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지하철 계단을 오르던 중, 큰아이가 아빠에게 뜬금없는 구호타령을 했다. 나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아빠와 아들이 여행을 하며 규칙을 알아가는, 어느 동화책 내용이었다. 뒤쫓아가던 나는 순간 얼굴이 벌게졌다. 하필 사람 많은 지하철 역 계단에서 뜬금없는 저 행동은 뭐람. 사회성이 많이 부족한지라, 앞뒤상황 안 가리고 본인이 꽂히는 것을 뜬금없이 요구할 때가 있다.
규칙을 알아가는 수학동화책
“축복아, 그걸 꼭 지금 해야 돼? 우선 사람이 많으니깐 없는데 가서 해줄게”
“아빠! 같이 올라가 봐요~ 빨리.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큰아이는 이미 책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해야 한다는 것에 꽂혀서, 아빠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분명 큰아이의 “청각”은 정상. 다만, “청지각”이 바닥이다. 청지각이라 함은, 쉽게 말해서 귀로 어떤 소리를 들으면 뇌를 거쳐 정보가 처리되어야 하는데, 큰아이는 귀로 들리는 것을 뇌도 안 거치고 반대쪽 귀로 그대로 흘려보낸다. 바람처럼 아빠의 말들이 스쳐 지나가는 듯 보였다. 마지못해 아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오른발 왼발' 구호를 외쳐주며 큰아이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신난 큰아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내심 신랑에게 고마웠다. 나였다면 사회성을 운운하며, 사람 많은 곳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다그쳤을 거다. 그래서일까. 큰아이는 아빠를 참 좋아한다.
큰아이를 임신했을 당시, 신랑의 해외출장이 예정되어 있었다. 건설사를 다니는 터라 한 번씩 먼 타국으로 출장을 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좀 길게 1년 반정도 다녀온단다. 얼추 날짜 계산을 해보니, 큰아이가 태어나고 100일쯤 후에 떠날 것 같았다. 그렇게 큰아이가 태어났고, 100일 후 정말로 출장을 훌쩍 떠나버렸다. 출장 가기 전날까지도 실감이 잘 안 났는데, 인천공항에서 신랑을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1년 반이라던 출장길은 자꾸 연장이 되었다. 당시에 "메르스"라는 무서운 질병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는 바람에 신랑의 발목을 잡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유가사태까지 터져 업무의 지연이 생긴 것이다. 4개월에 한 번씩 나오던 휴가도 변동이 생기기 일쑤였고, 결국 큰아이의 돌잔치도 못 치르는 어마어마한 사태까지 벌어졌다. 맙소사. 그렇게 미혼모행세를 하고 다니길 2년 반. 드디어 신랑이 복귀를 하였다. 큰아이 37개월 무렵이었다.
한 때 큰아이는 대용량 로션통을 들고 다니며, 그 로션통을 아빠라고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빠같이 생긴 어른이라도 만나면 "아빠"라며 안기는 바람에, 나의 남편을 여럿 만들어줬다. 아빠에 대한 개념이 그야말로 제로. 아빠의 따뜻한 품이 시급했다.
아빠가 돌아왔다. 언제 또 떠날지 모르는 출장이지만, 향후 5년간 없단다. 발달에 어려움이 있던 큰아이를 가까이에서 함께 챙겨줄 수 없음에 늘 안타까워했던 남편은, 한국에 복귀하자마자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큰아이를 함께 케어해 주었다. 예전에 방송프로그램 중에 "아빠 어디 가?"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그 방송을 흉내내보겠노라고 선포 아닌 선포를 해주었다. 고마운 남편.
나와는 반대로 대범하게 어디든 외출하기를 꺼리지 않는 남편 덕에, 집 앞 산책부터 시작해서 큰아이와 함께 등산하기, 아쿠아리움 구경 가기, 동물원 가기, 기차 타기 등 활동영역을 크게 넓혀갔다. 놀러 가는 곳에서의 새로운 자극으로 인해 불안도가 올라가는 큰아이의 어려움이 보일 때마다, 자세를 확실히 잡아주었다.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큰아이의 첫 발화, 첫 단어가 터졌다. "싫어"
응? 이렇게 즐겁게 해 주는데 "싫어"가 첫 말 트임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나. 하지만 동시에 말이 트인 아들을 보며 어찌나 감사하던지, 신랑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했다.
아빠 오늘은 어디가?
우리 집 "아빠 어디 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빠와의 단둘이 하는 여행을 너무 좋아한다. 엄마는 끼지 말란다. 하지만 난 전혀 서운하지 않다. 그저 감사할 뿐. 아빠의 부지런함 덕분에 우리 아이의 발달에 조금이나마 속도가 붙고 있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