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산타
12월의 휑한 거리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띈다.
종교와는 무관하지만
'크리스마스에는 서로 온기를 나누며 지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해운대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그림자처럼 앉아 있는 노인들이 보였다.
무리를 지어 있으나
저 멀리 보이는 오륙도 섬들처럼
각자 각자 따로 인 듯하다.
그다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도 않다.
겨울의 야박한 햇살에 구부러진 몸을 내 맡긴 채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
' 저 노인들은 무슨 생각을 제일 많이 하고 있을까? '
' 해묵은 기억들을 더듬어 보며 회상에 잠겨 있을까?'
' 아니면, 일장춘몽 같다는 인생의 헛헛함을 바다를 보며 달래고 있을까? '
외로운 섬 같은 모습에
내 마음에도 쓸쓸함의 파도가 밀려든다.
헤헤헤헤! 히히히히!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명랑하게 들려온다.
너른 모래사장을 동동동 뛰어나다며
한 손에는 장난감을
다른 한 손에는 탕후루를 들고...
아이들은 행복해 죽겠다는 달달한 표정이다.
부모도 세상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그림이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덩달아 내 입꼬리도 슬며시 올라간다. 히힛
‘요즘 아이들은 날마다 크리스마스지!
뭐 해달라고 입만 벙긋하면 다 해주니까.’
아이 하나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삼촌, 이모, 고모들까지 관심 집중이다.
스타도 그런 빅스타가 없다.
집안에 애들이 귀하니
금동이들이지.
"착한 아이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날 선물을 준다."
동화 같은 거짓말도 이제 효력을 상실할 듯하다.
우리 손주만해도 그렇다.
만날 때마다 선물 공세이니 귀한 게 없어졌다.
집에는 온통 장난감이며 먹을 것이 넘쳐난다.
그렇게 키우는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닌데...
아무튼
요즘 세월이 그렇다.
아이들보다 노인들에게 산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 엄마, 오늘은 뭐 하며 보냈어?"
“ 심심해서 못 살겠다.”
여든넷의 친정 엄마는 날마다 같은 푸념을 수년째 널어 놓으신다.
그럴 때마다
자주 찾아가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시집간 딸들 마음 한 켠에는
아픈 부채감을 자극하는 친정 엄마가 있어서다.
우리 애들 어릴 때
크리스마스 전날이면
산타 연기를 어설프게 하며
가족과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히힛
올해는 친정 엄마의 산타가 되어봄은 어떨까?
재미난 생각이 발동한다.
내 새끼들만 챙기지 말고.
엄마 보러 가야겠다.
엄마가 좋아하는
해수탕에 가서 등도 시원하게 밀어 드리고,
엄마 이야기도 들어주고,
엄마 좋아하는 아무거나(뭐 먹고 싶어? 내가 물으면, 늘 엄마는 '아무거나'라고 하실 게 뻔함.)도
사드리고.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