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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냥하뮤

개기월식과 불면의 밤

by 하뮤하뮤

달을 본다. 영화를 본다. 분주하게 밤을 맞았다가 2시 반쯤 잠을 청했다. 1분 정도 잠에 들었다가 깨서 멀뚱멀뚱 침대 위를 굴러다녔다. 고양이처럼 앞발을 접어서 겨드랑이에 껴보기도 하고, 치렁치렁해진 머리카락을 얼굴에서 겆어내며 긁적거리기도 하고, 길어진 발톱을 벽에다 툭툭차면서 그 소리를 듣기도 하다가 결국은

잠이 안 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별수 없이 관짝 같은 작업실로 향했다. 오래간만에 글을 써보기로 한다.


아무 플레이리스트를 눌렀더니 웰던 어빈의 Music is the key 가 흘러나온다. 뇌의 반쪽 넘는 분량은 잠을 자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잠은 완전히 달아나버렸다. 이유는 오후 6시가 되어서야 마신 아이스라테의 효능 때문인지 개기월식 때문인지 밤늦게 본 영화 '가엾은 것들'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은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 걸까. 밀물이 들어왔다가 썰물이 빠져나 갔다 하는 것처럼 수면아래서 요동치는 것들을. 어떻게 이해할까. 가끔은 내가 자벌레나 민달팽이가 된 것 같기도 한 그런 기분을.


나는 가을을 타는 사람이다. 맞다. 이런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맨발로 흙바닥을 달려 산꼭대기에 올라가고 싶다. 커다란 달 아래에서 나무처럼 서서 품 안에서 꺼낸 탬버린을 흔들고 싶다.

동네 하천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먹음직스럽게 동그랗다. 나는 산 허리 어딘가에 놓여있는 돌멩이 같은 기분으로 쭈그리고 앉아 한참 달을 바라봤다. 맞은편 계단에는 커다란 강아지를 데리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나만 없다. 저런 커다란 개.

야금야금 지구에게 가려지는 달을 보며 커다란 피아노가 한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을 실컷 자고 팔다리를 시원하게 뻗으며 수영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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