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산책
언제부턴가
무심하게 바라봄이 좋아졌다.
여느 날과 같이 동네 산책에 나섰다.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
간식을 꺼내 먹고 있는데
눈치 빠른 비둘기 녀석이 주위에 얼쩡거린다.
비스킷 몇 조각을 툭툭 던져 주다가,
비둘기의 오른 쪽 발목이
싹뚝 잘려 나가고 없는 걸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와락
불쌍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가방을 뒤져 과자를 있는대로 꺼내
그 녀석 앞에
아까보다 훨씬 다정해진 마음으로 놓아 주었다.
콕콕 콕콕
잘도 쪼아 먹는다.
누군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먹는 모습을
보면 애잔한 마음이 든다.
'발목이 잘려 나갔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까?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누?'
안쓰러운 마음으로 한 참을 살펴보았다.
구구 구구
비둘기 열댓마리가 순식간에 날아들어 먹이 다툼이 벌어졌다.
몸이 허약한 아이를 거친 싸움터에
내 보낸 엄마의 심정으로
한 발 없는 비둘기가 먹이 경쟁에서 밀릴까 봐
애타게 지켜본다.
"너는 몸이 불편하니 더 많이 먹고 힘내라."
그 녀석 앞으로만 과자를 던져주고 편애하며 응원했다.
나의 기우와는 달리 그 녀석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다른 비둘기들이 자기 앞에 놓인 것을 먹으려하자
뾰족한 부리로 제압하는 듯한 강한 몸짓을 한다.
슬그머니 뒷 꽁무리를 빼며
딴 곳으로 피하는 비둘기들의 모습이
철부지 아이들 힘겨루기 마냥 우습고도 짠했다.
'그래, 다행이다! 다행이야,
힘든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며 너는 많이 단단해졌구나!
비둘기야, 앞으로도 너의 생을 굳건히 잘 살아내거라!'
두 손을 모으고 지켜보던
애처로운 마음을 거두고
다시 일어선다.
동네 산책은 다른 생의 모습에 눈뜨게 해준다.
생물학적인 장벽을 넘어
각자의 생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가슴의 논바닥에 물꼬를 낸 것처럼 흘러든다.
우정과 사랑을 나눌 대상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느낌!
충만해지는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제처럼 반복되는
오늘 하루도
새 날을 선물 받은 것처럼
소중하고 감사하게
살아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