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트라는 건 뭘까
나는 이상하게 마이크 앞에만 서면 주절주절 말이 많아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들을 웃기고 싶다. 몸 쓰는 것을 크게 잘하는 편이 아니라 얼굴표정이나 슬랩스틱으로 웃기기는 어렵다(사실 그게 내 추구미이긴 하지만 재능도 없고 갈고닦지를 않아서 아직은 좀 멀다, 몸짓으로 웃기는 거 하, 생각만 해도 짜릿해). 그나마 할 줄 아는 건 말이나 글로 허접한 농담을 날리는 거다. 딱히 순발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확고한 캐릭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이크 앞에 서면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 물론 머릿속에서만 그렇고 실제로는 뭉개진 발음으로 웅얼웅얼거리는 게 다다. 아무도 웃어주는 사람 없지만 혼자 뻘줌하게 아무 말을 던지고 혼자 웃는 사람 나야 나. 노래 부르는 건 사실 살짝 뒷전이다. 지구상에서 거의 존재감 없는 나라는 인간이 만든 노래 따위 사실 관심도 없다는 거 안다. 노래 부르러 와서 노래 안 부르고 횡설수설하고 있는 저 사람은 뭐지라는 찰나의 궁금증도 인스타나 카톡 알람이 주는 도파민에 몇만 분의 일도 안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노래 사이사이 멘트를 하게 된다면 주로 곡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이 말 저 말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뭔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드립이나 밈을 아무렇게나 던져보는데 무표정한 가면 같은 얼굴로 무심하게 나를 쳐다보면 오히려 좋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도 외롭긴커녕 재미있다. 외로운 순간은 오히려 노래를 시작할 때이다. 이 세상에 혼자만 남겨진 느낌. 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남 앞에 서는 것을 딱히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멍석이 깔려있다면 그 위를 밟고 서길 보다는 멍석을 피해 멀리 돌아갈 사람. 말이 없는 편이라 속을 모르겠다는 평을 들으면서 살았다. 그런데 점점 주변에 더 과묵한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내 발화빈도수가 높아진 탓도 있으려나. 침묵을 견디는 내구성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약간의 진행병 같은 것이 걸린 MC 자아가 자꾸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탓도 있으려나(하지만 여전히 침묵은 좋아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얼마 전 몇 없는 관객 앞에서 혼자 기타를 치며 '내일의 나'라는 자작곡을 불렀을 때의 일이다. 나는 잠시 고민한 뒤 "네. 다르죠.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나는.. 내일의 나와 오늘의 나도 다르죠."라고 대답했다. 이곡은 할 일만 쌓여가고 시간도 내편이 아니지만 오늘 할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오늘은 좀 맘 놓고 쉬자라는 메시지를 담은 곡이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시간의 연속성 아래 놓인 나라는 존재가 사실 같은 인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들기는 어려우므로 대충 지나가자. (어제와 나와 내일의 내가 달라도 내가 대충맨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딱히 내가 소설 쿼런틴이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EAAO)를 재미있게 봐서는 아니다(혹시 안 봤으면 꼭 보기를 권한다.ㅎㅎㅎ)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이건 사실이다. 나는 오늘 아침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왔다. 까페라떼와 요깃거리를 주문했다. 잠시 고민하다 블루베리요구르트를 먹지 않고 에그샌드위치를 선택했으니 블루베리요구르트를 먹는 내가 있는 세계는 사라졌다. 매 순간 평행우주가 생성되어 나의 다른 삶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인간의 선택이나 인지에 따라 우주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으로 확장되다가 실제 행위가 일어나면 하나의 현실로 수축된다. 두 작품모두 선택, 관찰, 순간의 변화가 현실과 이 세계, 그리고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킨다는 상상력을 공유한다. 이 더우우운 여름날 두 작품 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동시에 강으로 틀어놓고 여러 개의 쿠션에 몸을 널브러뜨리고 입 벌리고 보기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다.
수많은 확장과 수축을 통해 나는 이전과 꽤 달라져있는데 사소한 예로 달라진 식습관을 들어보겠다.
유당불내증이 있어서 라테를 먹더라도 거의 두유라테만 먹었고 혹시 배를 차갑게 하는 아이스까페라떼를 마셨다면 그날 몇 시간은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장디톡스를 기가 막히게 했을텐데, 내가 요새는 우유로 만든 라테를 먹어도 괜찮다. 그것도 아이스로 먹어도 괜찮을 만큼 나는 강해졌다. 그리고 생채소를 좋아하던 나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상당히 긴 시간동안 생채소로 만든 샐러드를 즐겼는데 이제는 생채소에서 비린 풋내가 나고 소화가 잘 안 돼 익힌 채소가 아니면 사양이다.
노래 한곡을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노래에 아무런 감흥이 있건 없건, 너무 좋아서 자꾸 생각이 나던, 정말 취향이 아니라 싫어요를 눌렀던지 노래를 듣기 전과 듣고 난 후의 세계는 이미 달라져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아님). 나는 이 글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 따지고 보면 오늘도 횡설수설이지만 결론은 타이밍, 리듬, 박자감, 이마를 탁 치는 타이밍, 확고한 콘셉트. 제스처와 표정으로 언젠가는 한 명이라도 웃길 수 있는 펀치라인을 날리고 싶다 이거다. 오늘 내가 한 무수한 선택과 관찰이 순간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겠다. 그런 의미로 오늘 발매된 고닭의 '돌고 돌아서 나'와 '내일의 나'를 들어보시라. 들으면서 '나'라는 연속성과 분절성을 찾아보시길!
https://youtu.be/NiWHa1lz7JY?si=if4T96VpaFn4V2ha
https://youtu.be/F-WI8Pps-M0?si=Ay3tL5flPNaurAs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