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놀이
살다 보니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요즘 조부모들은 그런 진부한 질문을 손주에게 하지 않는다.
사랑의 양을 질량으로 측정할 수 없거니와
어른들 재밌자고 아이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라는
고약한 물음은 이제 그만이다.
거꾸로 손주 녀석의 맹랑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 할머니는 세상에서 누가 젤로 좋아요?”
신조어로 ' 답정너' 다.
“ 우리 J 이가 제일 좋지.”
“ 하핫.”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누가 젤로 좋아요?”
“ 바로바로 우리 J 이지!”
“ 왜? 다 내가 좋다는 거야? 하핫”
네 돌 갓 지난 손자는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헤헤헤 헤헤헤
옥수수 알갱이 같은 젖니를 하얗게 드러내며 웃는다.
손자의 만면의 미소에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마음 부자가 된다.
내 아이 키울 때는 요런 재미를 몰랐었다.
아이들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고 낯간지러워 못했던 고백을
손주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연거푸 반복한다.
그때 내 자식들에게 사랑한다고 실컷 말해줄 걸,
엄마는 세상에서 네가 가장 좋다고.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얼마 전 손자와 함께 상상키즈 월드라는 곳에 갔다.
동네 키즈카페를 한 열개쯤 합체한 듯한 규모에 놀랐다.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손자의 모습은 귀여움 한도초과다.
놀이를 통해 아이는 세상 즐거움을 만끽한다.
온 세상이 그저 행복한 놀이터인 줄로만 안다.
' 그래,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손자 뒤만 쫄쫄쫄 따라다니며 연신 벙글벙글
손자 바보라서 행복하다.
한 서너 시간 놀았을까?
키즈월드 마감 시간을 알리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 우리도 손주랑 추억도 만들 겸, 셋이서 놀이가구 같이 한 번 탑시다."
남편의 제안이다.
'손자와의 추억'이라는 말에
평소 놀이기구 타는 걸 질색팔색하는
내 마음의 빗장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래요!"
선뜻 용기를 내본다.
다람쥐통이라는 놀이기구를 찜했다.
가족 3~4명이 함께 타는 놀이기구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이글루처럼 생긴 투명 볼 형상으로 만들어진 집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10분간을 앞으로 뒤로 옆으로 구르면서 물 위를 떠 다니며 놀면 된다.
중심이 안 잡히는 것이 재미와 웃음 포인트다.
데굴데굴, 뒹굴뒹굴, 엎치락뒤치락, 왁자지끌, 허허허, 호호호, 까르르까르르...
다람쥐통 안에서는 육십을 훌쩍 넘긴 할비, 할미도 손자 또래가 된 듯하다.
웃음소리와 비명소리, 외침소리가 뒤섞여 다람쥐통은 난리법석이다.
십여분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며칠 쓸 기운을 십분 만에 다 써 버린 것 같다.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잠시 영혼의 카타르시스 같은 쾌감을 느꼈다.
왜 사람들이 줄까지 서서 기다리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오금이 절이도록 무섭고
정신을 쏙 빼놓는 놀이기구를 타는지 알 것도 같다.
늘 정신줄 똑바로 붙잡고 살아야 하는 깝깝한 현실에서
잠시 풀려나는 신박한 느낌을 맛보았다.
손자 덕에 감정의 해방구 하나를 찾았다.
' 가끔 손자와 함께 무서운 놀이기구 타기'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