는 거 집에 들고 가라며 챙겨준다. 스펙들이 부모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며 안 좋은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게 너무 속상하고 내가 다 미안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보기에 우리 집 보다 더 잘 사는 거 같다. 결혼할 거 아니면 빨리 정리해란 말까지 한다는 게 나로선 전혀 이해가 안 된다. 그래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과 결혼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데 왜 그렇게 강압적인 건지.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중개를 하면 더 좋은 사람 충분히 만날 수 있다" 숨이 턱턱 막힌다. 말한 걸 후회하기도 하면서도 조금은 당당해진 내가 돼서 좋다.
부모님 눈에는 성인이 돼도 내가 아직 아기 같은가 보다. 하루빨리 내가 더 성장하고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나에 대한 믿음이 아직 없기에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해도 못 미더워하는 거 같다. 아직 내가 부모가 되지 않아서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내가 부모가 된다면 최대한 자유롭게 키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