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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운대 줌마 May 20. 2024

'각방 쓰기' 미투

아무튼 각방 쓰기

우리 남편 졸지에 쫄쫄이’ 됐다

모임에 나온 한 지인의 말에 아이들처럼 귀를 쫑긋한다.

퇴직 앞둔 남편을 반 강제로 수영강습 등록시키고강습 첫날 와이프 뒤를 졸졸 따라서 풀장으로 가는 걸 보고 바로 붙여진 별명이란다.

칠팔십 대 언니야들이 마누라 꽁무니 졸졸 쫓아다닌다고히힛.

하하하 호호호.

한바탕 웃음소리로 모임 자리가 떠들썩하다.    

 

그 이야기를 또 다른 지인이 이어받는다.

얼마 전 뉴스에서 봤는데

수면 이혼’ 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대.

그건 또 뭔데뭔데?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중년 이후 배우자의 코골이 때문에 따로 잠을 자는 부부들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래

사람들 말 만드는 재주가 기가 막히네. 

    

그 표현 딱이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우리 부부 가리키는 말이네.

우리도 각방 써

우리도.

우리는 각방 쓴지 구석시시대다.

각 방 쓰기 미투가 쿨하게 이어진다.

또 한바탕 중년 아줌마들의 웃음이 터진다. 

    

중년 이후 노년을 바라보는 부부관계는 천태만상이다

남편하고는 카페에는 안 간다카페 가서 멀뚱멀뚱 무슨 말 하노

해외여행은 더더욱 같이 안 간다몇 박 며칠 동안 남편하고 단둘이 무슨 재미로 가노남편 챙긴다고 힘만 들지.

우리는 소 닭 보듯 닭 보듯 데면데면한지 옛날이다

우리는 텔레비전 보는 취향도 달라서 각자 방에 들어가서 본다

밥 먹을 때만 한 식탁에 앉아서 먹지 한 지붕 두 가족 된 지 오래다오래.

시쳇말로 따로국밥들인 부부가 의외로 많다.  

   

이처럼 등 돌린 부부들이 늘어나는 까닭은 뭘까?

부부 문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이다남이 왈가왈부할 것도 못 된다지만

결혼이란 방식이 두 사람을 죽을 때까지 만족시키지는 못하는 제도인가

원점으로 돌아가 묻고도 싶어진다 

    

남편은 오래된 집과 비슷하다익숙해져서 편하다단지 아쉽다면 새로움이 없어서 때론 밋밋하기도 하다.

그건 남편 입장에서 아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이 들면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이 좀 더 낫지 않나

아무튼 내 경우는 그렇다.   

  


중년 이후에 남편과 함께하면 좋은 점은 뭘까?

첫째남편은 꽤 쓸모 있다

밤에 같이 있으면 무섭지 않다집에 고칠 게 있으면 가장의 책무성 때문인지 매우 적극적 나서준다시장 갈 때 무거운 짐도 들어 주고 여행 갈 때 장거리 운전도 도맡아 해준다아직은 여러모로 쓰임이 많다   

  

둘째남편은 내 보호자가 되어 준다

나이 드니까 몸뚱이 어느 구석에 큰 병 진단이라도 받을까 봐 혼자 병원 가기 두렵다

특히 수면 내시경 할 때는 같이 갈 사람이 꼭 필요하다그렇다고 멀리 있는 자식들 부를 수도 없고 아플 때는 남편만 한 사람이 없다.  

   

셋째남편이 있어야 음식도 만들게 되고 나도 영양 보충도 된다

여자들 혼자 먹으려고 이것저것 음식 만들기가 귀찮아서 대충 국에 밥 한술 말아 김장김치 꺼내서 먹고 만다남편 챙기려고 음식 만들면 나도 영양분을 챙길 수 있다반찬 몇 가지 없어도 혼자 먹기보다 둘이 먹으면 맛있다.     


그렇다면,

남편은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간의 태도와 관계의 문제가 아닐까     


중년 이후에 부부가 잘 지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첫째남편들이 아내들의 몸 상태 변화를 이해하자

여자들은 폐경이 되면 여성호르몬이 안 나와서 참는 힘이 부족해지고 말투도 거칠어진다고 한다남편의 못마땅한 말투나 행동은 더는 참아주지 못한다즉각 반응하게 되어 티격태격하게 된다서로의 말투를 한 번 살펴보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따뜻한 말하기를 실천해보자    

 

둘째부부관계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집도 한 삼십 년 넘으면 리모델링에다 재건축까지 한다장수 시대다퇴직하고 한 공간 안에서 지낼 시간도 무진장 길어졌다.

모임에 나가서 들어보면 우리 60대 이상 한국 남자들 다 그런 건 아니지만유교문화 영향으로 권위적인 편이다말투는 자상함과는 거리가 멀다곰살맞은 애정 표현은 사나이답지 못하다는 인식도 마음 저 밑바닥에 깔려 있는 남자들이 많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젠틀하고 카페라떼 처럼 달달한 실장님 스타일에 반해 있는 우리 아내들에게 사랑받기는 좀 어렵다

부부간에 시원하게 속풀이 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대화와 소통으로 부부관계의 개선을 시도해 볼 만하다동치미를 마신 듯 시원한 기분으로 인생 후반 다시 또 함께 가보자.   

  

셋째아내들도 남편들에게 함께할 기회를 주어보자

여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맛집도 가고 카페에서 수다도 떨면서 세상 고단함도 털어낸다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고놀아 본 사람이 잘 논다고

퇴직 전까지 일만 한다고 잘 노는 법을 모르는 남편들과 같이 놀아주자문화센터에 아내들 혼자만 가지 말고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보자남편과 아내가 같이 할 수 있는 취미가 한 개 정도 있으면 딱 좋을 듯하다.   


  

남편 그늘이 최고다그래야 남들이 무시하지 않는다○○서방에게 잘하고 살아.”

아버지 잃고 삼십 년 넘게 산 친정엄마가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옛 어른들도 하나같이 늘그막에는 부부가 자식보다 낫다고들 하진 않던가     

한때는 서로 좋아서 따로 떨어져 있기 싫어서 결혼까지 했다한 삼사십 년 고생 고개 다 넘고 나서 부부가 웬수처럼 변해 있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고향 프로그램 같은 데서 노부부들의 인터뷰를 들으면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평생 사랑한다는 말 한 번 안 하고 살았다는 할배할매들이 수두룩하다

진행자가 시키면 마지못해 사랑한다고 말하고 볼 뽀뽀를 하고 그런다

팔순을 훌쩍 넘긴 꼬부랑 할배할매들시킨다고 다한다

애기들처럼 귀여우시다.

늦어도 너무 늦은 애정 표현이 더 웃기다헤헷

그래도 안 하고 죽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고 생각한다.    

 

아내들도 남편을 무조건 밀어내지만 말자남편들의 손을 잡아주자

공익광고 같지만 함께하면 즐거움도 더 커진다.

남편들도 목에 힘 좀 빼고 사랑받는 남편이 되기 위한 센스를 발휘하면 좋겠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년 이후 부부들

다들 육십 년 이상씩 살아온 내공들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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