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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운대 줌마 Jul 25. 2024

내 감수성의 엄마(3화), 팝콘 같은
감꽃 이야기

아무튼 꽃

감꽃 필 무렵 아이의 아침은 바빴지만 설레고 아름다웠다.   


하얀 밥풀에 노란 콩고물을 솔솔 뿌려 한 꼬집씩 뭉쳐 놓은 것 같은 감꽃. 

여름철, 이 감꽃 이야기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내가 살던 시골집에는 그 흔한 감나무 한그루 없었다. 

열 살, 어린 마음에도 그게 그렇게 허전했다.

남의 집 마당에 떨어진 감꽃을 주울 때마다 

입을 삐죽이 내밀며 불평했다.


감꽃을 좋아하는 아이는 

여름 새벽부터 농부처럼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방금 튀겨 낸 팝콘을 마당에 한 소쿠리 쏟아 놓은 것 같은 감꽃.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참말로 곱고도 경이로운 아침을 선물해 주었다.     

          

달뜬 마음으로 감꽃을 하나씩 주워 담으며

열매를 거두는 농부처럼 소담스러운 행복을 맛보며 자랐다.

  



감꽃이 시들기 전에 꽃목걸이를 만들어야 한다. 

감꽃을 하나씩 실에 엮어가는 아이의 얼굴은 꽤나 진지하다.

손끝은 제법 야무졌다.

  

아이가 걸친 옷에 비해 훨씬 사치스러운 꽃목걸이를 걸고

동네 골목을 이리저리 누볐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고무줄 뛰기, 얼음땡, 공기놀이...

긴긴 여름날을 동무들과 어울려 밖에서 지냈다.     

실컷 뛰놀다 슬슬 배가 고파지면 

감꽃 목걸이에 달린 꽃을 똑똑 따먹곤 했다. 

이상하게 허기는 달아나고 

해사한 웃음만 입가에 남았다.

   



얼마 전 시댁에 들렀다가 마당에 뒹구는 새파란 애기 감을 봤다.

열매가 떨어진 걸 보니 감꽃은 피었다 진지 오래되었겠구나 싶다.

하얀 감꽃이 보고 싶었는데...    


마당에 떨어진 떨감을 하나 집어 들었다.

4형제 복닥복닥 되던 우리 집에

떫은 감을 삭혀서 주시곤 했던

이웃집 할머니의 넉넉한 미소와 푸근한 정이 떠오른다.

벌써 50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토록 떫디떫은 감에게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떫은 맛은 쏙 빠지고 

할머니의 마음처럼 떨감은 달짝지근해졌다.


그것도 귀해서 실컷 못 먹던 시절 

그 추억의 먹거리들이 새록새록 그립다.

어렵고 서럽던 기억조차 오랜 세월을 통과하면서

눈물 버튼을 자극하는 풍요로운 추억이 될 줄이야. 




냉동실에 지인에게 선물 받은 고급 곶감에는

손이 가지 않으면서

그 떫은 감 삭힌 것이 먹고 싶어 지다니...

그래서들

음식 맛은 추억이 절반이라고들 하나보다.


기억의 창고에서 꾸들꾸들 말라가는 곶감 같은 추억을

곶감 빼먹듯 하나씩 꺼내 음미하며 

살아가는 날이 더 많아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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