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변화
띵동 띵동.
미역국 냄비를 통째로 들고 둘째 아들 내외가 나타났다.
내 생일날 깜짝 이벤트란다.
서른넷 아들이 태어나서 처음 끓인 감성 그득 미역국이다.
간이 딱 맞지는 않았지만... 그게 뭐 대수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찐하고 깊은 미역국이다.
그 국맛을 오래오래 음미하며
또 한 살을 잘 먹을 것 같다.
'우리 아들 장가가더니 달라졌어요.' 다.
'우리 남편도 달라졌어요.' 다.
작년 초, 11월에 둘째 아들 결혼 날짜가 잡히자,
대통령 연초 기자 회견처럼 중대 발표를 했다.
"올해(작년초)부터는 아버님 기제사를 제외한 추석과 설 명절 차례는 산소에서 지낸다."
죽을 때까지 기존 제례문화만은 안 바꿀 것 같은 뼛속 깊이 유교남자였다.
완전 깜놀이다.
사실 그 변화의 물꼬를 튼 것은 시어머님이다.
그즈음 동네 경로당에 나가시더니
추석에는 차례를 안 지내는 집들이 늘어난 다시며
" 너거 아버지 기제사도 추석 일주일 전에 있으니,
벌초 때 주과포 준비해서 잔이나 한 잔 올리고,
우리 집도 추석 차례는 지내지 말자."
하셨다.
어머님 결정에 너무 놀랐지만, 남편도 나도 기다렸던 것처럼 적극 동의 했다.
그러나 좋은 티를 확 내지는 못했다.
마음속으로 엄지 척만 했다!!
'우리 시어머님도 달라졌어요.' 다.
거기서 남편은 한걸음 더 나아간 거다.
설명절 차례도 산소에서 지내는 걸로 바꿔 아이들에게 선포해 버렸다.
어머님은 설명절 차례는 집에서 지내길 원하는 눈치셨다.
육십 넘은 아들이 결정한 일이니
다소 불만이 있어도 그냥저냥 따르시는 듯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참에 불도저처럼 확 밀어붙인다.
" 당신 좀 멋있네! 엄지 척. "
남편을 추켜 세웠지만,
나는 그냥 따라가는 모양새만 취했다.
괜히 내게 불똥이 튈까 봐.
' 며느리 자리는 늘 쉽지가 않다.'
코로나 이후 세상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젊은이들, 결혼해도 자식을 갖지 않는 부부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앞으로 제례 문화라는 게 존재할지 여부도 불투명해진다.
나부터가 생각이 변화되고 있다.
'내 제사는 지내지 말고, 살았을 때 한 번 더 보고 살자 주의다. '
나도 달라지고 있어요. 다
시어머님도 구순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구십까지 살겠나?"
반문하시듯 (그럼요! 사시고 말고요!! 그 말을 듣고 싶은 거겠지만)
원하던 원하지 않던 장수시대다.
어머님 말씀처럼 죽을래도 마음대로 죽을 수가 없다.
아무튼 가족이 지지고 볶더라도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
우리 가족 4대가 함께 즐거운 가족 공동체가 되려면
구순 다 된 시어머님부터 두 살배기 손자까지.
함께 좋은 방향으로 나가가려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지난 설에는 시댁 가까이에 있는 한옥 펜션에서 보냈다.
시어머니와 우리 부부, 큰아들 작은 아들 내외, 손자 둘까지 아홉 명이서.
설 전날 만나서, 근처 미나리 삼겹살 맛집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지난 일 년을 회고하며 담소를 도란도란 나누었다.
가족 스몰토크가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다음날 아침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나누었다.
시아버님 산소를 찾아 새해 인사를 드렸다.
"요즘 며느리들이 살판났네! 살판났어!"
하시며 시어머님도 웃으셨다.
음식 준비하느라 힘든 사람 없으니
시어머니도 며느리들도 부담 없이 모두 즐거운 명절이 되었다.
다 함께 여행 온 기분이다.
흔히들 말하는 명절증후군 같은 건 없다.
다음 설날에는 어디 좋은 장소로 가서 가족들과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까?
그 궁리가 또 즐거웠다.
우리 가족은 느릿느릿 진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