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아기와 외출할 줄 알았는데
두 번 유산 후 홀로 남은 나랑 셀프 데이트
지난달부터는 시간만 나면 친정에 가서 항암 중인 아빠와, 그런 아빠를 간병하는 엄마와 함께 맨발 걷기를 다녔다. 이제 맨발 걷기는 두 달 가까이 되어가고, 오늘은 3차 항암 주사 맞는 날이었다. 예정대로라면 3주마다 맞는 주사이므로 지난주에 맞아야 했지만 간 수치 문제로 일주일을 연기하고 약 처방만 받아왔었다. 다행히도 오늘은 간수치가 조금 떨어져서 항암 주사를 맞을 수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 아빠가 조금만 먹어도 배 부름을 호소하고 어제는 하복부 쓰림과 식은땀, 몸살 증세로 인해서 힘들어했다. 증상을 찾아보니 복수가 차는 게 아닐까 싶어 오늘 병원 간 김에 복부 초음파를 요청해서 받았고, 검사 결과 복수가 차는 게 맞았다. 해서 오늘은 항암 주사 이후 복수 천자까지 진행하느라 아침 일찍 병원에 출근한 엄마 아빠는 저녁 시간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덕분에 오늘은 맨발 운동도 건너뛰고, 온종일 집에 홀로 머물렀다. 어제 친정에서 받아온 감자와 양파 씻어서 감자찌개도 해 먹고, 오래간만에 로봇 청소기도 돌리고 쓰레기도 버리고 환기도 실컷 했다. 5월 한 달간 방치해 두었던 블로그에 예약글도 몰아서 썼다. 오전에 잠깐 바깥바람 쐬어보니 공기도 맑고 햇살도 포근하고 날씨가 너무나 좋아서 지갑 챙겨 들고 아파트에 열린 장터에 가봤다. 매주마다 열리는 장터이지만 몇 달 만에 나와본 것 같았다. 가장 멀리에 위치한 과일 가게부터 들러서 과일 구경하다가 블랙 포도 두 송이를 샀다. 그리고 올라오는 길에 등심 돈까스 다섯 장과 주전부리로 먹을 2,000원짜리 계란빵 한 개를 사들고 집 앞 벤치에 앉았다.
이 시간에 동네에 혼자 나와서 앉아 있는 젊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제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기와 엄마, 어린이집 갔다 온 아이들과 엄마 아니면 강아지 산책시키는 개 엄마. 강아지든 사람이든 아기 없으면 오후에 집 앞에 나와 앉아있는 것도 사치 같았다. 그런데 맑은 하늘 선선한 날씨에 벤치에서 여유 부리고 있으니 세상 좋았다. 집 안에 있으면 쉬는 게 쉬는 게 아니고 빨래하랴 청소하랴, 밥 해 먹고 치우랴 바쁜데, 잠시라도 나와서 앉아있으니 환기가 된다. 순간 생각해 봤지만, 내가 지금 엄마라면 홀로 보내는 지금 여유롭고 한가한 이 시간이 그리울 것 같았다. 첫 임신 했을 땐 올해 봄엔 아기와 함께 외출할 줄 알았고, 두 번째 임신했을 땐 이맘땐 만삭일 거라 생각했다. 임신은 분명 두 번이나 했고, 열 달 이상 시간도 흘렀는데 난 아기가 없고 예전과 같은 홀몸이다. 유산 후에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서 날마다 집에 혼자 있었고, 일도 온라인으로 시작했다. 겨우 집 앞 장터지만 혼자 외출하는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 한 번, 아파트 한 번 올려다 보니 답답한 집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힐링이었다. 30분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홀로 남은 나와 함께하는 데이트가 만족스러웠다. 앞으로 자주 나랑 데이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